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오늘도”

2020.05.10 20:49 입력 2020.05.22 15:16 수정

이명박은 재임 시절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2013년 3월21일 KBS1 라디오와 교통방송 등을 통한 라디오 연설에선 “지금보다 국격이 높은 때는 일찍이 우리 역사에서 없었다”고까지 했다. 형을 포함한 측근들의 부정부패, 용산참사, 4대강 파헤치기 등 바람 잘 날 없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대통령이 라디오 전파를 이용해 국정을 홍보하는 행태 자체가 낡은 시대 유물 아니던가. 국격 상승은 우리가 주장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때부터 ‘국격’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겼다.

[아침을 열며]“수고했어, 오늘도”

그런데 국제뉴스를 다루면서 국격이라는 단어를 예기치 않게 자주 접하게 된다. 국내 환자 수가 확연하게 줄고, 유럽과 미국의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 ‘3월 중순’ 즈음부터 한국 대응을 모범적 방역사례로 칭찬하는 해외뉴스들이 들려왔다.

사실 코로나19 이후 국제뉴스는 온통 우울하다. 늘어나는 각국 사망자, 세계 곳곳의 텅 빈 거리 사진, 멈춰선 경제와 실업자 등 암울한 소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방역 성공이 부각된 것이다. 외신들은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진단키트 등 기술 역량, 지역폐쇄 등 극단 조치 없는 방역 성공 등을 칭찬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미국 CNN은 8일(현지시간) 한국 사례를 거론하며 “광범위한 검사와 공격적인 접촉자 추적, 공공보건 대책, 전면적 봉쇄 없이 확산을 억제한 디지털 기술의 조합이 이를 뒷받침했다”고 했다. 방역의 성공은 대한민국 의료체계 선진성을 부각시켰다. 사실 외국 생활을 잠시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 등 한국만큼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고 손쉽게 받을 수 있는 나라가 흔치 않다는 것을.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제도의 우수성이 재조명됐을 뿐이다.

주요국들의 실패도 대조가 됐다. 안일한 대처로 감염폭발을 초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중국 탓을 하며 책임론을 피하려 한다. 중국은 정보를 제때 공개하지 않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초래했다는 국제사회 비판을 받고 있다. 도쿄 올림픽을 의식해 바이러스를 방치했던 일본에선 뒤늦게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독일을 제외한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강국들은 휘청거린다.

속단은 금물이지만, 지금까지 성공적 대응은 과소평가할 것이 아니다. 이전의 한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인상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적 부를 창출한 강소국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코로나19에 비교적 잘 대처하고 정상생활을 모색하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됐다. 일상의 생활방역, 먼저 시작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까지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계가 주목한다.

분명 ‘코로나 이전의 한국’과 ‘코로나 이후의 한국’의 위상은 달라졌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27일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 자유를 일정 부분 양보한 한국과 대만 등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범적 통치모델로 꼽기도 했다. 이런 뉴스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들으면서 그렇게 듣기 싫었던 국격이란 말에 가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다만 세계의 찬사를 자랑스러워하되, 취하지는 말자. 난관들이 많이 남았다.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에서 보듯 방심하면 코로나19는 금세 창궐한다. 전 세계적 경제불황을 우리만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높아진 국가적 이미지를 경제·외교적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코로나19의 재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 강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집권세력에 180석을 몰아준 것도, 국정에서 성과를 내라는 무언의 압력일 수 있다.

각 개인이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자. 우리가 잘 버틴 것은 모두의 협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료나 가족 등 주변 사람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거나, 여의치 않으면 주먹이라도 맞대어보자. 앞으로 어려움도 함께 이겨나가자며.

시인 나희덕은 녹색평론 172호에 실린 ‘코로나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땅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란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싶다가도, 사회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평범한 이들의 비범한 지혜와 공동체적 연대가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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