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빅 브러더의 시대

2003.08.01 18:25

“그는 자고 있든 깨어 있든, 일하든 쉬고 있든, 목욕탕에 있든 침대에 있든, 감시받고 있다는 경고나 예비지식 없이 감시를 받고 있다.… 당원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상경찰의 감시 속에 산다. 그는 혼자 있어도 혼자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년’의 한 대목이다. 턱수염을 기른 대형(빅 브러더)의 철저한 감시체제 하에서 사는 전체주의 사회를 고발한 이 소설은 62개국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록 ‘대형’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전자문명의 발달로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나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관청에 등록된 개개인의 신상자료는 몇가지 패스워드만 알면 누구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얼마전 교육부가 추진하던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전산 프로그램이 저항에 부딪쳤던 것도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 2001년 미국 경영자협회가 미국 전체 근로자의 4분의 1을 고용하고 있는 1,627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의 기업이 직원들의 인터넷과 전화의 부당한 사용을 수시로 파악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경영자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00개 기업 중 16%가 직원의 움직임을 비디오로 녹화하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이같은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통보했다고 응답한 회사도 84%나 되었다고 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나 나옴직한 감시체제가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에서 전국 207개 사업장의 노동자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업장의 약 90%가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41.5%가 인터넷 감시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폐쇄회로 TV를 설치한 곳도 57%나 된다고 한다. 전자문명의 발달로 싫든 좋든 우리는 이미 ‘빅 브러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한가지 위안은 우리가 누리는 전자문명이 쓰기에 따라 흉기도 되고, 이기(利器)도 될 수 있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광훈 논설고문 k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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