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시간 사투 벌인 울진·삼척 산불…인간의 노력에 하늘의 힘 더해 껐다”

2022.03.15 23:15 입력 2022.03.15 23:22 수정

최병암 산림청장

최병암 산림청장(왼쪽)이 지난 5일 오전 공중지휘 헬기를 타고 경북 울진군 산불과 강원 삼척 산불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산림청 제공

최병암 산림청장(왼쪽)이 지난 5일 오전 공중지휘 헬기를 타고 경북 울진군 산불과 강원 삼척 산불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산림청 제공

목숨 건 소방대원·봉사자 덕분
97% 진화 상황서 비 내려 완진

온난화로 봄 가뭄 갈수록 심각
대형 산불 대비 시스템 갖춰야

213시간. 산림·소방 당국이 울진·삼척 산불 진화를 위해 ‘사투’를 벌인 시간이다. 국내 발생 산불 중 최장 기록이다. 울진·삼척, 강릉·동해, 영월 등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산불로 타버진 산림의 면적은 2만5003㏊에 이른다. 이 또한 최대 피해 규모로 기록됐다.

최병암 산림청장(55)을 지난 14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빨간색 진화복 차림이었다. 언제 다시 산불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의 진화복에서는 아직도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최 청장은 “이번 산불은 불을 끄기에 가장 어려운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사상 최악의 가뭄(최근 3개월 강수량이 평년 동기 대비 14.6%에 불과) 속에 태풍급인 초속 25m가 넘는 바람이 불었고 산불이 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등 국가의 핵심 인프라는 물론 금강송 숲 쪽으로 번지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213시간 사투 벌인 울진·삼척 산불…인간의 노력에 하늘의 힘 더해 껐다”

최 청장은 산이 험준한 데다 바위와 자갈이 많아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알려지지 않은 현장 상황도 설명했다. 그는 “바위와 자갈은 화기와 열기를 오래 보유하기 때문에 헬기로 물을 뿌려도 바로 증발되고, 불을 계속 일으켰다”고 말했다. 때로는 직접 헬기를 타고 지휘에 나서기도 했다. 최 청장은 “산불의 영향으로 통신사 중계기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통신이 두절되는 바람에 현장 지휘부를 옮기는 소동도 빚어졌다”며 아찔했던 순간도 회고했다.

최 청장은 “사람의 접근도 어려워 군의 특공대까지 출동시키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는데, 원전과 LNG 시설은 물론 금강송 숲을 지켜내고 인명피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면서 “모두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진화에 나서준 산불진화대원, 헬기 조종사, 소방대원, 자원봉사자, 군 등의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산불을 진화하는 동안 하루 3시간씩 잤고, 수시로 굶었다고 했다. 그만큼 산불 상황이 급박했다는 얘기다.

최 청장은 “사람의 힘으로 97% 진화한 상황에서 13일 비가 내렸고, 결국 최종 진화에 성공했다. 이번 비는 잔불을 빨리 정리해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금강송 군락이 있는 지역에는 예상과 달리 20㎜의 비가 내리면서 완전 진화가 가능했다. 사람의 힘과 하늘의 힘이 합쳐지면서 완전 진화가 이루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복귀한 그에게는 잠시의 쉴 틈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대형 산불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겨울·봄철 가뭄은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당연히 대형 산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당장 주요 숲과 시설, 주택가를 산불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장 추진해야 할 대책으로 금강송 숲, 원전, LNG생산시설, 주택가 등을 지킬 수 있는 방어선 구축 등 대형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 청장은 “이런 대책은 산림청이나 소방청 등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관련 정부 부처는 물론 지자체까지 모든 역량을 모아 대형 산불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림청 차원에서는 우선 금강송 숲을 지키기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언제 다시 금강송 숲이 산불의 위협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 청장은 “우선은 금강송 숲 주변에 대규모 임도(林道, 숲을 관리하기 위한 길)를 만들어 방어막을 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도는 그 자체가 방어막이기도 하고, 화재 발생 시 장비 진입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주요 숲이나 시설을 지키는 데 유용하다.

그는 이번 산불을 통해 소나무 숲의 위험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면서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산불에 강한 활엽수 등 다른 나무로의 수종 교체가 필요한데, 이 경우 토양을 개량하는 작업까지 필요하다. 당장 모든 소나무를 다른 나무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종 갱신을 추진하는 사업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최 청장은 “산불은 ‘예방이 최고의 대책’이라는 사실을 국민들께 간절하게 호소한다”며 예방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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