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IA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 해소되지 않는 의문들

2023.04.13 18:43 입력 2023.04.17 14:25 수정

디스코드에서 유출된 미국의 기밀 문서.

디스코드에서 유출된 미국의 기밀 문서.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등 동맹국 도청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기밀 문건 유출 용의자가 특정되고, 분량 역시 당초 알려진 100여장이 아니라 최소 300장에 달한다는 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동맹국들에 대한 도청 정황이 뚜렷해지면서 미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번 논란을 서둘러 정리하려는 기류가 역력하지만 주요 의문점들은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도청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진 것인지 확인된 것은 없다. 기밀 문건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도 오리무중이다. 기밀문건 내용 중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이달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한·미 양국 모두 도청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은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의 쟁점과 양국 입장, 의문점을 정리했다.

미국은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나, 대통령실 관계자를 도청했나

첫 번째 쟁점은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는지 여부다. 한국 정부는 “거짓 의혹”이라며 명백히 부인하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지난 11일 대변인실 명의 공식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안보실 등이 산재해 있던 청와대 시절과 달리, 현재는 통합 보안시스템과 전담 인력을 통해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 있으며,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 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정부는 대통령실이 아닌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실 관계자에 대한 도청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덜레스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외부 공간에서 도청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박진 외교부 장관은 도청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며 대통령실과 다른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도청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까지 밝힌 상황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북아일랜드 순방 수행 중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도청 의혹과 관련해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필요한 일”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청에 대해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출 문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왜곡인가

유출 문건의 신빙성을 두고도 양국 정부의 입장은 ‘상당수’ 또는 ‘일부’로 조금 엇갈린다. 대통령 대변인실은 지난 11일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지난 1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문건 중) 일부가 조작됐다는 걸 안다”고 언급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유출 문건은 지난 2월28일, 3월1일 자료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문건 자체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인정했다.

한국 정부는 유출 문건이 왜곡됐다는 판단 근거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우리 국방부 장관은 문건 위조 사실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그 역시 정보 사항”이라며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언제 어떻게 얼마나 아느냐도 굉장히, 우리 정보와 관련돼서 굉장히 중요한 기밀 사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유출 문건 내용인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우회지원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문건 내용과 사실의 일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 국방부는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다만 비슷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문점이 남는다. 문건을 보면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등 안보실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국가 정책을 위반할 수 없기 때문에 우회 지원 방법을 고민하는 대목이 나온다. 김 전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발표를 앞두고 무기 지원 정책을 전환했다는 사실을 발표하면 미국과 거래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155㎜ 포탄 33만발을 폴란드에 판매해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실제로 한국이 포탄 50만발을 미국에 대여 형식으로 제공해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의 언론보도가 나왔다. 방미 중인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12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탄약을 더 공급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포탄 재고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는 무기 및 탄약의 (우크라이나) 인도와 관련해 한국과 이야기를 나눴다”며 “하지만 미국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러 의문점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부는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빌미로 출구전략을 펴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도청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데다가 진상조사가 유출 경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조사하고 (문건 유출 관련) 출처와 범위를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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