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대책과 국격

2012.09.11 20:59 입력 2012.09.12 02:57 수정
정재훈 |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

한때 국격(國格)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국격 향상에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분들이 위장전입, 주민등록법 위반, 부동산 투기 등을 일삼으면서 국민들에게 국격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었던 말이다. 그런데 요즘 쏟아져 나오는 성범죄 대책이라는 것들을 보면 진정 국격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시론]성범죄 대책과 국격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의 극우 테러리스트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77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는 지난 8월24일 노르웨이 법정 최고형인 징역 21년과 보호감호를 선고받았다. 브레이비크의 만행은 많은 노르웨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였지만, 사건 발생 직후 노르웨이 정부와 국민은 선동과 복수, 증오로써 대응하지 않았다. 브레이비크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노르웨이 사회 자체가 가진 문제에 집중하여 동일 사건 재발 방지책을 찾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브레이비크의 인권은 그대로 존중되었다. 이 사례 하나만 보아도 노르웨이 국격 수준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분열과 공포, 증오의 유령이 온 나라를 배회하고 있다. 부모들은 옆집 누군가가 내 아이를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한다. 집에 날아온 ‘우리 동네 성범죄자’ 사진과 주소 안내편지를 보면서 겁에 질린다. 자동차와 사람이 뒤엉켜 전투같은 일상을 치러내는 길바닥에서 이제는 잠재적 성범죄자를 찾아내기 위한 만인 대 만인의 감시가 일상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 유력 대통령 후보 한 분이 사형제의 본격적 시행 신념을 밝혔다. 지지층의 감성에 편승하여 당장 표 얻기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면서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토대로 실질적 사형폐지국 지위를 막 획득한 마당에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모양새이다. 더 나아가 화학적 거세도 모자라 물리적 거세 법안 발의를 하는 국회의원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도 불심검문 대국민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용역깡패들이 노동자와 철거민을 짓밟아도 손 놓고 있는 국가 공권력이 현재 악화된 국민감정을 이용하여 중세시대적 무한 폭력을 사용하겠다고 갑자기 난리들이다.

성범죄범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러나 흉악범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 할리우드식 영화에 길들여진 시각으로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배트맨, 스파이더맨에 열광하는 미국 사회는 범죄에 대응하는 국가폭력 수위를 높이고 무관용 원칙을 지킨 결과 국가 교도소도 모자라서 민간 교도소까지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누구라도 흉악범이 되기까지 과정이 있다. 빈곤, 소외, 질병 그리고 성격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성범죄자 등을 만들어낸다. 당장 국민감정에 맞지 않아 표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국격 수준이 높은’ 국가 정치 지도자들은 그러한 원인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문제해결을 함께 논의하는 소통의 정치를 한다. 그러면 국민들도 분노와 공포보다 이해와 관용으로써 주변을 살피게 된다.

국민을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고 배트맨 이미지로 다가가는 정치가 당장은 매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 지도자를 가진 국민들은 결국 불행해진다. 사회가 끊임없이 범죄로부터 위협 당하고 서로 불신하고 무서워하면서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지도자와 국민들은 관용과 인권 존중, 자기반성의 자세로써 브레이비크를 대했다. 브레이비크라는 괴물을 보아야 했던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래서 오히려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 행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성범죄자들이 생겨난 배경, 과정 등 그들의 삶을 관용과 자기성찰의 자세로 바라볼 때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격을 높이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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