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으며 수술, 당직 땐 100여명까지 진료”

2019.04.01 20:56 입력 2019.04.02 10:59 수정

전공의 과로사 계기 ‘노조 지부’ 추진, 대전협 이승우 회장

‘80시간 노동’ 꾸미려 다른 의사 이름으로 처방케 종용도

환자 볼모로 한 권리 주장 아닌, 환자 위한 처우 개선 요구

지난달 27일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만난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전공의들이 살인적 노동시간과 갑질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전공의노조의 사업장별 지부 설립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달 27일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만난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전공의들이 살인적 노동시간과 갑질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전공의노조의 사업장별 지부 설립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어느 교수님은 수술 장갑을 2겹 끼고 수술실에 들어오신다고 합니다. 전공의를 때린 뒤 오염된 겉 장갑을 벗고 수술을 계속하시려고요.”

지난달 27일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만난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29)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병원에서 겪는 갑질 피해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수술이 많은 과의 경우 폭언은 기본이고 수술 도중에도 폭행을 당한다”는 증언이었다. 그는 “하지만 대다수 전공의들이 수련 과정을 포기할 수 없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대전협은 대한전공의노동조합(전공의노조)의 사업장별 지부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지난달 25일 밝혔다. 지난 2월 발생한 신형록 인천 길병원 전공의 과로사 사건을 계기로 전공의 1만5000여명이 처한 반인권적 노동환경을 사업장별 지부 설립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에 보건의료노조가 있지만 의사는 가입 대상이 아니다. 전공의들은 병원에서 ‘을’의 신세이지만 의사라는 이유로 보건의료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2006년 전공의노조를 따로 만들었지만 가입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중앙 조직은 있지만 사업장, 즉 개별 병원 단위에 노조 지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현장에서 전공의들을 대변할 조직 없이는 제도 개선조차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며 사업장별 노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대전협 차원에서의 제도 개선 노력은 계속됐고, 성과도 있었다. 2016년 주당 120시간을 넘나들던 전공의들의 노동시간을 주당 평균 80시간 이하로 제한하는 전공의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2018년엔 전공의에 대한 폭행과 성희롱 등을 처벌하는 조항도 신설됐다. 그는 “그러나 병원들은 80시간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대신 80시간만 일하는 것처럼 꾸미는 데 열중했다”며 “초과 근무 시간에는 다른 의사의 이름으로 처방을 하도록 종용하는 등 근무 기록을 꾸미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갑질 피해도 여전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법이 개정됐지만 지금도 숱한 전공의들, 당장 내 친구들도 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전공의들에게는 당장 옆에서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전공의노조 지부의 필요성이 절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잠잘 시간도 부족한 전공의들에게 노조 지부 조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련을 받는 처지라 노조 일만 전임할 수도 없다. 4~5년만 참고 전문의가 되어 개원하면 사용자가 되기 때문에 그간 노조를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금은 경쟁이 심해져 폐원하는 개인병원들이 속출하고, 실제 많은 선배들이 개원의가 아닌 봉직의(월급받는 의사)를 택한다. 그러나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사가 사용자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의사도 노동자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전공의노조는 살인적인 노동 시간을 줄이려면 궁극적으로 전공의 한 명당 진료 환자수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 한 명당 하루에 40~50명 정도, 야간 당직 때에는 1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한다”며 “환자가 어떤 질환을 앓는지, 무슨 처방을 받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언제든 의료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개인 병원들이 넘쳐나 문을 닫는데 대형병원에선 의사가 부족합니다. 뭔가 잘못된 거죠.“

그는 “노조 지부 설립에 대한 우려도 안다”고 했다. ‘국민 건강권을 볼모로 밥그릇 챙기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 전공의들의 파업이 응급 의료 현장에 미칠 충격에 대한 걱정 등을 이해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노조의 본질은 파업이 아니라 권리 보호”라며 “환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쟁의가 불가피하더라도 응급의료 현장에서의 파업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이 원칙이 깨지는 순간 전공의노조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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