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클립 빠진 지뢰’ 30년간 전시···옮기다 터져 장병 2명 중상

2022.11.15 20:00 입력 2022.11.15 22:26 수정

연간 10만명 가량이 방문하는 강원 양구군의 대표적인 안보 관광지인 ‘제4땅굴 안보전시관’에 안전 클립이 빠져 폭발 위험이 있던 대인지뢰가 30년간 전시됐던 사실이 15일 확인됐다. 하지만 업무 협약을 통해 제4땅굴의 안보 견학 시설물에 대한 관리와 운영 책임을 맡은 군부대와 양구군은 이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전시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장병 2명이 중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 사고는 안전을 도외시한 채 관행적으로 ‘안보 홍보’에만 골몰했던 안일한 관리체계가 초래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원 양구군 해안면의 ‘제4땅굴 안보전시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안내 이정표.

강원 양구군 해안면의 ‘제4땅굴 안보전시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안내 이정표.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제4땅굴을 관리하는 모 군부대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은 지난달 31일이다.

군 장병 4명과 부사관, 소초장 등 6명이 이날 오전 11시 18분쯤 마대 자루에 담긴 채 소초장실에 보관 중이던 안보전시관의 전시물을 탄약고로 옮기는 과정에서 M14 대인지뢰(발목지뢰)가 폭발해 A 일병(23)과 B 일병(23) 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오른쪽 발 뒤꿈치가 3㎝가량 절단되거나, 다리 등에 파편상을 입은 이들 2명은 사고 직후 성남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로 긴급 이송돼 수술을 받고, 입원 치료 중이다. 초등학교 때 같은 축구팀에서 활동했던 절친한 친구 사이인 A 일병과 B 일병은 지난 8월 동반 입대한 후 3개월 만에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해 자칫 다리를 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사고 당일 이들이 옮긴 마대 자루엔 M14 발목지뢰 2개와 M16 대인지뢰 2개, 대전차지뢰 2개 등의 폭발물이 담겨 있었다. 이들 폭발물은 ‘제4땅굴 안보전시관’에 전시돼 있던 것들이다.

양구군은 국비와 지방비 등 3억5000여만원을 들여 지난 7월부터 12월까지 ‘제4땅굴 안보전시관’ 리모델링 공사와 전시 제작물을 재단장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경향신문이 양구군과 군부대 측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제4땅굴 안보전시관’의 리모델링을 맡은 업체 관계자들이 최근 전시물 테이블의 유리관 안에 있던 이들 폭발물을 꺼내 전시관 내 판매장의 진열대에 옮겨 놓고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양구군 관계자로부터 보관 요청을 받은 군부대 측이 지난달 6일 판매장 진열대에 놓여 있던 폭발물을 마대 자루에 담아 소초장실로 옮겨 임시로 보관하다가 지난달 31일 이를 다시 탄약고로 이동시키던 중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양구군 관계자는 “예초작업을 하러 갔던 직원이 특산품 판매장의 진열대 놓인 폭발물을 발견하고, 구두로 군부대 측에 보관해 줄 것을 요청해 부대 내 시설로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 일병의 아버지는 “10여 년 전 ‘제4땅굴 안보전시관’을 방문했던 관광객들이 촬영해 블로그 등에 올려놓은 폭발물 사진을 전문가에게 보여주니 M14 발목지뢰 2개의 안전클립이 모두 제거돼 있어 폭발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금방 지적하더라”며 “군 당국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이 같은 사실을 몰랐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군 당국이 최근 피해자 부모들에게 중간수사 결과 등을 설명할 당시에도 이같이 위험한 폭발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부터 전시됐는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안전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제4땅굴 안보전시관’의 리모델링을 맡은 업체 관계자들이 최근 전시물 테이블의 유리관 안에 있던 M14 발목지뢰(우측 상단 반합 옆에 놓여진 2개 물체) 등 폭발물을 꺼내 전시관 내 판매장의 진열대에 옮겨 놓은 모습. 양구군 제공

‘제4땅굴 안보전시관’의 리모델링을 맡은 업체 관계자들이 최근 전시물 테이블의 유리관 안에 있던 M14 발목지뢰(우측 상단 반합 옆에 놓여진 2개 물체) 등 폭발물을 꺼내 전시관 내 판매장의 진열대에 옮겨 놓은 모습. 양구군 제공

‘제4땅굴’을 관리하는 군부대는 1992년 3월 37억원을 들여 안보전시관을 건립해 자체적으로 운영해 오다가 1996년 12월 양구군과 업무협약을 맺고 안보 견학 시설물을 공동으로 운영·관리하고 있다.

협약서엔 ‘매월 15일을 안전점검의 날로 정해 부대와 양구군이 합동으로 각종 전기 및 시설의 이상 유무를 진단해 각 기관의 책임에 의해 조치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으나 안전 클립이 빠진 M14 발목지뢰의 위험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군부대와 양구군이 작성한 137개 대여물자 목록을 확인한 결과, 이번에 문제가 된 M14 발목지뢰를 비롯해 M16 대인지뢰, 대전차지뢰 등은 기록돼 있지 않았다. 반면 대여물자 목록에 있는 북한제 60밀리 박격포와 목함 반보병지뢰(PMD57) 등의 경우 비고란에 비활성화 또는 비군사화 조치가 취해져 있다고 적시돼 있다.

양구군 해안면 해안서화로에 위치한 ‘통일관’에 설치돼 있는 제4땅굴, 을지전망대 출입 안내판 모습.

양구군 해안면 해안서화로에 위치한 ‘통일관’에 설치돼 있는 제4땅굴, 을지전망대 출입 안내판 모습.

이번에 문제가 된 M14 발목지뢰 등은 안보전시관 개장 초기부터 전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2년 3월 군 당국의 자료를 토대로 일부 언론이 보도한 기사에는 ‘전시실에는 땅굴에서 발견된 각종 장비를 비롯해 북한 생활용품, 폭탄, 지뢰 등이 진열돼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단급 부대의 경우 매년 부대사를 편찬하는 만큼 1992년 해당 부대의 부대사를 찾아보면 전시 물품 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해당 군부대 관계자는 “육군 수사단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해 달라”며 “각 부대의 부대사 등을 이관받아 관리하고 있는 육군기록정보관리단에 문의한 결과, 우리 부대의 1992년 부대사는 보관돼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공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등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엔 대인지뢰 폭발사고로 부상을 입은 장병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촉구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제4땅굴 안보전시관’은 코로나19 확산 차단과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문제로 2020년 2월부터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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