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로봇이 내 곁에 왔다

2020.05.21 03:00 입력 2020.05.21 03:06 수정

지난 14일 TJB 대전방송 오후 8시 뉴스 스튜디오. 키가 1m55쯤인 로봇 ‘휴보(HUBO)’가 앵커로 나왔다.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한 국내 첫 인간형 로봇이다. 출연 소감을 묻는 질문에 “기분이 짱입니다”라고 답한 휴보는 리포트 2개를 단독 진행했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코로나19 확산으로 요즘 저 같은 로봇들이 대활약하고 있습니다. 감염 걱정이 없기 때문인데, 맛있는 커피를 타기도 하고, 음식을 서빙하고, 수술까지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체했던 분야부터 감성적인 영역까지 우리 로봇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기자가 보도합니다.”

휴보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언택트) 사회로 변화한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바리스타 로봇, 서빙 로봇 등을 소개했다. 로봇의 도전과 활약상을 로봇이 전한 이 장면은 코로나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코로나19는 ‘생활 로봇’ 시대를 열었다. 비대면 일상문화뿐 아니라 코로나가 빚은 일손 부족도 변수로 작용했다. 호텔·음식점의 서빙·배달 로봇부터 진료 현장의 방역·간호 로봇, 산업 부문의 작업·업무 로봇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배달 로봇이 주목받는다. 애리조나주의 한 피자 프랜차이즈는 지난달 초 자율주행 배달 로봇 11대를 도입했다. 매장 내 식사가 전면 중단되고 배달 수요가 급증했는데 배달원 구하기도 꽉 막혀서다. 국내에서는 호텔 룸서비스 로봇과 식당 서빙 로봇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3일 자율주행 배달 로봇과 공원 순찰 로봇의 운행을 허가했다.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돼 인도나 횡단보도를 다닐 수 없고, 공원녹지법상 30㎏ 이상 동력장치에 해당해 공원 출입이 불가능했던 규제를 푼 것이다.

코로나19 진료 현장의 로봇은 중국에서 먼저 쓰였다. 의료진 감염이 많았던 초기 일부 병원에서 간호 보조 로봇을 격리병동에 배치해 간단한 소독과 배식 일을 맡겼다. 검체 채취 로봇도 개발됐다. 미국에선 선별진료소 대기자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화상 문진을 하는 로봇 개 ‘스팟’을 선보였다. 병원과 다중이용시설에서 소독제를 뿌리는 방역 로봇도 국내외에서 두루 쓰인다. 농업 로봇 ‘타이탄’은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멕시코 노동자를 대신해 잡초를 뽑고 수확도 한다. 국내 한 택배사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상자를 옮기는 상하차 작업도 로봇이 대신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새 로봇이 인간 곁에 바짝 다가오면서 로봇과 인간의 일자리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시대 로봇은 존재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사람이 없는 곳, 위험해서 못 가는 곳에서도 사람이 할 일을 사람만큼 또는 사람보다 낫게 감당하고 있어서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현장에서 로봇이 유효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소외가 심화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로봇에도 밀려 되돌아갈 길조차 막힌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 연구의 석학인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제시한 코로나시대 4개 계급 중에서 ‘원격근무 가능 노동자’를 제외한 ‘필수 현장 노동자’, ‘해고·휴직 노동자’, ‘잊혀진 노동자’들은 로봇과도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대량실업 이상의 위기가 예상된다. 낙관론도 있다. 로봇 등 신기술 발전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정서적인 영역에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는 식의 장밋빛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시대를 겪은 정부와 기업들이 효율을 앞세워 로봇·인공지능 등 신기술과 비대면 노동·산업 부문에 투자를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사람의 미래를 도외시한 채 기술 발전만 앞세우면 심각한 사회 불균형과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자각해야 한다.

로봇의 어원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로보타’(robota)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작업장에서 사람만큼이나 그 이상 일은 하지만 생각이나 감정은 없는, 즉 ‘사람 닮은 기계’를 칭했다. 요즘의 로봇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겉모습에 상관없이 점점 더 사람 같은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코로나는 로봇시대를 앞당겼다. 이제는 로봇을 사람 일을 대신하는 기계로만 여겨선 안 된다. 지금의 로봇시대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이 주도하는 세상의 종말을 고심해야 할 때다. 이것이 코로나가 시간을 앞당겨 우리에게 던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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