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논의 가속…호스피스와 존엄사 병행 사회적 합의 도출해야”

2022.09.06 20:49 입력 2022.09.06 20:51 수정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대학로 연구실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 교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삶 역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삶을 마무리하는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대학로 연구실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 교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삶 역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삶을 마무리하는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삶의 질 연구 및 완화의료 분야 전문가다.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교수와 한국건강학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1991년부터 30년 넘게 암환자, 만성질환 환자 및 그 가족의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한 연구와 진료를 해왔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설립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연명의료결정법’ 법제화에 앞장선 공로로 2016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나는 품위있게 죽고 싶다> 등의 저작과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해왔다.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하는 데 있다”는 신념으로 환자 및 가족의 총체적 행복과 건강을 증진하는 프로그램 개발·적용에 매진하고 있다.

웰다잉 수요를 정책이 못 따라가
국민 76% 의사조력자살에 찬성
국가가 살아야 할 책임은 부과하며
행복추구권은 왜 보장하지 않나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잘 살지 못한다”고 로마의 현인 세네카는 말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좋은 죽음을 누리고 있는가.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인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제는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숨을 거둘 정도로 죽음은 의료기술에 종속된 양상이다.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기술이 역설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법제화됐지만 갈 길은 멀다. 호스피스를 비롯한 의료돌봄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임종 단계에서만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협소한 법 조항은 현실적 문제들을 낳고 있다.

‘현생 중심’이고 물질주의적인 한국 사회가 그간 ‘잘 사는 법’에 몰두해왔다면, 고령사회를 맞아 이제는 ‘잘 죽는 법’을 준비해야 할 때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및 암통합케어센터 교수를 지난달 31일 연구실에서 만나 최근 발의된 ‘조력존엄사’ 법안이 한국 사회에 던진 ‘웰다잉’(좋은 죽음) 화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비참한 죽음의 현실에 대한 국민의 절망감이 의사조력자살 찬성 여론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제는 호스피스와 존엄사를 병행하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안락사 논의 가속…호스피스와 존엄사 병행 사회적 합의 도출해야”

종교계선 생명경시를 언급하지만
지금 문제는 생명 아닌 삶의 경시
결혼 돕는 웨딩 플래너처럼
죽음에도 웰다잉 플래너 필요

- ‘좋은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은 동물을 넘어 신적인 존재가 되고자 열망합니다. 죽음을 넘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이죠. 불교의 해탈, 기독교의 부활이 그 예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기억되는 삶이 중요합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정점-종점(peak-end)’ 원칙을 발견했는데요. 최고점일 때의 고통과 마지막의 고통이 전체 고통의 강도를 결정한다는 겁니다. 기쁨과 즐거움에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내가 꼽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과 마지막 순간을 기록·정리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완성 작업이 필요합니다.”

- 말기 환자가 자신의 결정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의사의 조력자살을 허용하자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조력존엄사법안)이 최근 발의됐습니다.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국민이 죽음의 현실에 절망해 안락사 여론이 커졌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저희 연구팀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8명(76.3%)이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상보다 안락사 논의가 훨씬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웰다잉에 대한 국민 수요를 정책이 못 따라가 빚어진 문제입니다. 호스피스 이용률은 전체 사망자의 6%대, 말기암 환자조차 23%대에 그치고 있습니다. 고독사와 간병살인이 사회적 문제가 된 데다, 요양병원의 비인간적 처우에 직면하면서 국민들이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느니 내가 내 삶을 결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저는 줄곧 의사조력자살에 대해 ‘시기상조다, 웰다잉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만 이제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호스피스와 존엄사를 병행하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합니다.”

104세 고령에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행을 택한 호주의 데이비드 구달 박사. 바젤 | AP연합뉴스

104세 고령에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행을 택한 호주의 데이비드 구달 박사. 바젤 | AP연합뉴스

- 간병살인은 ‘국가의 죄’라고 하셨습니다.

“중병으로 스스로를 돌보기 어려운 환자와 그 간병을 책임져야 하는 보호자의 기본권을 국가는 보장해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이 단절돼 벌어지는 살인은 반인류적 국가나 불법집단이 고문과 폭력으로 강요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처벌받을 것을 감내하고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가족이 살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고령사회가 닥치면 간병살인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기본 통계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살아야 할 책임’을 부과하면서 왜 헌법에서 명시하는 행복추구권은 보장하지 않습니까.”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 반대할 땐
한국에선 할 수 없게 돼 있어
당사자보다 가족 결정 존중은
어불성설이고 헌법에도 위배

- 생명은 존엄하기 때문에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종교계에서는 이야기합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삶 역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종교계에서는 조력존엄사 문제에 대해 생명경시 문제를 제기하는데, 생명과 삶의 권리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습니까. 지금 문제는 생명이 아니라 삶이 경시된다는 것입니다. 말기 환자의 생명은 중단되더라도 삶은 죽음으로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 생명이라는 대원칙을 강조하다가 개인의 삶이 희생된다는 의미인가요.

“종교계가 생각하는 생명의 가치대로라면 유한한 생명을 무한정 연장해야 할까요. 의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주어진 수명대로 사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하면서 죽음을 의료화했습니다. 예전에는 더 이상 살기 어려운 환자의 경우 집에 모셔서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맞는 죽음을 호상이라 하고, 병원에서 죽으면 객사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생명의 가치고 삶의 가치인지, 의학이 발달한 상황에 맞춰 새로운 관점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식 없이 과거의 생각을 고집하는 게 문제입니다. 의학이 최선을 다해도 살리기 불가능한 말기 환자의 경우 최장 1년의 기대여명 동안 좋은 죽음을 맞도록 훈련된 전문가가 도와야 합니다. 2024년이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결혼을 돕는 웨딩플래너처럼 죽음도 ‘웰다잉 플래너’를 통해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6년 제정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부터 시행되면서 연명의료를 중단·보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제기된 연명의료의 범위를 규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계도 지적돼왔다.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임종기’ 환자에게만 주어지고 ‘말기’ 환자에겐 인정되지 않는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반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가족들의 의사로 뒤집히곤 한다.

지난 6월 이탈리아 최초로 의료조력자살한 전신마비 환자 페데리코 카르보니. 루카코스치오니재단 제공

지난 6월 이탈리아 최초로 의료조력자살한 전신마비 환자 페데리코 카르보니. 루카코스치오니재단 제공

-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다면 온전하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극심한 고통 속 환자의 의사를 자율적·합리적 결정이라 할 수 없다면 미리 내린 결정, 즉 사전의료연명의향서 등을 기준으로 하면 됩니다. 동의서까지 별개라고 하면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 역시 가족 중 누구라도 반대하면 할 수 없게 돼 있어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법이 당사자보다 가족 결정을 존중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헌법에 위배된다고 봅니다.”

호스피스 늘리면 환자 고통 줄고
연명의료 중단 따른 절감 비용으로
호스피스 기관 확충의 선순환
웰다잉에 대한 발상의 전환 필요

- 사전의료연명의향서 등록건수가 올해 기준 140만으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의료기관 내에 윤리위원회가 없을 경우 병원에서 자기결정권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문제도 지적됩니다. 윤리위원회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00% 있는데 종합병원은 절반만 있고, 요양병원은 5%대에 불과하다고요. 마찬가지로 호스피스도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웰다잉문화를 만들면서 2차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하면 환자는 고문 같은 치료의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고 의료비도 줄어듭니다. 구체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호스피스를 이용할 경우 1인당 사망 전 6개월 의료비가 520만원(건보 부담 370만원, 본인 부담 150만원) 절감됩니다. 암 환자 1만8000명이 CT·MRI·PET 같은 고가의 검사와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이용, 인공호흡기 착용 등 무의미한 의료를 중단하고 1년간 호스피스를 이용하면 건강보험 700억원 지출이 감소합니다. 이 비용을 호스피스 기관 확충에 투자하면 됩니다. 선제적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결심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 존엄한 죽음의 사회안전망 같은 개념이네요.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거나, 그럼에도 너무 고통스러울 경우에는 의사조력 존엄사를 택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국가가 ‘존엄한 죽음’이란 희망을 준다면 누가 간병살인을 하겠습니까. 다만 조력존엄사를 도입하더라도 법안 보완은 필요합니다. 경제적 문제·통증·우울증·존재적 무의미 등 네 가지 고통 가운데 해결 가능한 문제가 있다면 국가가 구제하는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발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정성 있는 본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고요.”

영국에서 조력자살이 불허되자 지난해 소극적 안락사를 택한  난치병 환자 노엘 콘웨이. BBC

영국에서 조력자살이 불허되자 지난해 소극적 안락사를 택한 난치병 환자 노엘 콘웨이. BBC

- 의사조력자살을 먼저 도입한 스위스와 네덜란드, 미국의 일부 주에서 부작용은 없습니까.

“도입 당시 대상이 말기 질환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치매·정신질환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선 성폭력 피해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환자에 대해 의사조력자살이 허용된 사례도 있습니다. 이른바 ‘미끄러운 언덕’ 효과를 우려하는 가톨릭 및 윤리학 연구자들의 논리도 일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도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다른 나라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문화와 태도 전반을 돌아봐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한국 대형병원 ‘빅5’ 가운데 호스피스를 갖춘 곳은 한 군데뿐입니다. 대신 수익성 높은 장례식장은 모두 갖추고 있죠. 의료기관의 본분을 망각한 비윤리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장례문화도 바뀔 때입니다. 납골당에 화장한 잿더미를 보관해 뭐합니까. 납골당에 모셔두고 가끔 찾아가느니, 내 삶의 의미로 그가 이어져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유골은 화장해 수목장을 하든 바다에 뿌리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더 친환경적이죠. 장례식도 죽기 전에 열어서, 삶을 살아오는 동안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사랑했다, 고마웠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게 어떨까요.”


좋은 죽음 준비 위해…의료대리인 제도 확대 필요


좋은 죽음은 건강할 때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다. 준비 없이 맞는 죽음은 당사자나 가족 모두에게 나쁜 일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도 침해받는다. 그러므로 식탁에서 죽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자녀들에게 죽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알리면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남겨진 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죽음과 관련해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법적 효력이 있는 서류를 작성해둬야 한다.

미리 준비하면 도움이 되는 서류는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서약서, 법정 대리인 지정서 등이다. 이런 서류는 법적 요건을 갖춰 작성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 공증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국립연명의료기관에서 정한 의료기관과 사회단체를 방문해 설명을 들은 뒤 직접 작성해야 한다. 작성한 내용은 국가기관에 등록된다. 장기기증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에 등록할 수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의료 대리인 제도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의료 대리인은 의료 문제와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의식도 부족하고 법적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환자에게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와 가까운 사람’이 법정 대리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지난 7월 발의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개념이 모호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자료 참조: 유은실·유상호, <죽음학 교실>(2022)


최민영 논설위원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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