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제 어린이구호단체 유니세프에서 ‘백지 성명’을 냈습니다. 시리아 동구타 살상 사태에 대한 비난과 국제사회의 관심 호소를 담은 성명서였습니다.
백지라고 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유니세프는 성명서 타이틀 바로 밑에 백지 성명을 내는 이유를 써놓았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숨진 어린이와 그 부모, 그들이 사랑했던 이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습니다.”
유니세프는 묵언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백 마디 말보다 무언의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가 더 강렬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하얀 종이를 매개체로 하는 신문은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표출하려 할 때 백지 전법을 구사하곤 합니다.
이른바 백지광고입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 비판 논조를 꼬투리 잡아 동아일보를 억압합니다. 광고주들을 압박해 광고 게재를 막았던 것이죠. 동아일보는 백지광고로 맞대응합니다. 눈에 눈 이에는 이 혹은 단식투쟁을 연상시키는 이 신문의 묵언 시위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가 이어졌던 것이죠. 이후 백지광고는 신문에 종종 등장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종편방송 대상자를 확정한 다음날 몇몇 중앙일간지와 지역신문은 광고 없는 1면을 내보냈습니다. 신문들은 광고 하단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우리는 조중동방송의 특혜에 반대하며, 조중동방송의 광고 직접 영업으로 위기를 맞은 저널리즘을 지키기 위해, 광고를 싣지 않습니다.”
묵언의 공간이 넓어지면 울림도 덩달아 커질까요? 이 신문 1면은 기사까지 숫제 백지입니다. “신공항 백지화, 정부는 지방을 버렸다”는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백지 지면은 주로 정권, 정책을 향해 목소리를 내지만 독자를 향해 호소하기도 합니다. 미국 미네소타주 소규모 지역신문 워로드 파이오니어(Warroad Pioneer)는 백지 프론트면에다 자신의 목소리를 대놓고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이 신문은 비용 압박으로 인해 수년간 인력 감축 등 긴축경영을 해왔다고 합니다. 모바일 시대가 가져다준 위기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문은 독자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칩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신문은 없습니다.”
글자 하나 없는 사설, 이 경우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 경우일까요? 곳케이신문(滑稽新聞)의 사주이자 기자, 편집자였던 미야타케 가이코츠(宮武外骨)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괴짜 언론인입니다. ‘과격하고도 애교있게’가 신문제작의 모토였다는데, 이 백지논설에는 제호 옆에 필자 미야타케의 별명만 있을 뿐 내용은 쏙 빠져있습니다. 미야타케가 왜 백지논설을 냈는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본에선 이 때까지만 해도 언론의 정부 비판이 자유로웠다고 합니다. 1905년 신문이 발행될 당시는 러일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였습니다. 펜은 들었으되 쓰지는 않은 필자의 목소리가 보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