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세월 뒤로…아름다운 꽃망울 피우시길”

2022.05.09 22:51

김지하 시인 추모 물결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지하 시인(본명 김영일)의 빈소. 연합뉴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지하 시인(본명 김영일)의 빈소. 연합뉴스

“어두운 시대에 자신의 입장을 거침없이 표현했던 분”
후배 문인·지인, 작품 세계 재조명하는 책 출간 예정

1970년대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저항시로 독재정권에 맞섰던 김지하 시인이 지난 8일 향년 81세로 타계한 후 그를 애도하기 위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9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정치인·문인 등 각계 인사들이 찾아와 유족을 위로하며 함께 아픔을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를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김부겸 국무총리,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윤정모 (사)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김석종 경향신문 사장, 배우 최불암씨, 가수 조용필씨 등은 근조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1970~1980년대 김지하 시인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문인들과 시민사회 인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애도의 글을 잇따라 게시했다. 진보성향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이시영 시인은 SNS에 고인이 생전 그린 난초 그림의 사진을 올리고 “온갖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김지하 시인이 영면하셨다”며 “부디 저세상 건너가시거든 새벽 이슬 젖은 아름답고 고운 꽃망울 많이 피우소서”라고 썼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됐을 당시 고인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선배님,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어요. 긴급조치 때 선배님 양심선언을 배포했다고 구속된 동료들이 떠오릅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썼다.

이부영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상임대표(전 국회의원),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마지막 재야’로 불리는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전 국회의원),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은 이날 빈소를 직접 찾아 고인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부영 상임대표는 “서울대에 함께 다닐 때부터 김 시인은 정치적 식견이나 문화적 감수성이 남달랐고, 어두운 시대에 자신의 입장을 거침없이 표현했던 분”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손학규 전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 판소리와 연극을 다 김 시인에게 배웠다”며 “독재에 맞선 저항시인이었던 선배께서는 민주화 이후 생명문학포럼 등 생명과 관련된 운동에 집중하셨던 자유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임진택 창작판소리 명창은 “변절과 관련해 논란이 많은데, 김 시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섬망 증세를 보였다. 섬망 증세를 앓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생명사상에 대해 깨달았으며, 이것과 관련해 민주화운동 등을 등한시했다는 오해를 산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책도 출간될 예정이다. 손정순 도서출판 ‘작가’ 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김지하 시인의 작품세계 전반을 조명한 글을 묶은 단행본을 후배 문인들, 연구자들이 기획하고 있었다”며 “코로나19 등 여러 사정으로 미뤄지다가 결국 ‘추모집’ 형태로 나오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인의 둘째 아들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가족들이 모두 임종을 지켰는데 아버지께서 일일이 손을 잡아보고, 웃음을 보이신 뒤 평온하게 가셨다. 말도, 글도 남기지 못하셨지만,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른 뒤 11일 오전 9시 발인한다. 장지는 3년 전 별세한 부인 김영주씨가 묻힌 강원 원주시 흥업면 선영이다. 후배 문화예술인과 생명운동가 등은 고인의 뜻과 사상·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49재인 오는 6월25일 서울에서 추모행사를 갖기로 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