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

2016.07.31 20:53 입력 2016.07.31 20:54 수정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영란세트’라는 메뉴를 내놨다는 뉴스를 며칠 전 TV에서 보았다. 생선회와 탕으로 구성된 7만원짜리 3인분 세트였다.

[아침을 열며]세상에 ‘공짜’는 없다

뉴스가 강조한 것은 가격이었다. 3명이 먹는데 9만원이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9만원 이하 메뉴’는 음식점의 생존 노력의 하나라는 게 뉴스의 설명이었다. 이 메뉴에는 1인당 밥값이 3만원을 넘으면 안된다는 어떤 불문율이 작동하고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무원, 사립교원, 언론인 등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앞으로 ‘밥값 3만원’은 불문율로 처벌의 잣대가 되는 것이다. 밥값에는 술과 음료수도 포함된다. 이 식당의 사례는 김영란법이 몰고올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법 시행까진 두 달 가까이 남았지만 음식점은 이미 김영란법의 파장을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그 속엔 변화의 강도가 만만찮으리라는 예감이 깔려있다. 식당의 메뉴판을 바꿔놓는 것처럼 김영란법은 밥값의 개념도 바꿔놓을 기세다.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본래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은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기도 한다. 밥값을 내는 자가 무언가를 부탁하는 처지에 있는 경우가 그렇다. 그럴 땐 ‘알아서 잘 봐달라’는 메시지가 담긴다. 암묵적이지만 단단한 메시지다. 비유적 표현이 당위적 어법에 힘입어 관례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식사 대접과 밥값, 그리고 대가. 이 묵시적 ‘기브앤드테이크’가 사회통념이란 점을 부인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도리’라는 말이 공연히 나왔겠는가.

김영란법에서 논란의 여지를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그 하나가 사회상규에 대한 언급이다. 사회상규상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의 청탁은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인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28일 사회상규의 개념이 모호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형법 20조에서 사회상규를 사회윤리나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적시하고 있고, 사회상규의 개념과 판단 기준도 대법원 등의 판례에 의해 확립됐다는 게 헌재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통념이라는 것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도 변하기 마련이다. 김영란법은 ‘밥값’을 둘러싼 기브앤드테이크의 사회통념을 변화시킬 것이다.

3만원. 일찍이 이만큼이나 명확하고 엄밀하게 밥값에 대한 법적, 도덕적 기준선을 제시한 적이 있을까 싶다. 앞으로 대접하는 쪽이나 대접받는 쪽은 직무와 관련 있는 식사 자리라면 내남없이 밥값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밥값을 생각하며 위법과 합법,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를 가늠할 것이다. 부정을 멈추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3만원이 아니다. 1인당 3만원 이하 영란세트가 늘어나는 만큼 부정한 청탁이 줄어든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영수증 쪼개기, 메뚜기, 페이백 같은 편법 결제 방식이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김영란법이 부정청탁 근절의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밥값 제한만으론 부족하다.

1만원짜리 공짜 밥이라면 얻어먹어도 괜찮을까. 김영란법이 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닐 것이다. 1만원짜리 밥도 거듭해서 대접받다 보면 그게 쌓이고 쌓여 청탁의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접대란 그런 것이다. 결국 문제는 밥값이 아니라 공짜 밥을 대하는 태도이다. 직무와 관련된 접대라도 3만원 이하면 문제없다는 사회통념은 위험할 수 있다.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누구와 함께하든지 공짜 밥이라도 아무런 기브앤드테이크가 없다면 마음이 따뜻한 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대놓고 말하진 않더라도 청탁의 뜻이 담긴 밥은 선의라도 따뜻하지 않을 터이다. 공짜 밥을 대하는 태도, 그것은 그 밥이 따뜻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기준이 돼야 한다.

3만원은 고작 숫자일 뿐이다. 우리 사회 뿌리박힌 비뚤어진 공짜 밥 문화를 바로잡자는 게 김영란법의 골자이다. 법을 요리조리 피하는 변칙적인 공짜 밥 문화가 횡행한다면 김영란법은 빛이 바랠 것이다. 이참에 공짜 밥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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