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태, 타산지석으로

2006.03.23 18:12

최근 발생한 프랑스의 학생시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번 시위는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26세 이하의 젊은이들을 첫 고용 후 2년 내에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최초고용계약(CPE)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에서 촉발되었다.

프랑스는 그동안 고용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세계적 추세를 외면해 왔다. 경쟁국들이 구조조정과 고용시장 개편에 나설 때 프랑스는 노동시간 축소와 정년 보장 등의 고용정책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프랑스 정부가 이렇게 강력한 노동시장 보호정책을 시행하였음에도 고용사정이 호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평균실업률은 9.5%이고 18~25세 청년들 가운데 22%가량이 실업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지난해 가을 소요사태가 있었던 이민자 거주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40%가 넘는다. 프랑스의 청년실업률은 영국(11%), 미국(12%), 독일(13%) 등 경쟁국가들에 비해 수치상으로도 높다.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저항-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작년부터 기업의 사회보험 부담을 줄여주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실업률이 10%대에서 9.5%로 하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률은 호전되지 않자 이번에 최초고용계약 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직업 안정성이 위협받게 된 26세 미만의 대학생들은 27세 이상은 보호받는데 왜 우리만 위태로워져야 하느냐며 불공평함을 따지고 있다. 즉 기성세대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호받으면서 청년세대에게만 악법을 적용하는 것은 명백히 연령차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프랑스의 최근 사태를 세대간 전쟁의 신호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가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 정책에 대한 프랑스인의 저항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프랑스의 유럽헌법 부결, 외국기업의 자국기업 적대적 인수에 제동을 거는 입법 등 보호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우향우 경향은 이웃 경쟁국인 독일의 개혁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 못지 않게 노동시장이 경직적인 독일이 프랑스보다 앞서 아젠다 2010을 내걸고 슬림화·유연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사실,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 등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여 왔지만 역사적으로 앙숙인 독일의 개혁 동향은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려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싼 노사정 간의 갈등을 보면, 우리나라도 프랑스와 유사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법안을 통하여 비정규직도 어느 정도 보호해야 하겠지만 비정규직 보호가 고용주의 비정규직 고용기피로 연결되게 해서는 안된다. 프랑스 사태가 청년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청년층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여 발생하였음을 상기할 때,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정규직이 가지고 있던 몫을 비정규직에게도 나누어 줄 때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우경화 경향을 명목적으로 따라서도 안된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회안전망을 충분히 갖춘 국가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진다 하여도 생계불안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최소한의 안전망조차도 엉성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근로계층의 불안을 부정만 할 수 없다.

-정규·비정규직 고통 함께해야-

세계화가 거역할 수 없는 추세라면,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도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유연성에서 벗어나 정규직도 고통을 함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위한 비용에 대하여 사용자도 기꺼이 부담할 수 있어야 경쟁력 있는 지속가능한 복지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김용하/순천향대교수·경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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