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노란봉투의 꿈

2021.09.01 20:40 입력 2021.09.01 22:29 수정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장비 파손 등 손해를 입었다면서 경찰이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회원 등이 2019년 6월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손해배상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장비 파손 등 손해를 입었다면서 경찰이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회원 등이 2019년 6월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손해배상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옛 시골에서 우편배달부가 집에 노란봉투를 떨구면 바로 아버지에게 들고 갔다. 편지 담긴 흰봉투와 달리 노란봉투엔 행정·학교 고지서가 자주 담겼다. 색다르게 보낸 우편물이었다. 노란봉투는 1990년대 초까지 지폐·동전을 담아준 월급봉투였고, 해고통지서도 그 봉투로 보냈다. 은행 계좌가 낯설고 휴대폰 문자가 없던 1970~80년대 소설·시엔 노란봉투가 곧잘 등장한다. 삶의 애환과 희망이 그 노란 빛깔에 물들어 있을 때였다.

노란봉투는 2014년 사회운동의 상징물이 됐다.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회사·경찰이 청구한 47억원의 손배·가압류에 십시일반으로 돕자는 물결이 인 것이다. “작은 일부터 시작합니다.” 39세 배춘환씨가 아이 태권도비로 보낸 4만7000원에 가수 이효리도 “제 4만7000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려…”라며 동참했고, 놈 촘스키는 47달러를 보내왔다. 이렇게 111일간 시민모임 ‘손잡고’에 4만7547명이 보낸 14억7000여만원이 답지했다. 노동사에 가장 컸던 시민모금 열기였다.

한국은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파업)에 민사 책임을 묻는 유일한 OECD 국가이다. 손배소는 임금·근로조건을 다투는 이른바 ‘합법파업’에만 면제되고, 정리해고·민영화 등에 맞선 대다수 파업에 남발되고 있다. 바로 임금·퇴직금·부동산부터 가압류하는 손배소는 노동자에게 경제적 위기·가족 해체 고통을 안기고 노조활동을 옥죈다. 10년 만에 복직한 쌍용차 해고노동자 첫 월급도 50%는 가압류됐다. 가장 먼저, 가장 늦게까지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경찰의 쌍용차 손배소 취하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손배 실타래를 푸는 첫발을 국회가 뗀 것이다. 경찰은 2019년 ‘폭력 진압’을 인정한 진상조사위 권고에 따라 경찰청장이 사과하고 가압류를 풀었지만, 손배소송은 2016년 시작된 대법 판결 후에 결정하겠다고 미루고 있다. 이 금액만 28억원을 넘고, 하루 62만원씩 이자가 붙고 있다. 쌍용차는 “정부가 취하하면 하겠다”는 태세다. 노동3권에 손배소를 금지하고, 폭력·파괴 행위만 예외적으로 손배소를 하도록 한 ‘노란봉투법’이 21대 국회에도 다시 발의됐다. ‘노란봉투의 꿈’은 7년이 지났어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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