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상)개혁심장부도‘악취’번진다

2000.11.01 19:13

부정과 부패, 부도덕의 악취가 온 나라를 덮고 있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걸렸던 부패척결과 정의사회 건설의 현란한 깃발은 퇴색한지 오래다. 개혁을 소리높여 외쳤던 현 정권에 들어서도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치부를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천민자본주의적 부패는 총제적 양상을 띠면서 심화되고 있다.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에서 드러난 금감원 스캔들은 총체적 부패확산의 상징이다. 개혁의 심장부가 부패의 진원지로 밝혀진 것은 국민적 충격이 아닐 수 없다.권력층, 공기업, 재벌기업에다 은행 돈으로 연명하는 워크아웃기업까지 부정·부패의 잔치에 놀아나더니 이제는 새시대·새경제의 주역으로 기대를 모으던 벤처기업들까지 물들어가고 있다.

잊을 만하면 새로 터지는 각종 비리사건은 예외없이 권력층 연계설을 낳고 그때마다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채 묻힌다. 옷로비사건이 그렇고,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도 마찬가지다. ‘정현준 스캔들’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것은 한국형 부정·부패의 특징이 됐다.

권력과 정부, 사회 지도층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풍조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국민들은 이제 불신과 갈등에서 나아가 도덕성을 기대할 만한 구석을 찾지 못해 부정·부패 치유에 대한 절망에 빠져 있다. 선진국에서는 검찰·경찰을 비롯한 이른바 권력기관이 가장 신뢰하는 대상인 반면 우리는 언제나 부패한 집단의 윗자리에 오른다.

그동안의 개혁은 구호에만 그친 것인가.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는 오히려 전국화, 전계층화하고 있다. 올초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청렴도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90년대 20위권에서 48위로 추락했지만 이제 통계수치를 들이대 악취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사회의 부정·부패의 고리는 너무도 견고하다.

이석연 경실련 사무총장은 “‘정현준 스캔들’은 정치권과 정부부처, 사회지도층의 타락상을 여실히 드러낸 계기가 됐다”며 “일반국민들보다 개혁마인드가 더 없는 사람들이 개혁의 칼자루를 쥐게 된 것 자체가 비리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우리사회에 부정·부패의 싹이 트게 된 것은 윤리학자 니버의 지적처럼 ‘부패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주장도 많다. 기업간 상호보증과 정·관계 로비를 통한 부당대출이 우리기업의 ‘관행’으로 자리잡아온 지 오래다.

중소기업이 대출 한번 받으려 해도 국회의원이나 감독기관, 권력기관과 같은 든든한 ‘빽’을 잡아야 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9월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들은 정책자금 대출관련 부패의 64%는 정치인 압력 탓이라고 말했다. 뒷거래가 오가고, 외압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대변한다. 그러나 1천억원대의 부당대출에 연루된 한빛은행은 사과는커녕 “직원과 업자간의 부도덕한 사기극”이라고 강변했고,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이 터지자 금융감독원은 뼈를 깎는 자성 대신 전시적 자정결의대회를 여는 것으로 ‘면책’하려 했다.

주우진 서울대 교수는 “당장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사회와 경제분야의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해 부정·부패의 싹을 도려내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구재기자 good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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