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너무 멀어서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았다, 너를 통해

2022.04.21 20:38
이종필 교수

인류의 시야 넓힌 망원경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28)너무 멀어서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았다, 너를 통해

1608년 안경업자 한스 리퍼세이가 처음 제작한 망원경
이것을 통해 하늘을 관찰하며 기존의 세계관을 허문 갈릴레이
그 후에도 인류는 안드로메다를 관측했고, 우주 팽창을 확인했다
점보다 작은 것 포착하기 위해 점점 육중해지는 천체 망원경
한계, 그 너머를 보고 싶다면…‘빅사이언스’에 투자하라

망원경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은 17세기 초반 네덜란드에서였다. 안경업자였던 한스 리퍼세이는 1608년 볼록렌즈와 오목렌즈가 장착된 관을 만들었다. 망원경은 네덜란드 상인들로부터 이탈리아에도 전해졌다. 1609년 베네치아 근교 파도바대학에 재직 중이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손수 망원경을 제작해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에서 지역 유지들에게 선보였다. 갈릴레이는 이 신박한 장난감이 상업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유용하리라는 점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지만 자신은 망원경을 들어 밤하늘을 관찰했다. 갈릴레이는 광학기기로 천체를 관측한 최초의 과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 갈릴레이는 달과 태양을 관측했으며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다. 그 결과로부터 갈릴레이는 지구중심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눈을 혹사했던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은 이후 말년에는 눈이 완전히 멀었다.

갈릴레이 이후 망원경은 천체를 관측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유용한 도구로 계속 사용되었다. 독일의 윌리엄 허셜은 1781년 누이 캐럴라인 허셜과 함께 손수 제작한 망원경으로 천왕성을 발견했다. 천왕성은 광학기기를 이용해 발견한 첫 행성이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고대부터 맨눈으로도 관측해온 천체들이었다. 망원경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를 보여주었다.

19세기에는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베셀이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에서 사상 최초로 연주시차를 발견했다(1838년). 연주시차란 지구의 공전 때문에 생기는 시차로, 이러한 연주시차가 관찰되지 않는다는 점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로 갈릴레이에 이르기까지 태양중심설을 반박하는 논거로 쓰였다. 정말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면 6개월마다 지구의 위치가 태양의 반대편에 있게 되므로 멀리 있는 별의 위치가 달라져 보여야 한다. 지구공전의 결정적 증거인 연주시차는 19세기 이전까지 관측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별들이 생각보다 멀리 있어서 연주시차가 그만큼 작아 관측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셀은 백조자리 61번 별의 연주시차가 약 0.3초각도임을 밝혔다. 간단한 산수를 동원하면 이로부터 그 별까지의 거리가 약 10광년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연주시차는 이보다 좀 더 작고, 별까지의 거리는 조금 더 멀어서 약 11광년이다.

20세기 과학 전체에 큰 족적을 남긴 망원경으로 미국 윌슨산 천문대에 설치된 구경 100인치짜리 후커 망원경(1917년)을 들 수 있다. 존 후커는 자금을 지원한 로스앤젤레스의 거부였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인 에드윈 허블은 1923년 당시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던 윌슨산 천문대의 100인치 후커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를 관측했다. 19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은하수 은하) 안에 있는 성운인지, 우리 은하 밖의 독립된 은하인지를 두고 논쟁이 치열했다. 여기에는 ‘대논쟁(great debate)’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허블이 찍은 사진에는 운 좋게도 안드로메다성운에 속한 세페이드 변광성이 찍혀 있었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주기적으로 밝기가 변하는 별로서 그 성질을 이용하면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 허블이 알아낸 거리는 약 80만광년으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거리(약 250만광년)보다 훨씬 가까웠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 은하의 크기(약 10만광년)보다는 충분히 큰 값이었다. 그러니까, 안드로메다는 우리 은하 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은하였던 것이다.

대논쟁을 종식시킨 뒤 얼마 되지 않아 허블은 후커 망원경으로 20세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46개의 외계은하를 관측해 모두가 지구에서의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로 멀어진다는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공간 속의 임의의 두 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로써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팽창하는 우주는 우리 우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20세기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후커 망원경은 1949년까지 세계 최대의 망원경이었다. 그 이후로 지상에는 더 큰 망원경들이 세워졌고 전파망원경도 등장했다. 급기야 20세기 말에는 우주공간에 망원경을 띄우기에 이르렀다. 허블우주망원경이 그것이다. 1990년 발사된 허블우주망원경의 반사경은 2.4m이고, 지상 약 540㎞의 저궤도를 돌고 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우주론을 21세기 정밀과학의 시대로 진화하도록 초석을 놓았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또 다른 우주망원경인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반사경은 약 6.5m(총 18개의 조각으로 구성)로 허블우주망원경보다 훨씬 더 크다. 제임스웹망원경은 적외선에 특화돼 있어 우주 초기 은하와 별의 탄생을 탐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래 2007년에 발사할 계획이었으나 무려 14년이 늦어진 만큼 비용도 계속 늘어나 임무 완수까지 대략 12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우주라는 가장 거대한 대상을 관측하는 기구가 망원경이라면 육안으로 보기 힘든 미세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구는 현미경이다. 현미경도 망원경과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었다. 현미경을 이용해 17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말피기는 모세혈관을, 영국의 로버트 훅은 세포를 발견했다. 현미경 관찰의 대가였던 네덜란드의 아마추어 생물학자 안톤 판 레이우엔훅은 처음으로 미생물을 관찰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이나 물체에 부딪혀 나오는 빛을 렌즈로 확대해 본다는 점에서는 그 원리가 다르지 않다. 광학기기는 빛, 즉 가시광선으로 대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시광선이 파동으로서 가지는 물리적 특성인 파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더 작은 물체를 관측하려면 그만큼 더 짧은 파장을 가진 뭔가를 이용해야 한다. X선도 훌륭한 도구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 같은 입자도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다. 다만 파장이 짧아지려면 에너지가 커야 한다. 따라서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전자나 양성자 같은 소립자를 큰 에너지로 가속해 원하는 대상에 충돌시켜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그렇게 탄생한 물건이 입자가속기이다. 입자가속기는 말하자면 미시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과도 같다.

망원경의 성능을 높이려면 반사경의 크기가 커야 하듯 미시세계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려면 그 현미경, 즉 입자가속기의 에너지가 커야 하고 그 결과 입자가속기의 크기 자체도 커야 한다. 그와 함께 물론 돈도 많이 든다. 1930년대 초반 미국의 어니스트 로런스가 처음 개발한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원형의 입자가속기는 그 직경이 대략 10㎝였다. 1950년대 중반 미국 버클리대학에 설치된 베바트론이라는 입자가속기의 직경은 약 40m로 커졌다. 1980년대 미 시카고 근교 페르미국립연구소에 설치된 입자가속기인 테바트론은 그 둘레가 6.3㎞에 달했다. 유럽원자핵연구소(CERN)에서 현재 운용 중인 대형강입자충돌기의 둘레는 27㎞이다. 원자보다 훨씬 더 작은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이렇게 거대한 설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대형강입자충돌기는 인류가 만든 역사상 가장 큰 과학연구 구조물로서 그 건설에는 약 10조원의 돈이 들어갔다.

테바트론은 1995년 6종의 쿼크 중 마지막으로 톱쿼크를 발견했고 대형강입자충돌기는 2012년 힉스입자를 발견했다. 모두가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들이다. 쿼크는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핵자를 구성하는 입자들이고 힉스입자는 소립자들이 질량을 갖게 되는 과정과 관계가 있는 입자이다. 1897년 전자를 발견한 지 약 50년 뒤인 1948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돼 20세기 전자혁명을 이끌었고 1911년 원자핵을 발견한 지 겨우 34년 만에 최초의 핵무기가 실전에 사용된 역사를 돌아보면,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이 훗날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과학자들은 대형강입자충돌기 이후의 차세대 입자가속기도 연구 중이다. 물론 크기는 훨씬 더 커진다.

과학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는 않지만, 가장 거대한 탐구 대상인 우주와 가장 미세한 탐구 대상인 소립자를 관측해온 인류의 여정에서 그 도구들은 이렇게 점점 더 커져왔다. 그에 따라 사람도 돈도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이른바 빅사이언스(big science)가 계속 요구되는 셈이다. ‘욕심’ 많은 과학자들은 점점 더 큰 망원경과 더 큰 입자가속기를 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제한된 망원경과 현미경으로는 제한된 영역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략 다 해본 셈이다. 그 제한된 영역, 그것이 바로 인간 지성의 한계점이다. 과학의 역사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역사였고 그것은 과학자들의 사명이었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신세계가 열릴지도 모르는데 그 길을 주저할 탐험가는 없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잘사는 나라이다. 10여년 전 4대강 사업에 들어간 22조원이면 우주망원경과 입자가속기를 모두 만들 수 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고 마음이 없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이제는 평범한 선진국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려면 인간 지성의 최전선을 우리가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량에 맞는 빅사이언스를 꾸준히 시도하고 추진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모두가 설계하는 지금 과학에 대한 고민이 많이 보이지 않아 무척 아쉽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에 올라가면 거기서 망원경을 시연했던 갈릴레이를 기려 조그만 돌판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 “1609년 8월21일 그의 망원경으로 400년 동안 인간의 시야를 넓혔다.” 앞으로 수백년 동안 대한민국의 시야를 넓히고 미래를 바꾸려면 우리도 지금 망원경을 들어야 한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28)너무 멀어서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았다, 너를 통해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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