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묶인 개성공단, 유연성 부족한 대통령

2013.07.29 23:07 입력 2013.07.29 23:37 수정
이지선 기자

박 대통령 고비마다 발언, 통일부 맞장구치듯 실행

대북정책 시금석 삼은 듯… “원칙 좇다 대북 경직 우려”

#1. 지난 4월25일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간 실무회담 개최를 제의하면서, 거부하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바로 다음날인 26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잔류 인원 전원 귀환이란 초강경 조치를 발표했다.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료품이나 식자재, 의료품 같은 기본적인 조치라도 좀 해달라고 했음에도 이것마저도 거부당한 상황에서 입주기업들이나 거기 남아 있는 국민들 가족들의 고통과 피해가 굉장히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전 60주념 기념행사 참석차 방한한 존 키 뉴질랜드 총리를 기다리며 손목시계를 만지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전 60주념 기념행사 참석차 방한한 존 키 뉴질랜드 총리를 기다리며 손목시계를 만지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2. 박 대통령은 지난 27일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되 대화의 창은 항상 열고 있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28일 류 장관은 북한에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마지막 회담’을 제안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더 큰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막기 위해 부득이하게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원 보이스’(한목소리)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개성공단 논의의 처음과 끝에는 결국 ‘통일 대통령’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통일부는 대북정책을 발표하는 스피커 역할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 ‘마지막 회담’ 제안도 개성공단 문제만큼은 재발방지 확약을 받겠다는 박 대통령의 뜻이 묻어난 결정 같다”고 했다.

개성공단 문제 발생 초기부터 박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한 몇 가지가 있다. 가동 중단의 책임은 북측에 있으므로 재발방지를 확실히 보장해야 하고 국제적 규범에 맞는 법적·제도적 장치로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6차까지의 실무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강조한 재발방지를 놓고 남북은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고 회담은 사실상 결렬됐다. ‘마지막 회담’ 제안 속에서도 재발방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는 어김없이 포함됐다.

이른바 ‘원칙론’의 배경은 개성공단 문제가 ‘남북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정상화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을 위한 원칙과 틀을 짜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가 바로 개성공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고 보는 셈이다.

개성공단은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처음으로 맞부딪친 사안이다. 이 때문에 원칙을 앞세운 나머지 문을 열기보다 ‘닫아도 어쩔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남북 실무회담을 하는 목표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인지, 북측의 기를 꺾겠다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는 것 같다”(한 대북문제 전문가)는 것이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양보는 없다’는 식으로 퇴로를 차단할 경우 그만큼 정책이 경직될 가능성도 공존한다.

비타협적 원칙론자 이미지는 ‘정치인 박근혜’에게 트레이드 마크처럼 굳어져 있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해 4대 개혁입법에 야당 대표로 맞섰고,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에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당 내 야당을 자처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여기까지는 지켜야 한다는 선을 정하면 물러서지 않는 정치 스타일이다. 때로는 그의 지지율을 높여주기도 했지만 유연성과 포용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았다.

박근혜식 개성공단의 정치학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상대방이 있는 남북관계가 일방향의 ‘원칙’으로만 풀기는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단호함은 의지이지, 정책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원칙이라는 이름하에 남북관계를 이대로 두자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북문제 전문가는 “단호함 뒤의 경직성이 공단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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