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블랙홀’에 국정 현안은 묻히고 당내 반감만 키워
‘당을 거수기로 아나’ 여론 비판적… 결국 청이 지는 싸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가 악수(惡手)로 결론 나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 당·청관계 고삐를 죄기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내려 한 것이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 현안은 뒷전에 밀리고, 당·청관계는 오히려 악화되는 등 국정동력만 약화되고 있다. ‘병상 메시지’ ‘방미 연기’ 등 정치적 고비마다 효과를 봤던 박 대통령의 ‘승부수 정치’가 이번엔 정반대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유승민 블랙홀’은 정국을 집어삼켰다. 유 원내대표 사퇴 여부가 초점으로 부각되면서 국정 과제들이 가려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정 속도전’을 주문하고, 핵심정책과제 점검회의를 열어 국정과제 현황을 살폈지만 잘 조명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다. 유 원내대표 거취 고민이 길어지고, 일부 친박세력의 밀어내기 작업이 필사적이 되면서 권력다툼에만 집착하는 집권세력의 민낯도 드러났다. 당·청이 집안싸움에 골몰하면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방치한다는 비판도 따라나온다.
또 ‘당을 다잡겠다’는 청와대 의도와 달리 당·청관계 틈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친박들을 제외하면 당내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번진 상태다. 대다수 의원과 당직자들은 “당이 청와대 출장소냐” “당·청이 갈라지면 공멸하니까 지금은 참지만 두고 보자”는 등 사석에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새누리당 한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을 찍었던)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라고까지 했다. 현 상태에선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도 친박 원내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자칫 청와대가 원하는 ‘국정을 뒷받침하는’ 원내지도부는커녕 ‘할 말을 하겠다’는 ‘더 센’ 비주류 원내지도부가 들어설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박 대통령의 ‘구시대적 이미지’도 공고화됐다. 여야 합의 법안을 폐기하고 집권당 원내대표를 뜻대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내면서, 삼권분립·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여당을 거수기로 여긴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는 따가운 여론도 형성되는 상황이다.
또 청와대의 유승민 찍어내기가 궁극적으론 내년 4월 총선 공천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민심을 악화시키고 있다. 청와대가 친박 지도부를 통해 공천에 개입하기 위해 비주류 지도부를 밀어내려 한다는 것인데, 이 말대로라면 청와대가 정치적 욕심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 된다.
박 대통령 지지율도 하락세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27~28일 실시한 정례조사에서 박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는 64.1%로 긍정평가(30.2%)의 2배를 넘었다. 리얼미터가 지난 29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박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보다 1.3%포인트 떨어진 33.6%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여권에선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도 청와대가 얻을 것은 별로 없다” “청와대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등의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