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때린다고? 힘도 맘도 없으면서 뭘!

2010.08.01 21:40 입력 2010.08.02 00:06 수정
박용채 | 경제에디터

[아침을 열며]대기업을 때린다고? 힘도 맘도 없으면서 뭘!

“을사(乙巳) 말고, 을사(乙死).”

삼성그룹 임원을 그만두고 최근 작은 사업체를 차린 모씨는 대·중소기업 관계를 을사조약으로 표현했다. “전엔 몰랐는데 요즘은 그 비애를 실감하고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구한말 일제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한제국을 강탈했듯, 갑(甲)인 대기업의 등쌀에 을(乙)인 중소기업은 죽어나고 있다는 얘기였다.

재계가 아우성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을 앞세우며 유례없이 대기업을 통박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은행보다 기업에 돈이 더 많다”(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삼성전자가 5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아팠다”(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는 발언에 이어 급기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부를 동색으로 여겼던 대기업 입장에서 이런 채찍질은 혼란스러울 게다. 사태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다소간 혼돈스럽기도 하다. 안절부절못하기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멍석은 깔렸지만 상전인 대기업을 몰아붙일 경우 부메랑이 되어 화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캐피털사의 금리인하 얘기는 또 다르다. 시작은 지극히 우발적이었다. 지난달 22일 대통령이 미소금융 현장을 방문했다. 당일 예정됐던 비상경제대책회의의 부동산대책 발표가 무산되면서 급조된 일정이었다. 한 고객이 대기업계열 캐피털사로부터 40%대의 대출을 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대통령이 사채를 예로 들며 질책했다. 혼비백산한 금융위원회는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이후 캐피털사들은 줄줄이 금리를 내렸다.

대기업 유례없는 통박에 아우성

대통령은 자신의 친서민 행보가 포퓰리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마뜩지 않은 표정이다. 정권 출범 때부터 서민 얘기를 해왔다며 진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란 명제 앞에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쪽은 등 따습고, 한쪽은 등 시린 상황이 계속되면 갈등은 커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친서민은 근본적으로 옳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외줄타기처럼 위태위태해 보인다. 당장 이번 소동의 결과가 뻔히 예상된다. 대·중기 상생의 경우 시쳇말로 지난 십수년 동안 수백번도 더 나왔던 얘기다. 다소간의 진전은 있었지만 근본적 패러다임이 바뀔 만한 것은 없었다. 정부가 대기업들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인다고 해서 바뀔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도를 선의로 여기고 존중해 보자. 진정 대기업의 잘못을 손보겠다면 무엇보다 의지가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터여서 정권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더구나 대기업들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을 그다지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 밀고 당기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 정도로 여긴다. 물론 요즘처럼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면 기업들이 시늉은 낼 것이다. 하지만 그 시늉은 오래가지 않는다. 더구나 감시와 제재라는 강제적 수단은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대기업을 손보려면 감성적 접근이 아닌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에 타당한 논거도 세우고, 그물망도 촘촘히 짜야한다.

벨 자신이 없다면 애초부터 칼을 뺄 필요도 없다. 정부가 그동안 대기업에 관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 올 초 중소기업들이 원자재값 급등을 못이겨 납품단가 현실화를 요구하며 어려움을 호소할 때도 정부는 뒷짐만 졌다.

벨 자신 없으면 칼을 빼지 마라

이를 감안하면 힘도 맘도 없는 어설픈 대기업 흔들기보다는 그동안 나온 서민정책부터 점검하는 게 우선일 게다.

집권 초기 금융당국은 ‘미소(美少)금융’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상품을 내놨다. 휴면예금과 대기업 출연금을 재원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에게 4.5%의 저금리로 대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공익성은 높이 살 만하지만 수익성은 제로에 가깝다. 지속적인 재원 투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소금융의 영속성은 없다.

수많은 오류가 지적되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서민대책으로 내놓은 반값 아파트(보금자리주택)나 반값 등록금(든든 장학금) 정책을 점검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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