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성희롱 파문, 어디로 튈까

2021.01.30 11:42 입력 2021.01.30 11:44 수정
이준규 CBS 정치부 기자

‘진보 성범죄’ 프레임 우려에 전전긍긍…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한 자성 목소리도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 / 연합뉴스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 / 연합뉴스

정의당이 시끄럽다. 사실 정의당이 시끄러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드느냐 마느냐를 두고, 멀게는 당의 시작부터가 논란 속에서 이뤄졌지만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은 파급력의 규모가 다른 사건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노동권 신장과 성평등, 정의당을 받치는 두 기둥 중 한 축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 전 대표가 지난 1월 2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정의당은 불평등과 코로나,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서울과 부산시민의 삶을 책임질 구체적 정책을 실현하겠다”며 “서울과 부산에 만연한 불평등을 해소하고, 권력형 성범죄 등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이번 사건 발생 직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메시지 자체의 진정성마저 의심을 사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 전 대표가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만 해도 당내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2013년 창당 후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등 이른바 진보진영의 거물들이 이끌어왔던 정의당이 처음으로 세대교체를 겪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심상정 전 대표가 지난 4·15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부분적으로 도입시켜놓고도 실리냐 명분이냐를 두고 갈등하다 의석수를 전혀 늘리지 못했던 만큼 새 리더십에 기대되는 측면도 있었다. 김 전 대표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비위 사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강행하자 ‘범진보진영’으로 함께 분류돼 왔던 사이임에도 “내로남불”이라며 수위 높게 비판하는 등 선명성과 함께 당대표 활동을 시작했다.

실망한 정의당 당원들 당비 납부 거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한 투표를 당론으로 만장일치 시키지 못하는 등 리더십에 있어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간 여러 차례 선거에서 ‘범진보 연대’로 승리를 함께 맛봤던 더불어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선을 긋는 등 나름의 색을 점차 드러내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등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갑론을박을 벌였던 정의당원들인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각종 대응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단어는 ‘발전적 해체’다. 발전적 해체는 주로 어느 정도 원내 의석을 확보하고 있던 정당이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예상했던 의석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경우 언급되는 방식이다.

당명을 바꾸는 소극적인 방식도 있지만 탈당한 후 당 밖에서 다시 모이거나 신당을 창당하는 등의 움직임을 통해 실패했던 이전 정당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동력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정의당의 경우 이러한 방식을 택하기에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의석이 6석인데 지역구 의석은 심상정 의원 1석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비례초선 의원들로 구성돼 있는 탓에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꾸리기가 쉽지 않아 ‘발전적 해체’를 시도하다 ‘와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발전적 해체마저 이번 사건에 대한 반성과 환골탈태를 위한 총체적인 대응이 아니라 단순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며 당을 떠나는 당원들도 생겨나고 있다. 아직까지 조국 전 장관 사태 때와 같은 대규모 탈당 사태는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 실망한 당원 중 상당수가 당비 납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원들의 지역구 출마 독려로 재정 상태가 악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정의당에 있어 당비 중단은 사실상 탈당과 다름없는 악재다. 다만 정의당이 당내 성비위 사건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해왔던 거대 양당과 달리 신속하고도 2차 가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번 사건 대응에 임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변수 중 하나다.

‘잘못은 했지만 정의당답게 처신했다’

지난 1월 15일 발생한 이번 사건에 대해 정의당은 사흘 만인 18일 공식 조사를 시작했고, 김 전 대표도 19일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에게 직접 사과를 한 후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전 대표가 이런 상황에서 예정된 20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강행한 것도 2차 가해 예방을 위해서였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으로 이번 사건 조사를 총괄한 배복주 부대표는 당은 물론 김 전 대표와 장 의원 모두 “2차 피해 방지 의사가 강력했다”며 공식 일정이 차질 없이 소화된 덕에 비공개로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사건의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으면서 2차 가해와 관련한 제보를 광범위하고 수집하고, 김 전 대표에 대해서도 고소는 하지 않으면서도 직위해제와 징계절차는 신속하게 밟은 덕에 성비위 사건으로는 드물게 당의 처신이 잘 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오는 4월 재보궐선거에 사실상 후보를 내지 않기로 가닥을 잡음으로써 민주당과 차별화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당내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잘 극복할 경우 ‘잘못은 했지만, 정의당답게 처신을 했다’는 평가와 함께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론도 나온다. 반대급부로 이번 사건이 가져올 악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다. 이번 사건이 자칫 ‘진보진영의 성범죄’로 인식돼 그 불똥이 민주당까지 비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27일 느닷없이 박원순 전 시장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며 2차 피해 최소화, 처벌과 교육의 강화를 통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를 수긍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김 전 대표 사건 공개 이틀 만에 동시에 박 전 시장 사태로부터는 6개월 만에 이뤄진 이날 사과가 4월 재보선과 무관한 자발적 행위라고 바라보는 분석은 드물다.

지난 6개월간 무엇을 하다 이제야 대책을 내놓느냐는 비판과 함께 민주당의 자기반성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당내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이자 박 전 시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도 같은 문제와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에 대해 충격과 경악이라며 남이 겪은 문제인 듯 타자화하는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보궐선거 불출마가 유력한 정의당과 달리 보궐선거 발생의 원죄가 있음에도 오히려 출마를 강행했다는 것은 민주당을 향한 야권의 비판 지점이 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인 김상희 의원 등 민주당 여성 의원들과 우상호·박영선 두명의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답변은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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