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 수교 30년

“허물 이해하고 덮어주는 형제 같은 관계로 가야”

2022.12.20 17:23 입력 2022.12.20 20:01 수정

배양수 부산외대 교수. 배양수  교수 제공

배양수 부산외대 교수. 배양수 교수 제공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의 허물을 잘 이해하고 덮어주는 형제 같은 관계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배양수 부산외대 교수(한국베트남학회장)는 오는 22일 공식 외교관계 수립 30주년을 맞는 한·베 관계의 발전 방향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배 교수는 한국외대 베트남어 학과를 졸업하고 기업에서 수출 업무를 담당하다 1991년 베트남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국내 최초의 공산 베트남 유학생이다. 배 교수는 이후 약 35년 간 베트남 내 한국에 대한 인식 및 양국 관계의 발전과 변화를 지켜봤다. 올해는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출범한 한·베 자문기구 ‘현인그룹’의 한국측 문화 분야 위원으로 일했다.

배 교수는 베트남의 민족 감정을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신중한 접근과 함께 서로의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화상으로 진행했다.

-수교 이전에 유학을 가며 어려움을 겪진 않았나.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다니던 1986년 베트남이 도이머이 정책으로 개방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단교 중인 상태라 베트남에 갈 일은 없었고 학과만 살아있었다. 1991년 당시 국교가 없단 이유로 교육부가 유학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해, 설득 끝에 유학 허가증을 받았다. 처음엔 호치민 인문사회대에 입학허가를 받고 호치민시로 갔으나 분위기가 이상해서 물어보니 ‘자본주의권에서 온 학생에게 학위를 준 적이 없어서 어렵겠다’는 답을 받았다. 어려움 끝에 하노이 사범대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다. 베트남에 간 지 1년8개월 만이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어떤 변화를 체감했나.

“개방 초기에는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로 인식됐다. 1975년 이전의 가난한 한국을 알던 사람들이 놀라워하던 반응이 많았다. 이후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본격 진출하면서 1990년대 중반쯤엔 노사 갈등이 표면화됐다. 한국 기업이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노동자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이런 부정적 사례가 (한국 전반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고 개별적인 사안이라는 걸 설명하려고 노력했었다.

한류 덕분에 이미지가 바뀌었다. 다만 한류 초창기인 1990년대 초에는 한국 드라마를 재밌어 하면서도 ‘베트남 전통이 무너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기성세대와 지식인들이 언론 지면 등을 통해 ‘젊은 애들이 한국 연예인을 따라 염색을 하고 짙은 립스틱을 바른다’, ‘자본주의가 상품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데에 현혹돼선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베트남의 문화 개방도가 지금보단 덜했기 때문에 한국 연예인의 모습과 이를 따라하는 것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류가 베트남에서 인기를 끄는 한편으로, 일방적 문화 전파가 될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국 문화가 베트남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 드라마 등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형평을 맞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양국 정부가 문화적 균형을 맞출 방안을 고민한다면, 베트남의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거나 작품을 번역하는 일에는 지원이 필요하다. 워크숍 등을 통해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제작 기법을 교류하고 협업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에도 베트남을 연구하거나 베트남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문화를 전파할 기회가 있으면 좋다.

베트남이 한국을 잘 아는 것에 비해 한국이 베트남을 잘 모르는 건 자연스럽다고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배워야 할 필요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트남에 진출하거나 국제결혼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베트남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한-베 다문화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베트남어를 배우지 못하게 하는 사례가 많다. 이 아이들이 이중언어를 한다면 나중에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멀리 봐야 한다.”

-알아두면 유용한 베트남 문화를 소개해 달라.

“베트남에는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가 있다. 누군가를 방문하거나 맞이할 때 크고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포장에도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과자 먹을 나이가 지난 나에게도 과자 선물을 준다. 정성의 표시다. 여기서 ‘나는 과자를 안 먹으니 너희 아이들에게 주는 게 낫다’고 하면 그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꼭 비싸고 좋은 선물일 필요는 없지만 이런 게 쌓여서 관계가 돈독해지는 문화다. 음식 접대에 관해서는 ‘모자라면 남는다’는 베트남 속담이 있다. 음식을 차렸는데 모두가 충분히 먹지 못할 양으로 보이면 베트남 사람들은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넉넉하게 준비해 모자라지 않다는 걸 알려주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차담을 한 뒤 헤어지며 포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차담을 한 뒤 헤어지며 포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초기 베트남에서 격리됐던 한국인들이 인터뷰에서 베트남 전통 샌드위치 ‘바잉미’를 ‘빵쪼가리’라고 불러 물의를 빚었고, 올해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베트남전 왜곡 논란이 있었다. 양국 관계가 경제적으로 탄탄해도 작은 일에도 깨지기 쉬운 것 같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중에서도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이 문제에 관해 베트남을 자극하는 쪽으로 가서는 그동안의 모든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 <작은 아씨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베트남은 자신들의 상처에 아주 민감하다. ‘과거를 덮자는 것이 과거를 잊자는 건 아니다’가 베트남의 기본 입장이다. 또 베트남의 사회 분위기 상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일방향 여론이 형성돼 버린다. 가능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 참전 문제 자체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이고 책임감도 커진 만큼 우리가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낀 때는?

“2001년 부산대 교수 4분과 ‘부산에서 베트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하며 베트남 유학생이나 결혼이주여성, 노동자들을 도왔다. 그러던 차에 2010년 한국으로 시집 온 베트남 여성이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베트남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나고 우리 정부도 나서서 수습할 정도로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당시 베사모 총무로서 통역과 유가족 안내를 맡았고 장례 절차와 모금을 도왔다. 이밖엔 베트남에 우리 학생들이 진출해 터를 잡고 일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이들에겐 ‘베트남을 사랑하지 않고는 베트남에서 일하기 힘들다’고 조언한다.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건 똑같다는 취지다.”

-현인그룹의 문화 담당 위원으로서 한국 정부에 어떤 조언을 했나.

“베트남으로 돌아간 다문화가정이 꽤 있다. 아빠의 나이가 많아 한국에서는 일을 하기 힘들어 한창 일할 나이인 엄마에 맞춰 베트남으로 간 사례다. 그러한 가정의 자녀들이 베트남에서 학비 마련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부모들의 일자리가 줄어든 탓에 아이들이 더욱 상처를 받거나 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 다른 건의사항으로는, 한국에서 공부하며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딴 베트남 유학생들을 베트남 현지의 한국어 교원으로 활용해 달라는 의견도 전달했다. 베트남에선 이제 한국어가 제1외국어가 됐지만 한국어 교사가 많이 부족하다. 이들이 한국에서 받은 자격증을 현지에서 인정해 주면 된다.”

-한·베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길 바라나.

“서로의 허물을 잘 이해하고 덮어주는 형제 같은 관계로 나아가길 바란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취약점이 있지 않나. 예를 들면 바잉미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해도 서로 간에 ‘격한 반응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너그럽게 포용해 주자는 것이다. 서로의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 관계를 바탕으로 이러한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좋은 관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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