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프레임 밖으로 나와 카메라를 들다, 혁명을 포착하다

2021.05.25 06:00 입력 2021.08.03 09:51 수정
장영은

티나 모도티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는 1920년대 당시 혁명의 열기로 가득하던 멕시코에서 사진을 통해 노동자와 여성의 삶을 기록했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티나 모도티.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는 1920년대 당시 혁명의 열기로 가득하던 멕시코에서 사진을 통해 노동자와 여성의 삶을 기록했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티나 모도티.

이탈리아서 태어나 열여섯에 미국행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예술가’를 꿈꾸다

“그녀는 정치활동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정식 당원이 되기로 했을 때, 그녀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것에 투신하면 그것에 100퍼센트 투신하고 싶어 했다.”

티나 모도티는 소녀 가장이었다. 1896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견직물 공장에서 일했다. 가난은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행을 결심한다. 1913년, 열여섯 살의 티나 모도티는 증기선을 타고 뉴욕으로 떠났다. 2주 후, 입국심사장을 통과한 그녀는 언니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아버지는 샌프란시스코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기계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언니는 동생에게 자신이 다니는 공장을 소개해준다. 자매는 함께 재봉사로 근무했다. “일은 힘들고 보수도 형편없었다. 재봉사들은 작업장에 빽빽하게 들어앉아 오랜 시간 일해야” 했다. 일상은 무미건조했다. 티나 모도티는 재봉틀 앞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발행되는 이탈리아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 1915년에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가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 티나 모도티는 박람회장으로 달려간다. “둥글게 형성된 산호초에 둘러싸인 이국적인 호수가 있는 미술관”에서 열린 박람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티나 모도티는 특히 조각, 회화, 사진 작품들 앞에서 넋을 잃을 것만 같았다.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는 티나 모도티에게 한 청년이 말을 건넸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스물네 살의 보헤미안 예술가 루베 드 라브리 리셰였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말이 잘 통했다.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티나 모도티는 예술가의 연인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1919년 할리우드의  티나 모도티.

1919년 할리우드의 티나 모도티.

1916년 이탈리아 연극동호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라 모데르나’ 극단에서 정식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에는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영화 <호랑이 가죽>의 주연을 맡았다. 모델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티나 모도티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그녀의 연인 루베 드 라브리 리셰는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비극에 몹시 괴로워했다”. 두 사람 사이는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결국 멕시코로 갔다. 거기에 아직 남아 있는 과거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이끌려.”

하지만 1922년 루베 드 라브리 리셰는 멕시코에서 “거의 횡사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티나 모도티는 충격과 실의에 빠진 채로 멕시코로 갔다. 연인의 장례를 치르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그녀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곰곰이 따져보게 되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배우로 자리를 잡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문득 사진작가들의 모델로 일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포즈를 잡을 때마다,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기법, 즉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진 세계를 구축한 에드워드 웨스턴에게 사진 촬영을 배우고 싶었다. 모델도 배우도 아닌, 에드워드 웨스턴의 조수로 티나 모도티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의 예술 감각은 탁월했다.

티나 모도티는 멕시코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 사진작가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에드워드 웨스턴 역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던 시점이었다. 두 사람은 멕시코에서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기로 의기투합하고, 1923년 미국을 떠난다. 티나 모도티와 에드워드 웨스턴은 멕시코 수도와 가까운 콜로니아 후아레스에 정착해 사진관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당시 멕시코 사회는 혁명의 열기로 가득했다. 역동적인 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미국과 멕시코의 예술계는 판이하게 달랐다. 티나 모도티와 에드워드 웨스턴에게 멕시코의 벽화 운동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해 멕시코의 진보적인 예술가들과 만나 예술과 정치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자주 벌였다. 이즈음 티나 모도티는 멕시코의 여성당 창설자인 엘레나 토레스를 만나 페미니스트들과 우정을 쌓았고, 노동자 해방과 민족 해방을 지향하는 신문 ‘엘 마체테(El Machete)’ 관계자들과도 뜻을 함께했다.

1924년부터 티나 모도티는 에드워드 웨스턴의 제자도 조수도 아닌, 독립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그녀는 멕시코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멕시코는 내게 이탈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멕시코에서는 내가 멕시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미국에서는 나는 늘 외국인이었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그녀와 판이하게 달랐다. 미국을 점차 그리워했다. 게다가 티나 모도티의 독자적인 활동을 “못마땅해”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멕시코를 떠나기로 한다. 1924년 12월 두 사람은 결별한다. 그러나 헤어지는 순간에도 서로를 존중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티나의 작품은 내 작품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 자신의 표현이다”라는 말로 그녀의 성장을 기뻐했다. 티나 모도티는 에드워드 웨스턴 전시회의 방명록에 “과거에 당신의 도제였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미래에도 당신의 도제일지 모를 티나 모도티-멕시코, 1924년”이라고 쓰며 예의를 갖췄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자 티나 모도티는 한동안 “미친 듯이 사진에만 매달렸다”. 그녀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현할 준비를 마쳤다.

<b>티나 모도티가 담아낸 ‘순간’</b> 노동자 행렬(1926)

티나 모도티가 담아낸 ‘순간’ 노동자 행렬(1926)

‘지붕에서 바라본, 행진하는 농부들의 밀짚모자’
멕시코 노동자 해방운동이 품은 활기를 찍다

“스탈린의 치어리더가 되기를 거절”
숱한 정치적 탄압에도 모험을 계속하다

티나 모도티는 1926년 8·9월호 ‘멕시코 풍속’에 ‘노동자 행렬’을 발표한다. 그녀는 “지붕 꼭대기에서 열을 지어 행진하는 농부들과 그들이 쓴 커다란 밀짚모자를 내려다보았다”. 멕시코의 노동자 해방운동을 사진과 결합시키려고 한 그녀의 시도에 독자들은 환호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느낌과 농부들의 모자에 비친 햇살 무늬”를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는 점이 멕시코 사회에 긍정적인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1927년에 티나 모도티는 ‘멕시코 풍속’의 수석 사진작가가 되었다. 동시에 “사회적인 일에 점점 더 열심”히 뛰어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정치 망명자들의 모임 장소로 제공했다. 전 세계 양심수를 돕기 위한 후원단체 운영에도 적극적이었다.

<b>티나 모도티가 담아낸 ‘순간’</b> 깃발을 든 여자(1928)

티나 모도티가 담아낸 ‘순간’ 깃발을 든 여자(1928)

1927년 말 그녀는 멕시코 공산당원이 된다. 멕시코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예술과 혁명을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했다. “그녀는 아주 지적이었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능숙했다. 대단히 명석했던 그녀는 외향적이고, 자신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금방 끌렸던 것은 그녀가 사람 마음을 깊이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티나 모도티와 프리다 칼로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티나 모도티는 매우 위험한 여자로 인식되었다. 결혼제도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사랑하며 거침없이 혁명을 외치는 이탈리아 출신의 이방인 티나 모도티를 쫓아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동자들이 읽고 쓰고 말하고 연대할 때, 여성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 세상은 반드시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멕시코 노동자들과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의 사상을 억압하고자 했다.

1929년 1월, 티나 모도티는 멕시코에서 망명 중이던 쿠바 혁명가 훌리오 안토니오 멜라의 암살사건 용의자로 몰려 닷새 동안 심문을 받게 된다. 멕시코 언론은 치정 살인사건으로 몰아갔다. 판사들은 티나 모도티의 사생활을 캐물었다. 무죄 석방 후, 그녀는 더욱 강해졌다. 새로운 작품 세계를 개척한다. “정지된 것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삶의 활기”를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완벽한 스냅 사진”을 추구했다. “모계제 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는 후치탄과 테완테펙 지방”에서 사진을 찍었다. 자신이 멕시코에서 언제든지 추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티나 모도티는 더욱 무섭게 사진에 몰입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또다시 정치적 탄압이 가해졌다. 1930년 2월 광신적인 로마 가톨릭 신자가 멕시코 대통령 취임식 날 당선자 오르티스 루비오에게 총을 쏘았다. 정부는 대통령 암살기도사건을 공산당원 검거에 이용하기로 한다. 티나 모도티는 또다시 체포되어 한동안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그녀에게 추방 명령이 떨어졌다.

<b>티나 모도티가 담아낸 ‘순간’</b> 테완테펙의 여인(1929)

티나 모도티가 담아낸 ‘순간’ 테완테펙의 여인(1929)

1930년 티나 모도티는 독일로 떠났다. 유럽은 파시즘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깊이 절망한다. 광기의 시대에 사진을 찍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1930년 10월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혁명의 도시에서 큰 배신감을 느꼈다. “예술가들은 스탈린의 정책에 갈채를 보내는 치어리더가 되어야 했고, 그러지 않았다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도그마를 이용해 그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티나 모도티는 소련 공산당의 공식 사진작가 자리를 거절했다. 그녀의 개인 작업은 소련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1935년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날 밤, 그녀는 다시 사진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설렜다. 티나 모도티는 내전 중인 스페인으로 가서 인민전선의 승리를 위해 싸웠다. 1939년 뉴욕에 도착해 자신이 겪은 스페인 내전기를 출간했다. 미국에서 엘리너 루스벨트와 여러 차례 만나는 등 티나 모도티는 진보 지식인들에게 환대를 받았지만, 그녀는 안락한 생활 대신 기꺼이 가시밭길을 선택한다. 그녀는 신분을 위장하고 멕시코로 다시 들어갔다. 1940년 티나 모도티는 멕시코의 친구들과 재회했다. 그토록 열망했던 사진 작업에 바로 착수한다.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책을 번역하는 일도 시작했다.

1942년 1월, 칠레 대사로 멕시코에 부임한 네루다의 집에 초대받은 티나 모도티는 그곳에 모인 100여명과 열띤 정치 토론을 마치고 귀가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언론은 그녀의 사망소식을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쿠바 공산주의자인 훌리오 안토니오 멜라와의 관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여자”로 호명하며, 마지막까지 티나 모도티를 모욕했다. 타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녀의 동생은 티나 모도티가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고 밝히며, 근거 없는 소문들을 일축했다. 하지만 그녀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1942년 3월18일 멕시코 현대미술관에서는 티나 모도티 회고전이 열렸다. 그녀의 친구들은 소장 중이었던 사진 50점을 전시하며 티나 모도티를 추모했다.

45년의 생애 동안 티나 모도티는 재봉사, 배우, 모델, 사진작가, 번역가, 연설가, 정치인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더욱 높이 평가될 것이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티나 모도티의 용기를 예찬한다.

*마거릿 훅스의 <티나 모도티>(윤길순 옮김, 해냄, 2004)와 엔리케 크라우세의 <멕시코 혁명과 영웅들>(이성형 옮김, 까치, 2006), <멕시코의 역사>(멕시코대학원 엮음, 김창민 옮김, 그린비, 2011)를 읽고 티나 모도티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영은

[여성, 정치를 하다](28)프레임 밖으로 나와 카메라를 들다, 혁명을 포착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논문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계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쓰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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