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바람, 제대로 보자

2006.02.01 18:01

최근 중남미의 여러 선거에서 좌파 내지는 진보성향의 지도자들이 대거 선출되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쿠바의 카스트로나 브라질의 룰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 사회주의자 내지는 진보성향의 기존 지도자들에 더하여 농민운동가 출신인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나 사회당 여성후보인 칠레의 미첼 바첼렛의 승리 등에 대해 일각에서는 ‘좌파바람’이나 ‘좌파도미노’라는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 세계에 세계화와 자유주의의 물결이 넘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구 반대편 중남미 대륙에서는 이미 용도 폐기된 좌파 간판을 달고 있는 지도자들이 계속 집권하고 있으니 신기할 법도 하다. 좌파 간판을 달고 있는 지도자들이 집권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각국이 당면한 특수한 사정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이들의 선출을 좌파도미노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가? 그럼 왜 중남미에는 이런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일까.

-정치노선은 자유주의 지향-

중남미의 ‘좌파’나 대부분의 진보계열 지도자들은 현실정치에 있어 자유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새로 선출된 지도자가 신자유주의에 반하거나, 반미 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은 대개 사유재산을 부정하거나 국유화를 주장하기보다는 자본주의 틀 내에서 좀더 분배지향적인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즉 정책에 비추어보면 ‘좌파’가 좌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전력이나 선거운동 기간 중의 공약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았을 때 내놓은 정책을 잘 살펴봐야 한다. 경제정책만큼은 피노체트의 유산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칠레의 좌파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우경화되고 있고, 브라질의 룰라의 정책도 자본의 구미에 맞게 희석된 지 오래다. 여기에 볼리비아의 천연가스 자주적 운영 역시 넘어야 할 산은 너무도 많다.

게다가 중남미 민주주의는 그동안 꾸준한 성장을 통해 과거와 같이 공권력에 의한 선거부정이나 매표행위가 줄어들었다. 이는 곧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 집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소위 최소주의적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국가에서 도시화가 촉진되고 있고 매체의 발달로 인해 보다 많은 정보가 공개돼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기존 질서에 대한 재편이 가능해졌다. 백악관과 연대한 베네수엘라의 막강한 자본가들이 지난 몇 년간 차베스를 권좌에서 몰아내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로 끝난 것은 그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차베스에 대한 지지도는 70%선이다.

미국도 무관하지 않다. 이민문제와 마약문제를 제외하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중남미는 더 이상 주된 고려대상이 아니다. 국제 테러리스트의 거점국가도 없다. 9·11사태 이후 부시의 대외정책 기조가 대 테러 및 중동지향적으로 선회하면서 중남미가 소외받기 시작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중남미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인물이 가지는 특이한 경력과 상징성이 선거의 큰 변수로 작용한다.

-중남미 소외 美 정책도 영향-

위에서 보듯 중남미에서 이어지고 있는 진보성향의 대통령 당선을 좌파도미노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앞으로도 중남미에서 진보진영의 후보가 집권할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정책에 있어서는 우파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선출을 계기로 중남미는 반민주적 권위주의 세력이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민주주의를 더욱 더 공고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 핵심은 빈곤퇴치, 소득불평등 해소, 인권과 인간안보의 보장이다. 마약과 증가하는 사회폭력, 높은 범죄율 등 지역 전반에 만연한 사회적인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중남미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는 정치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선거에서 이긴 정당의 간판이나 표면적인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은가?

〈곽재성/경희대아태국제대학원교수·중남미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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