아베 총리가 부러운가요

2015.05.25 20:57
박용채 논설위원

[경향의 눈]아베 총리가 부러운가요

시쳇말로 ‘깜놀’이었다. 최경환 부총리 입에서 ‘뛰는 일본, 기는 한국’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를 이웃 국가를 괴롭히는 나쁜 정책쯤으로 여겨왔던 그였다. 알고 보니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그는 엊그제 도쿄에서 “아베노믹스가 정치안정을 기반으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도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데 국회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불을 혼자 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제가 지지부진한 것이 야당 탓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다. 물론 일본의 경제 성적표는 확연히 나아지는 분위기다. 1분기 성장률은 2.4%로 예상치를 웃돌았다. 노동자 임금도 오르고, 일자리도 늘고 있다. 내수·수출 부진에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부러울 만하다.

아베 총리나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경제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베노믹스가 잃어버린 20년으로 설명되는 과거를 털고 재도약하자는 것이라면, ‘근혜노믹스’는 저성장 위협에 처한 한국 경제를 도약시키자는 것이다. 기실 6개월 전만 해도 아베노믹스는 실패작으로 평가됐다. 엔저로 대기업들은 수혜를 입은 듯했지만 노동자들은 배제되면서 정작 절실했던 내수활성화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장률 저하로 기로에 선 아베는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공표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그런 아베노믹스가 느닷없이 별세계에서 온 것처럼 성공작으로 포장돼 대로를 활보하고 있으니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베노믹스의 방향이나 수단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유일하게 달라진 외적 요인은 유가 하락이다. 엔저로 탄력받던 일본기업들이 저유가로 기업실적이 더 좋아졌다. 정작 일본 내 분위기를 돌려세운 것은 기업 과실을 구성원들과 나눠야 한다는 아베의 채찍이었다. 정부가 앞장서 최저임금을 올렸고, 대기업·중소기업을 찾아다니며 임금인상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자 미약하나마 소비에 온기가 돌았고, 이는 다시 투자로 연결되면서 소득주도 성장의 선순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현 상황을 아베노믹스의 성공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금융 및 재정 완화에 의존하는 아베노믹스는 미래를 지렛대로 현재를 숨쉬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2년 뒤로 미뤄놓은 소비세 인상 역시 뇌관이다.

그럼에도 아베노믹스에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2006~2007년 1차 총리재임 때만 해도 마음먹은 대로 안되면 총리직마저 내던지며 응석을 부렸던 그는 이번에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일관성과 책임감을 보였다. 그에 비하면 박 대통령의 초심은 많이 변했다. 대선 과정에서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경제민주화는 1년도 안돼 뒷방으로 밀려났고 경제활성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3년차인 지금은 부패척결 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원론적으로 부패척결과 경제활성화는 무관하지만 기업부패가 타깃인 점을 감안하면 경제활성화도 물 건너간 셈이다. 유일하게 일관된 초심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된 ‘증세 없는 복지’뿐이다. 책임 회피도 볼썽사납다. 지난 2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불어터진 국수 운운하며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국회의 경제활성화법안 처리가 늦어진 데 따른 것처럼 얘기했던 것은 기억에도 새롭다.

일본의 구조개혁과 한국의 구조개혁은 많이 다르다.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는 것과 같은 이상한 개혁은 없다. 박근혜 정부가 지고의 선으로 삼는 규제완화 역시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 일본도 성장전략 법제화 과정에서 이해가 충돌하는 일이 빈발하지만 이 경우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갈등을 최소화한다.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 채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방식은 없다.

현재의 경제환경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축을 들어 투자는커녕 바짝 엎드려 있다. 임금 인상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다. 정부가 정규직을 줄여 비정규직을 살리자는데 기업이 스스로 임금을 올려줄 리 만무하다. 금리가 낮아 돈을 불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비 대신 저축을 선택한다. 장기 침체 일본 경제의 교훈은 성장보다는 사회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 경제의 구조적 요인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였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재정을 투입하고 환율을 낮춰 경기를 띄우면 경제는 자연스레 나아질 것으로 여겼지만 한결같이 실패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개선하지 않으면 내수도, 성장도, 삶의 질 향상도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정말 부러우면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던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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