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국회

1. 초선의원들에 바란다

2004.06.01 08:57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이 말은 불멸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 의해서 생명을 얻었다. 세상은 능숙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손익계산서를 뽑아낼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세계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온 사람들은 언제나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몽상가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대단한 현실주의자들이라고 자주 착각한다. 그러면서 꿈과 꿈꾸는 자의 힘은 늘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다. 하지만 지나온 역사를 잠시만 되돌아보면 ‘현실’이 ‘꿈’보다 더 현실적이었던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은 꿈보다 훨씬 더 빠르고 큰 규모로 변해왔다. 10년 전에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10년 후의 ‘현실’은 우리 현대사에서 단 한번도 없었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의 ‘현실’을 예측한 사람들은 없었다. 30년 전, 1977년에 87년의 6월항쟁을 상상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는가. 현실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몇배나 역동적이었다.

멀리서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17대 국회에 입성한 299명 중에서 초선의원이 무려 187명이다. 1년 전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전대협 의장을 지낸 이인영과 우상호, 민주노총의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과 단병호가 나란히 국회에 입성했다. 나는 지금 이들에게 아무것도 바라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묻고 싶다. 당신들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 무엇인가.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꾸었던 꿈이다. 내가 아는 한, 그들 중에서 누구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전두환 정권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았다. 개인적인 영화를 얻을 요량으로 긴 고생을 감수하며 노동자들과 더불어 살아오지도 않았다. 그들이 꾸었던 꿈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소망과 일치했기 때문에 그들의 오늘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굳이 내가 바란다면 그들이 꿈꾸었던 대로, 그들의 오늘이 있게 한 바로 그 꿈대로 살고 행동하기를 바란다. 졸렬한 정쟁과 결별하라. 국회에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저급한 추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꿈꿀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부디 현실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이 꿈을 유기해도 좋을 만큼의 나쁜 현실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남들이 어떻다고 얘기하지 말고 자신의 꿈에 대해서 말해 달라. 왜 국민들이 정치권의 이름난 실력자들 대신 그토록 많은 신인들을 선택했겠는가.

국회에서 교체되어야 할 것은 세력이 아니라 꿈이다. 17대 국회에서 국민들이 보고싶어 하는 것은 새로운 꿈과 패러다임이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롭고 훌륭한 인재들이 국회에 들어갔다. 특히 소외된 이웃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해 드높은 역사적 상상력으로 분투했던 이들에게 거는 기대는 특별하다. 열정은 꿈으로부터 탄생한다. 국회에서 펼치는 그들의 열정이 우리 사회 전체를 새로운 열정과 창의성으로 물들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방현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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