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론’ 배후엔 친이계… 박근혜 “정 총리 뭘 몰라” 직공
이 대통령 - 朴 충돌 가능성… 친이 - 친박 주중 별도 모임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여권내 집안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세종시 수정론을 선도하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원안 고수’를 강조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충돌이 그 중심에 있다. 정 총리의 수정론에는 수도권을 축으로 한 친이계 의원들이 배후에 포진해 있어 세종시 갈등은 결국 친이, 친박간 한나라당내 권력투쟁으로 전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세종시 수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소신’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의 ‘한판 대결’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작금의 세종시 충돌이 심상치 않은 것은 최근 1주일간 정 총리와 박 전 대표가 부딪힌 강도에서 확인된다. 정 총리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신뢰 문제 이전에 막중한 국가 대사다. (박 전 대표를) 직접 만나 설득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30일에는 세종시 현장을 방문했다. “당의 존립과 관련된 문제”라며 세종시 수정에 강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던 박 전 대표의 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한 언행으로 매김되기에 족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지난달 31일 부산 방문 때 “의회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서, 그리고 국민에게 한 약속이 얼마나 엄중한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정 총리의 기자간담회 발언을 일축했다. 박 전 대표의 즉각적이고도 직설적인 공박은 ‘원칙’의 소신뿐 아니라 정 총리의 발언에 대한 ‘분노’가 포함돼 있다는 전언이다.
정 총리는 1일 “(전날)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들었느냐”는 경향신문 기자의 질문에 “들었다”고만 답했다. 정 총리는 이르면 이달 중순 자문기구인 ‘(가칭)세종시 위원회’와 실무기구인 ‘세종시TF(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박 전 대표의 반대와 상관없이 세종시 수정 계획을 가속화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전 대표와 정 총리의 충돌은 종국적으론 당내 계파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정 총리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니 지금은 분명한 정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박 전 대표가 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의 ‘수정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친이 주류와의 충돌은 가시권에 접어든 모양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권에는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택해야 한다”고 세종시 수정에 강한 옹호 입장을 밝힌 터다. 그런 만큼 친이계 의원들이 정 총리에게 힘을 싣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적잖다. 수도권 출신의 친이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원칙론만 얘기하는데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갈등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기저에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뿌리깊은 불신과 세력싸움이 깔려 있다. 친박계는 이 대통령 등 청와대와 주류세력이 ‘정운찬’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세종시 원안고수’를 강조하는 박 전 대표를 압박한다고 간주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친이 측에선 친박세력이 내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청와대 등 주류세력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친박 모임인 ‘여의포럼’이 3일 세미나를 갖고 세종시 등 현안을 논의하는 데 이어 ‘안국포럼’ 출신 친이계 의원들도 6일 시내 한 음식점에서 정례 모임을 가질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작금의 상황을 종합하면 세종시 문제는 여권을 ‘블랙홀’ 속으로 몰고갈 공산이 크다. 총리직 지명과 함께 세종시 수정을 기치로 내건 정 총리로서는 물러서기에는 너무 나간 상태다. 거듭해서 강한 톤으로 원안 이행을 못박고 나선 박 전 대표로서도 타협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 대통령으로서도 수정론을 접는 것은 박 전 대표에게 밀리는 것으로 비쳐지고 이는 권력 누수로 작동할 수 있다. 지난 연말·연초의 미디어법에 비견할 수 없는 충돌이 세종시를 놓고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여권 핵심부가 추진하는 세종시 수정은 야당과의 ‘국회 전투’에 앞서 여당 내부의 권력투쟁이라는 벽에 부닥친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