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김한 화백-北 김철 시인 ‘두번째 만남’

2000.12.01 18:58

“어젯밤에는 밤새 너와 놀러다닌 꿈을 꿨단다”

1일 평양 고려호텔 1704호. 남의 서양화가 김한씨(73)와 북의 공훈시인 철씨(67)가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형제는 이미 지난 밤부터 50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들의 대화는 어느덧 남쪽의 형이 이산의 아픔과 그리움을 달래느라 그토록 줄기차게 그렸던 명천 솔골 포구 고향과 가족들의 얘기로 이어졌다.

형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꿈에서라도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동생과 가족들까지 봤으니 모든 소원을 풀었다”며 웃음지었다. 하지만 ‘누이에게 보내는 시’를 통해 동생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누이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형이 전하는 순간에는 가족 모두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은 “동생이 먼저 가는 게 어디 있어. 조금만 더 기다리지 못하고…”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형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자신의 그림 ‘향가(鄕歌)’를 동생에게 선물로 건넸다. 평양으로 떠나기 전 경향신문 1면에 동생의 시와 함께 실렸던 그 그림이었다. 좋은 시 많이 쓰라며 질 좋은 종이와 수첩, 필기구 등도 내놓았다. 동생은 북한 그림 7점과 도자기 3점을 형님에게 선물했다.

“동생 내외를 위해서는 내의와 점퍼를 준비했는데 조카들까지 나올 줄 몰랐다” “괜찮시요”

하지만 형제의 웃음도 잠깐이었다. 내일이면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형제는 맞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서로 “살아 있어 줘 고맙다”며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굳게 약속했다. 언젠가는 형이 그림을 그리고 동생은 시를 지어 통일을 노래하는 공동시화전을 갖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약속된 시간은 너무 짧았다. 예고된 이별은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50년 전의 기억에 기대어 엮어내던 형의 그림, 솔골포구 연작은 더욱 그리움으로 채색될지 모른다.

동생의 가족을 그리는 시도 만날수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아픔이 더욱 깊은 생채기로 남아 신음할지도 모른다.

6·25 때 월남한 김한씨는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 1995년에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원로화가이다. 시인 철씨는 북한 최고의 영예인 공훈시인으로 시 ‘어머니’는 북한 주민 대부분이 암송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안호기기자·평양/공동취재단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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