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동물원’ 없는 나라

2015.06.01 21:14 입력 2015.06.01 21:20 수정
신동호 논설위원

[경향의 눈]‘국립동물원’ 없는 나라

세계적인 것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국가적이지도 못한 게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자연사박물관이나 식물원, 동물원과 같은 생물 관련 시설이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이나 런던 큐왕립식물원,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곳이 부러운 것은 그 규모나 내용만이 아니라 거기에 쏟는 국가적 관심 때문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에게는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그런 시설이 없다.

국가의 위신이나 품격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생물다양성이나 생태계서비스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도덕적이거나 이상적인 주제가 아니다. 국가적 당면 과제이자 미래 전략과도 직결되는 현실적인 주제다. 국립 자연사박물관이나 식물원, 동물원의 부재는 그 중요한 기반을 국가가 방치 내지 외면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끔 한다.

요즘 지구촌 최대 현안이 기후변화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기후변화 문제가 세계적 현안이 된 데는 아주 특별한 국제기구의 역할이 컸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로, 정확한 직역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이다. 1988년 출범한 이 기구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그 공로로 2007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런 IPCC와 쌍벽을 이루는 유엔 기구가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다. 직역하면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 플랫폼’이다. 기후변화도 심각하지만 그에 따른 생물다양성 고갈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인식하에 2012년 유엔 산하에 새로 만들어졌다. 생물다양성을 주제로 IPCC와 마찬가지로 5~6년마다 평가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에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생물다양성판 IPCC’로도 불린다.

생물다양성이 유지됨으로써 인류가 누리는 각종 혜택을 뜻하는 생태계서비스는 비교적 최근에 확립된 개념이다. 1997년 미국 생물학자 그레첸 데일리가 제안했고, 호주 생태경제학자 로버트 코스탄자가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다. 코스탄자는 지구 생물권이 연간 인간에게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를 최소 33조달러로 추정했는데, 당시 전 세계 연간 국민총생산을 모두 합쳤을 때 그 절반이 조금 넘는 약 18조달러였다.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등 여러 요인으로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 뉴스로 접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체감하고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토종 여우가 남한에서 멸종했다거나 귀신고래가 더 이상 동해안을 찾지 않는다고 해서 그 피해가 당장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변화가 생태계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다.

동물원은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동물을 기르고 전시하고 연구하고 보전하는 시설이다. 과거에는 귀한 동물을 야생에서 잡아 기르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연구와 보전, 교육 기능이 더 중시되고 있다. 서식지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나 자연에서 개체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종을 기르면서 멸종을 막고 서식지 보전, 기르고 있는 동물에 대한 연구, 동물 보전에 관한 교육까지 담당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국내에서 이런 역할에 비교적 충실한 곳이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이다. 지금까지 지리산과 소백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과 여우 가운데 일부는 서울동물원에서 증식한 것이다. 서울 근교와 공원에 산개구리와 두꺼비 등 양서류를 방사하는가 하면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와 남생이 등을 증식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은 아니더라도 생태계 균형 유지와 종 다양성에 기여하기 위해 꿩과 원앙을 도심에 방사하기도 한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사 등을 통해 동물 보전 교육 효과도 톡톡히 봤다.

문제는 이처럼 서울동물원이 사실상 국가 대표동물원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모른 체하는 점이다. 서울동물원은 재정자립도가 낮고 경기도에 위치하며 그린벨트 규제에 묶여 있는 등 세계적 동물원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국립화 논의가 나올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부도 마냥 무관심할 수는 없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분야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IPCC에서는 이회성 부의장이 오는 10월 선출하는 의장직에 도전하고, IPBES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지식 및 데이터’ 전담 기술지원단을 한국 국립생태원이 유치해 운영하고 있다. 2016년까지 생물다양성협약(CBD) 의장국 지위도 갖고 있다. 생물다양성 분야에서 ‘깜짝 스타’로 등장했는데 국가적인 동물원 하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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