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권이 만든 업보, 나향욱과 사드 배치

2016.07.27 20:51 입력 2016.07.27 20:54 수정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체감온도 35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불쾌지수는 연중 최고 수준이고, 거기에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더해지면, 화병마저 날 지경이다. 톤을 최대한 낮춰 말하려고 하지만 격정 토로로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론]두 정권이 만든 업보, 나향욱과 사드 배치

교육부 정책기획관으로 일한 나향욱이란 인물이 염장 지르는 이야기를 했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분개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게 비분강개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의 말이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하에서 길러진 고위공무원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공직문화의 일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승진하고 싶고, 권력을 누리고 싶은 공직자는,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장관의 의중을 살펴야 하고, 그들과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향욱이 가지고 있는 저 의식은 그 과정에서 길러진 것이다.

‘공무원은 민주적 시민으로 살아선 안 된다, 공무원은 국민을 바라보지 말고 자신을 임명한 권력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두 정권의 공직문화였다. 그렇게 살아야만 공무원으로서 클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니 나향욱은 별스러운 공직자가 아니다. 그는 이 두 정권의 공직문화를 가감 없이 보여준 내부고발자에 불과했다.

이런 공직자들이 정부를 가득 채우면서 충성 경쟁을 하는 가운데 또 하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졌다. 사드 배치다. 이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갖고 사는 공직자라면 절대로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건 한국으로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수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사드로 막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수천문의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왜 미련하게 정확도가 떨어지는 사정거리 수천 킬로미터의 장거리 미사일을 쏘겠는가.

사드 배치로 우리가 얻을 것은 동북아의 긴장이며 예측할 수 없는 국익 손실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과 그로 인한 한반도 주변 정세의 악화를 우리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러한 염려는 보수의 브레인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중앙일보의 김영희 대기자까지 인정한 바이다. 그도 사드 배치가 우리 국익에 악영향을 줄 것을 염려해, 그 포기를 간곡하게 제안하지 않았던가.

나는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어느 고위공직자가 내부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없다. 사드의 군사효용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만한 국방부의 고위공직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을 했다는 소식은 더더욱 들은 바 없다. 정부 내의 토론기능은 상실되었고 국민의 여론은 공직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로지 공직자들은 청와대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하수인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것은 지난 두 정권이 공직사회를 완전히 변모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복종의 문화가 만들어졌고, 지당대신(至當大臣) 공무원들이 양산되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정책적 오류로 나타나, 민중의 삶을 파국적 국면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나라 민주주의는 백척간두에 섰다.

원래 권위주의의 최고봉은 그 대상을 스스로 복종케 하는 문화독재이다. 역사에 남는 독재자들이 그것을 노렸고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 모두에게 패배를 안겼고 무단독재의 상흔만 남기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 또 다른 문화독재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 공직사회에 무뇌아적 예스맨들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게 단지 인사권을 휘두른 결과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고난도의 통치기술이 있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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