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운보 김기창-北김기만 화백 형제 ‘병실상봉’

2000.12.01 18:59

50년 세월을 한달음에 달려왔으나 지병 때문에 만나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했던 운보 김기창 화백(87)과 북의 동생 기만씨(71)가 1일 병실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날 오후 3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1902호실. 총총걸음으로 병실에 들어선 기만씨는 병상에 누워있는 형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형님인데…, 병세가 깊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는데’ 하는 듯했다.

기창씨도 흐릿한 눈 속으로 반세기 전에 헤어졌던 동생의 형체가 어른거리자 금세 알아보고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끝내 터져나오지 않았다.

‘병실 상봉’을 위해 오전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노화백은 동생을 만난 감격이 억제가 되지 않는 듯 호스를 꽂아놓은 목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들 완씨(62)가 “50년 만에 삼촌이 오셨다”고 귀에 대고 말하자 노화백은 눈물을 글썽이며 손으로 동생을 가리켰다. 기만씨가 이어 청각장애로 들을 수 없는 형을 위해 수첩을 꺼내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왔습니다”라며 필담으로 인사말을 건네자 투병으로 지칠 대로 지친 형의 얼굴이 모처럼 환해졌다.

“형, 나 기~만이에요. 형이 가장 예뻐하던 셋째 동생 기만이에요. 좀 더 일찍 왔어야 하는데…. 이제야 찾아와 죄송합니다”. 동생 기만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운보는 그런 동생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띠며 동생의 손을 연방 어루만졌다.

기만씨는 평양에 있는 여동생 기옥씨(72)의 편지와 안부도 전했다. 기옥씨는 14살 때 눈이 멀었으나 운보가 백방으로 쫓아다녀 끝내 눈을 뜨게 해준 누이였다.

기만씨는 “기옥이는 늘 기창 오빠 때문에 눈을 되찾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라면서 “이 때문에 의사가 됐다”고 전했다.

기만씨는 자신이 직접 그린 조선화 ‘태양을 따르는 한마음’을 형에게 펼쳐보였고 기창씨는 아들 완씨를 통해 평소 가장 아끼던 작품 ‘승무’(1971년작)와 전작도록(全作圖錄) 1질을 동생에게 선물로 건넸다.

패혈증과 고혈압으로 4년째 투병중인 운보는 서울방문단 최종 명단이 발표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17일 다시 쓰러졌다.

〈김형기·임영주기자 h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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