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는 지옥, 그런 지옥도 없었다

2002.10.01 18:25

1980년 7월29일 당시 쿠데타 세력에 의해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불량배 소탕 계획이라는 미명하에 짜여진 삼청계획 5호에 따라 삼청교육대에서 인간 이하의 가혹행위를 당했던 피해자들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보상은커녕 명예도 회복하지 못한 한에 몸서리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1일 ‘삼청교육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권고를 위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피해자들의 실태는 당시의 초법적 만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구잡이 연행=유모씨는 80년 11월 일을 보러 서울에 왔다가 승용차를 운전해서 고향인 충남 서산으로 내려가던 중 경찰과 군인들의 합동불심검문에 걸렸다. 유씨는 현장에서 전과조회 과정에서 폭행 전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서울 용산경찰서로 끌려가 며칠 뒤 삼청교육대로 보내졌다.

또 최모씨는 사촌동생과의 시비로 늑골이 부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 사촌동생을 폭행혐의로 고소했다가 1주일 뒤 서산경찰서로 끌려 갔다 32사단 삼청교육대로 보내졌다.

손모씨는 78년 마을 가게에서 사람들과 화투를 쳐 경찰에서 벌금형을 받고 훈방조치된 후 경기 안산으로 이사를 갔으나 이 전력 때문에 충남 서산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삼청교육 대상자가 돼 35사단에서 81년 1월 4주간 교육받았다.

◇지옥같은 교육=삼청교육대에서 교육관들은 “너희들은 사회의 쓰레기다” “정부의 방침이니까 죽어도 개죽음이다”라는 말로 교육생들에게 겁을 주며 공포분위기를 형성했다. 심지어는 “누가 도망치다 사살됐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모씨는 식사시간에는 조교가 ‘식사개시’를 외쳐놓고서는 1초도 안돼 “동작 그만” “식사끝”을 외쳤으며 이때 조금이라도 숟가락을 움직이는 사람은 개처럼 얻어맞았다고 회고했다.

최모씨는 사촌동생과의 시비문제로 조치원 훈련소로 끌려가 2주간 교육을 받았다. 최씨는 “하루종일 뛰고 구르고 기합받고 그러다 처지는 사람은 개 두드려 맞듯이 맞았다”면서 “4일째 되던 날 조교가 ‘입소자 한명이 도망치다가 사살됐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모씨는 유격훈련장까지 이동하는 중 조교들에게 발로 맞아 빙판에 뒤로 넘어져서 뇌진탕으로 기절, 4~5시간 뒤에 깨어난 적도 있다. 조교나 교관들은 “앞 기수에서 교육받다 많이 죽어서 그나마 우리 기수는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고통스런 후유증=유모씨는 군홧발에 허리를 차인 후유증에 90년 허리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허리통증을 겪고 있다. 유씨는 삼청교육을 받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웃 주민들과 친구들이 만나지 않아 “그들 탓이 아니지 않으냐”며 연신 술로 날을 지샌다고 말했다.

이모씨(당시 26세)는 예비군 중대장이 훈련과 관련해 비리가 있어 사단 헌병대와 경찰서에 투서를 한 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동네 사람들이 ‘저 사람 골치아픈 사람이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바람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일이 있고난 뒤에는 비리를 보아도 모른 척한다”고 말했다.

유모씨는 삼청교육중 머리를 다쳐 6개월 이상 전혀 움직이지 못해 방안에서 꼼짝않고 누워있어야 했다. 이후 3년동안 거동도 잘 못하고 정신이 나가 헛소리를 하며 살았다.

유씨는 삼청교육과정에서 알게된 한 후배가 교육대에서 나온 뒤 술을 먹고 말다툼을 하더니 다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갈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자살했다고 증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1월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이 펴낸 삼청교육대 백서에서는 397명이 삼청교육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2,700여명이 질병을 앓고 있다고 돼 있다.

〈안홍욱기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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