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 3원칙 포기’ 여론 떠보기

2002.06.01 18:32

‘드디어 물꼬를 트는 것인가’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비핵 3원칙’ 포기 시사 발언을 접한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수십년동안 터부시됐던 핵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핵심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핵보유 가능’을 시사한 데 따른 충격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핵무기 보유에 대해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점과 비핵 3원칙을 고려해 일절 보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견지해왔다.

비핵 3원칙은 1967년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제창한 일본의 핵정책으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으며 ▲반입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내 우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보통 국가론’을 내세워 일본의 무장화를 주장해왔다. 지난 4월에는 야당인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小●一郞) 당수가 ‘핵무장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정권 핵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야당 당수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점차 정도가 심해지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 정점에 도달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집권 이후 일본의 외교·국방 정책은 보수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중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했고, 지난 4월에는 일본이 무력침공을 받았을 때를 상정한 유사법제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 방위청의 성(省)승격을 추진하면서 이지스함의 아라비아해 파견도 검토중이다. 일본의 원폭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의 핵보유 가능 발언과 관련, “고이즈미 정권이 유사 사태때 핵무기 사용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후쿠다 장관의 발언이 당장 일본의 핵문제와 관련한 정책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이즈미 총리도 현정권하에서는 비핵 3원칙을 변경할 뜻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발언은 당장 핵무장을 하겠다는 의사라기보다는 국내외의 여론을 떠보는 성격이 짙어 보인다.

주일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일본 국민들의 알레르기 반응에도 불구하고 핵보유 의견이 공공연하게 대두되고 이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도쿄/박용채특파원 p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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