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잔치는 끝났다

2015.12.28 20:37 입력 2015.12.28 20:40 수정

집값이 많이 올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전국 아파트값은 6% 넘게 올랐다. 올해 주택 거래량은 사상 최대인 120만건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청약시장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새 아파트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오피스텔과 상가 가격도 상승했다.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거의 10년 만에 부동산시장이 호황을 구가했다”고 말했다.

[경향의 눈] 강남 잔치는 끝났다

한없이 오를 수만은 없는 게 집값이다. 상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깨 부근까지 치솟은 것은 분명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조만간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실 앞으로 집값이 오를 요인은 거의 없다. 더 풀어줄 게 없을 정도로 규제를 잔뜩 완화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부양 효과는 단기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부터 부동산에 흘러들어가는 은행의 돈줄을 죄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가 가장 공을 들인 분야는 부동산시장 살리기였다. 결과는 틀렸지만 부동산이 살아나면 내수가 활성화한다고 봤다. 그래서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완화해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 보다 이른 시기에 아파트를 재건축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청약자격 기준도 완화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비판 중 하나는 ‘강남 특혜’이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더 많이 뛸 것이라는 우려였는데, 사실이었다. KB국민은행 부동산통계를 보면, 최 부총리가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6월 이후 지난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지수 상승률은 6.3%였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 상승률은 8.3%, 서초구는 8.1%였다. 같은 기간 아파트값이 15.7% 폭등했던 대구와 비교하면 낮다. 하지만 3.3㎡당 아파트 매매가로 따지면 대구가 아무리 많이 올랐어도 서울 강남과는 절대가격에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대구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는 수성구는 지난달 3.3㎡당 1331만5000원이지만, 강남구는 3832만6000원으로 세 배가량 높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더 많이 올랐다. 부동산114 통계를 보면 최근 1년 반 사이에 강남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매매가는 8.2% 올랐고, 서초구는 10.7%, 송파구는 9.0% 상승했다. 재건축에 들어간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은 더 큰 이익을 챙겼다. 올해 강남에서 분양된 재건축 아파트 중에는 3.3㎡당 4000만원이 넘는 게 수두룩하다.

강남 특혜 논란에도 정부가 재건축을 비롯한 각종 규제를 대거 푼 것은 이른바 ‘강남 낙수효과’를 노린 측면이 있다. 강남 부동산시장이 달아오르면, 그 열기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학습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강남 집값이 뛰면 강북으로 상승세가 퍼지고, 몇 개월 시차를 두고 수도권과 다른 지방까지 오름세를 보였다. 이 같은 상승세를 되풀이하면서 강남은 한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동네이자 부유층의 상징이 됐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이길래 강남에 불을 지폈을까. 퇴임 후 돌아갈 대통령의 집이 있는 동네이다.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한다는 청와대 비서관 3인방도 최근 잇따라 강남 아파트를 샀다. 국정원장과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도 모두 강남에 산다. 지난해 국회의원 292명의 재산등록 현황을 보면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에 아파트나 빌딩, 주택 등을 소유한 의원(가족 포함)이 97명이었다. 강남 3구 국회의원은 7명이지만 전체의 3분의 1이 강남에 거주한다. 강남에서 아파트나 사무실을 전세로 빌린 의원도 10명이 넘는다.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는 최 부총리의 지역구는 경북 경산·청도지만 강남에 아파트가 있다.

주식시장에서 특정 종목이 오른다고 해서 무작정 추격매수에 나서거나 대출받아 투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다. 강남 부자들이 집값을 띄우자 서민들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자발적인 게 아니었다. 등 떠밀려 추격매수에 나섰다는 점이 다르다. 투자수익을 기대하고 집을 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매수대열에 동참했다. 동시다발적인 강남 재건축 시작으로 이사 수요가 급증해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전세입자들은 빚을 내 집을 사거나, 전세난민으로 수도권을 떠돌거나, 월세로 떨어져야 했다.

빚내서 집 사라고 했던 정부가 돌변했다. ‘여신심사 선진화’라는 걸 내세워 대출 심사 때 소득과 갚을 능력을 꼼꼼하게 따지겠다고 한다. 가계부채 폭증과 금리 인상에 대비해 내놓은 대책이다. 강남 집값이 오를 만큼 올랐으니 이제 잔치를 끝내겠다는 뜻이다. ‘먹튀’와 다를 바 없다. 강남 부자들로부터 토끼몰이당하듯 집 산 서민들은 어떻게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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