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건설업 하기 좋은 나라

2015.10.19 21:18 입력 2015.10.19 21:20 수정

4대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42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4대강 보에 있는 물을 이용해 가뭄을 해결하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획재정부 2차관은 최근 금강 백제보~보령댐 도수 관로 현장을 방문해 “댐·보·저수지를 연계해 운영하고 4대강의 여유 수량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4대강 공사로 16개 보에 담아둔 물은 그동안 별다른 용도가 없었으니 잘 활용한다면 좋은 일이다.

가뭄으로 고통받는 지역 주민들은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미소짓는 이들도 있다. 건설업계와 정치권, 행정부 등에 포진한 이른바 ‘토건족’이다. 4대강 보의 물을 끌어다 쓰려면 4대강에서 댐이나 저수지, 지류 등을 연결하는 관로를 설치해야 한다. 관로 설치 공사에는 1조원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 떼일 걱정 없는 관급공사이니 토건업계에는 짭짤한 수익이 될 게 분명하다. 삽질은 곧 토건족의 이익이다.

[경향의 눈] 토목·건설업 하기 좋은 나라

이명박 정부에서 홍수와 가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은 본류 주변을 제외한 지류의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는 감사원과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 등을 통해 부실 공사와 입찰 담합, 수질 악화 등의 문제점을 적발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4대강 관련 후속 사업에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성급하다. 4대강 사업은 원점에서 재검토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 없이 사실상 후속 공사를 벌이는 셈이 됐다. 당장 625억원이 소요되는 백제보~보령댐 21㎞ 관로 공사는 긴급사업이라는 이유로 예비 타당성 검토조차 하지 않고 조기 착공키로 했다. 가뭄 해소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공사부터 시작하겠다고 한다. 백제보 물 수질은 3등급 이하이고, 녹조로 덮여 상수원이나 농업용수로 부적합한데 어떻게 정화할지 의문이다.

정부에서 중단한 4대강 지류 정비사업이 재개될 조짐마저 있다. 지류 강바닥을 준설하고, 제방을 정비하는 4대강 후속 공사를 벌이면 가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4대강 지류 정비에는 4대강 사업과 맞먹는 거액의 공사비가 소요된다. 유지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토건족으로서는 쌍수를 들어 반길 일이다. 만약 4대강 보와 지류 연결이 가뭄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지류 정비사업이 필요하다고 할 테고, 그마저도 효과가 없으면 또 다른 공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물 관리를 아예 민간에 넘기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4대강 사업을 통해 퇴임 후에도 끊임없이 일감을 창출해낼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토건족들이 ‘선견지명이 있는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칭송할지도 모르겠다.

토건족은 건설사 최고경영자를 지낸 이 전 대통령 시절에만 득세한 게 아니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에는 토목, 건설만 한 게 없었기 때문에 역대 정부는 토건 사업에 열중했다. 도로를 내고, 다리를 세우고, 건물을 지으면 눈에 보이는 효과도 컸다. 토목, 건설은 하청 단계가 복잡해 비자금 조성하기에도 그만이었다. 재벌마다 건설사를 계열사로 거느리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정부와 토건족은 건설업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건설업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반짝 10%를 넘겼지만 이후 꾸준히 하락해 2011년부터는 4%대에 머물고 있다. 2006년 건설업 종사자는 전체 산업 종사자의 5.5%였으나 2013년 5.4%로 줄어 고용 효과도 떨어진다. 반면 같은 기간 건설업체 수 비중은 2.8%에서 3.2%로 늘었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업종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토건족에 우호적이다.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판단해 규제를 대거 풀어줬다. 주택 거래량이 늘어나면 이삿짐센터가 호황을 누리고, 벽지와 장판도 많이 팔리는 등 연관 산업도 살아난다고 했다. 토건족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부동산 띄우기는 기존 주택시장 대신 분양시장을 활성화했고, 건설사 수익만 늘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강으로는 모자라 산악 관련 규제도 완화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키로 했고, 산 정상 부근에 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했다. 4대강 담합으로 관급공사 입찰제한 징계를 받았던 건설사들은 대통령 사면을 받아 공정거래위원회를 무력화했다. 건설업계는 숙원이었던 최저가 낙찰제 폐지도 박근혜 정부에서 얻어냈다. 정부는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받는 4대강 후속 사업을 면밀한 검토 없이 만지작거리고 있다. 토건족의 승리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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