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 물밑 추진, 트럼프 재가 얻었지만…북·미 높은 벽 확인

2018.02.21 22:07 입력 2018.02.21 22:50 수정

‘펜스·김여정 회담 불발’ 파장

청와대, 한국 동의 없이 미국 측의 공개로 알려지자 당혹

미, 만남 불발 책임 북에 떠넘겨…북한은 입장 발표 안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오른쪽)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앞을 바라보고 있다. 펜스 부통령과 김 제1부부장은 다음날 청와대에서 만날 예정이었지만 약속시간 2시간 전 회동이 불발됐다. 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오른쪽)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앞을 바라보고 있다. 펜스 부통령과 김 제1부부장은 다음날 청와대에서 만날 예정이었지만 약속시간 2시간 전 회동이 불발됐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때 방한한 북한과 미국의 고위급 대표단 만남을 주선했지만 불발된 사실이 21일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대화 중재 시도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새삼 확인한 데다 미국 측 공개로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7일 남북정상회담 성사 전망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일행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과 만날 계획이었으나 북한이 회담 2시간 전 일정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전한 미국 측 설명을 보면 만남은 한국의 중재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의 회동 준비는 북한이 펜스 부통령의 한국 체류 기간 동안 만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미 중앙정보국(CIA)이 어디선가 전달받으며 시작됐다. 누가 CIA에 그런 메시지를 전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북한과 접촉한 한국 정보당국이었을 수도 있고, 북·미 간 채널이었을 수도 있다.

북한과의 만남은 2주 정도 물밑 추진됐으며 지난 2일 백악관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 전 미 당국자들이 북·미 접촉 가능성에 “상황을 지켜보자”고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만남이 추진된 시간·장소는 10일 오후 청와대였다. 한국 측은 참석하지 않는 북·미 양자의 만남이었지만 이례적으로 청와대로 장소가 정해진 것은 한국의 중재를 방증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 제1부부장 일행의 접견 및 오찬, 미국 및 북한 대표단과 올림픽 경기 공동응원 등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 대표단 접견·오찬 장소는 당일 아침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과 김 제1부부장의 당시 일정도 유동적이었다. 펜스 부통령 일정은 막판까지 공지되지 않았고 김 부부장이 당일 통일부 장관 주재 만찬에 참석할지도 한동안 미정이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당일까지 북·미의 만남은 확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막판에 발을 뺀 것은 펜스 부통령의 당시 행보 때문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탈북자 면담 시 “자국 시민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하는 정권” 등 강경 발언을 했다. 북한이 펜스 부통령의 언사에 반발해 회동을 취소했다는 것을 미국도 인정했다. 북한은 당시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펜스 부통령의 행보를 “신성한 올림픽까지 대결모략에 악용하는 비열한 추태”라며 비난한 바 있다.

미 정부는 만남 불발의 책임을 북한에 떠넘겼다. 미 국무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20일 “그들이 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한 것이 유감스럽다. 우리는 인권 문제 또는 미국인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미국적 가치를 강조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아직 별다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확인불가 입장만 되풀이했다. 한국 측 동의 없이 미국발로 이 사실이 공개된 것에 대한 당혹감이 읽힌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미국의 어떤 필요로 밝혔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은데 저희도 평가를 좀 해보겠다”고 말했다. 북·미가 탐색적 대화에 들어가려는 기류가 형성되자 미국 내 대북 강경파가 판을 뒤엎기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북·미 간 탐색적 대화조차 아직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에 이어 내달 18일까지 계속되는 패럴림픽 때까지 시간을 갖고 북·미대화를 중재하려던 청와대 구상에도 일단 암운이 드리운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면담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향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