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2년, 북한 빠르게 시장화…남북협력이 한국 경제위기 완충작용 할 것”

2017.02.03 21:50 입력 2017.02.03 21:52 수정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을 10년간 지낸 김광길 변호사가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도중 북한의 법률자료를 놓고 포즈를 취했다. 김 변호사는 “독일 분단 시대 베를린이 동독의 변화에 영향을 준 것처럼 개성공단 12년간 북한도 바뀌었다”면서 “대선주자들이 공단 재가동을 적극 공론화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을 10년간 지낸 김광길 변호사가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오피스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도중 북한의 법률자료를 놓고 포즈를 취했다. 김 변호사는 “독일 분단 시대 베를린이 동독의 변화에 영향을 준 것처럼 개성공단 12년간 북한도 바뀌었다”면서 “대선주자들이 공단 재가동을 적극 공론화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개성은 철원~포천, 동해안 도로와 함께 북한군의 3대 남침 루트였다. 한국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여름 남북이 송악산 488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연대급 규모의 군사충돌을 불사했을 정도로 개성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2000년 공단을 짓기로 남북이 합의한 뒤 인민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이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휴전선이 실질적으로 10~15㎞ 북상한 것이다. 남북협력의 긴장완화 효과가 이보다 더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없다.

그 개성공단이 지난해 2월10일 박근혜 정부의 갑작스러운 중단조치로 12년 만에 폐쇄됐다. 다음날 밤 11시 우리 측의 단전조치로 공단은 물론 개성시 일부 가정까지 수돗물 공급이 끊겼다.

개성공단은 지난 1년간 첨예한 남남갈등의 대상이 됐다. 일각에선 입주기업인들까지 ‘종북’으로 매도하지만 국회의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1월18~19일 성인 남녀 1030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6%가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군이 다시 주둔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금도 개성공단에는 입주 기업들의 자재나 출입 차량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서의동의 사람·사이-김광길 변호사]“개성공단 12년, 북한 빠르게 시장화…남북협력이 한국 경제위기 완충작용 할 것”

2004년 개성공단이 문을 열 때부터 2013년까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을 지낸 김광길 변호사(50)를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오피스텔에서 만나 10년의 경험을 들었다. 개성공단을 나와 2년간 옌볜에서 북한의 변화를 연구한 그는 “베를린이 동독을 변화시킨 것처럼 개성공단 12년간 북한도 바뀌었다”면서 “북한은 중국의 개방 초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시장화가 진전되고 있다. 제재를 이유로 방관하기보다 적극 개입해 변화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주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성공단을 의제화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고 가동 재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베트남 대체공장 채산성 안 맞아

- 지난 1년간 어떤 활동을 해왔나.

“지난해 5월 헌법소원을 내고 기업 피해조사에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헌법소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불거지면서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 기업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원래 국내에선 도저히 사업이 안되니 개성에 간 기업들이다. 해외로 가봐야 채산성이 맞지 않아 대부분 가동 재개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 주재원들은 실직해 뿔뿔이 흩어졌고, 특히 입주기업에 식자재 등을 납품하는 영업기업들은 보상을 거의 못 받았다.”

- 해외 대체 공장도 채산성이 안 맞나.

“베트남만 해도 월 인건비가 300달러가량 든다. 개성은 야간·연장근로 수당과 사회보험료 포함해서 실제 지급액이 근로자당 평균 150달러로 절반이다.”

- 공단 폐쇄의 어떤 점이 위헌인가.

“공권력 행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규정한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다. 재산권 행사를 법률에 따라 제한하고, 그 경우 정당하게 보상해야 하는 제23조에도 어긋난다. ‘정세와 상관없이 정상운영을 보장한다’는 남북 정부의 2013년 합의서를 믿고 진출한 기업에 대한 ‘신뢰보호 원칙’에도 맞지 않다.”

- 정부는 뭐라고 반론하는가.

“‘통치행위’였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헌법 위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게 아니다. 북한이 2013년에 가동을 중단했을 때도 법적 근거가 없었는데 그걸 북한의 ‘통치행위’라고 할 거냐.”

- 입주기업들은 정부의 피해추계가 지나치게 축소됐다고 한다.

“기업들이 주장한 피해액이 9000억원이었는데 정부 보상액은 5000억원에 못미쳤다. (그것도 경협보험금과 무이자대출뿐이다) 근데 그 9000억원에 ‘영업손실’이 빠져 있다. 건물 철거 시 보상해야 하는 권리금 같은 건데 조사항목이 아예 없었다.”

■ 공단 가동이 대북전단보다 효과 커

김광길이 법무팀장으로 근무하던 개성공단지원센터 16층 사무실에서는 맑은 날 북한산이 보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공단에 적용되는 법의 세칙을 만들고, 각종 사고처리를 맡았다. 처음에는 불퉁하던 북한사람들이 ‘말랑말랑’해져 가는 걸 10년간 지켜봤다. “남북이 쓰는 말이 비슷해지고, 멋쟁이 여성들도 늘어났다.” 2013년 개성공단을 나온 뒤 2년간 옌볜대학 방문학자로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연구하면서 시장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북한의 또 다른 모습에 주목했다.

- 개성공단의 최종 계획은 창원공단 규모(800만평)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2단계(150만평)만 이행됐더라도 좋았을 거다. 개성공단은 분단독일에서 동독에 있던 서베를린과 똑같다. 소련이 서베를린을 두번이나 봉쇄했지만 서방이 지켜내지 않았나. 근데 개성공단은 우리가 나서서 폐쇄해 버렸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서로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우리는 ‘북한이 돈도 벌고 핵도 갖는 거 아니냐’, 북한은 ‘돈 벌다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원래 사업이란 어느 정도 서로 그런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는 거다.”

- 잘못 알려진 내용들이 많은가.

“서로 접촉도 제대로 못한다고 오해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수많은 접촉이 일상적으로 있었다. 개성공단지원센터 사무실에서 날씨 좋을 때 북한산 꼭대기가 보이면 같은 방의 북측 사무원들에게 ‘저 산 밑 아파트가 우리집’이라고 알려준다. 그런 일상적인 얘기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상을 알게 된다.”

- 사고업무 처리는 어떤 걸 말하는가.

“초기엔 싸움도 나고 교통사고나 음주사고도 있다. 화장지 공급문제로 옥신각신한 일도 있다. 북한에선 생리대가 없어 화장지를 대신 쓰기 때문에 수요가 많다. 그 사정을 모르고 ‘하루 몇 m’씩 야박하게 주니 자존심 상한 거다.”

- 북한은 초기에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우려했다고 하던데.

“실제로 그랬던 것 같다. 초기엔 사소한 시비도 있었지만 갈수록 누그러지더라. 망명한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북한이 경제특구를 하면서 사회주의라는 큰집을 허물지 않고 돈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했는데 맞는 얘기 같더라.”

- 그렇다면 ‘북한이 변하지는 않으면서 돈만 빼먹는다’는 말이 나올 법하지 않나.

“중국에선 1990년대 후반까지 공개총살형이 있었는데 개혁·개방 후 외국자본이 들어오면서 ‘겁나서 투자하겠느냐’는 불만이 나오자 공개처형을 금지했다. 공단에서 10년간 있으면서 북한사람들도 유연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북한에 전단 날리고 확성기 트는 것보다 개성공단 효과가 더 압도적이다.”

-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뜻인가.

“북한은 압박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곱씹어서 변화를 선택하는 것 같다. 우리가 몇개의 선택지를 주고 얻을 이득이 뭔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개방 초기와 지금의 중국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지 않았으니 중국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 않나.”

- 현재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단계와 비슷하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나선특구 종합무역시장을 보니 북한으로 안 들어가는 물품이 없다. 전선줄 같은 중간재를 취급하는 시장도 생겼는데 이건 당국 허가없이 생겨날 수 없다. 옌볜에서 보니 사적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처리할지를 다루는 북한 문헌들도 보인다. 북한 당국이 계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옌볜에 북한 학자들이 와서 연구하는 게 그런 것들이다.”

-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가.

“그래도 ‘시장경제’라는 표현은 안 쓸 거다. 중국은 지금도 ‘사회주의초급단계론’ 같은 말을 쓴다.”

- 남북관계가 거의 10년째 악화되면서 이런 변화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시장화에는 일정한 제도 변화가 뒤따르고 이것이 근본 변화로 이어지는 게 세계사적 경험 아닌가. 근데 우리는 대북제재를 들어 손을 놓고 있는 거다. (재가동된다면) 공단 상품을 북한에 파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북한에 그 정도의 구매력은 생긴 것 같다.”

■ 개성공단에 미·중 기업도 유치해야

김광길은 대학을 졸업하고 울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그만둔 뒤 변호사가 된다. 로펌에서 기업 인수합병과 금융업무를 하며 대기업의 ‘갑질’이 횡행하는 기업 생태계의 심각성을 절감했다. 개성공단 근무를 자원한 것은 중소기업에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 한국경제 상황이 극히 좋지 않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전까지 남북협력이 경제의 완충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사양산업이라도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면 가능성이 있다. 식기를 생산해 철도로 유럽에 보내면 수지가 맞을 거다. 우리 산업이 고부가가치화해야 하는데 그 기간에 남북협력이 완충작용은 할 수 있다고 본다.”

- 박근혜도 한때 ‘통일대박’을 외쳤다.

“근데 우리 스스로도 바뀌어야 한다. 임금격차도 심각하고, 노동법도 잘 안 지키는 폭압적인 우리 노동환경을 민주화하지 않은 채 북한과 협력하는 것은 문제다.”

- 개성공단의 운영방식을 보면 독일식 노사협의회 같은 성격도 있는 것 같다.

“북한 근로자들에게 말도 속 시원하게 못해 성질난다는 기업인들도 있다. 그게 개성의 또 다른 모습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이등국민’ 취급받지만 개성공단은 체제가 보호하니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문화가 생긴 거다. 남북관계도 이렇게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

- 재가동하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

“투자안정성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 외에 ‘국제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나 미국기업이 입주한다면 남북이 함부로 문을 닫지는 못할 거다. 경협보험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취급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기업피해가 발생하면 중국이 보험금을 내주도록 엮어놓으면 남북이 조심하게 될 거다.”

-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돼 공단 재가동이 힘들 거라는 관측도 있다.

“초기에도 제재는 있었지만 국제사회에 이해를 구하면서 운영했다. 제재 핑계대지 말고 우리 사회가 능동적으로 공론화하고 국민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 북한은 공단재개를 원하고 있나.

“북한이 공단폐쇄 이후 낸 성명에는 ‘몰수’ 대신 ‘청산’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청산절차를 거치기 위해 소유자인 남측과 대화하겠다는 뜻이다.”

- 지금이라도 기업인들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

“배관이 터지거나 건물 지하가 침수됐을 수 있어 재산보호 차원에서라도 방북을 허용해야 한다. 겨울철 점검을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공사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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