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제주 바다의 50만년 타임캡슐 ‘서귀포층’

2018.09.27 20:36 입력 2018.09.27 20:46 수정
문경수 과학탐험가

화산섬 폭포 기행

제주의 주요 관광지인 중문과 서귀포 일대의 폭포와 해안 절벽들은 40만년 전 단층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천지연폭포와 천제연폭포, 정방폭포가 대표적이다. 사진은 동양에서 폭포수가 직접 바다로 떨어지는 유일한 폭포인 정방폭포 전경이다. 윤종운씨 제공

제주의 주요 관광지인 중문과 서귀포 일대의 폭포와 해안 절벽들은 40만년 전 단층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천지연폭포와 천제연폭포, 정방폭포가 대표적이다. 사진은 동양에서 폭포수가 직접 바다로 떨어지는 유일한 폭포인 정방폭포 전경이다. 윤종운씨 제공

“잠시 후 제주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기장의 착륙 안내에 선잠이 깼다. 창밖을 보니 바다 위에 뜬 별이 보인다. 요즘 제주는 한치잡이가 한창이다. 선상 위에 켜진 집어등이 바다를 밤하늘로 만들었다. 평소 같으면 보이지 않을 비양도의 자태도 보였다. 이번 제주 답사는 폭포 기행이다. 고산리에 사는 윤종운 사진작가가 동행해 풍경을 담기로 했다. 제주의 주요 관광지는 남쪽에 있는 중문과 서귀포 일대에 집중돼 있다. 호텔과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것도 이유지만 40만년 전 일어난 단층 때문이다. 단층 때문에 생긴 솟은 지형으로 해안절벽이 생겼고, 용천수와 만나는 지점에는 물이 흘러 폭포가 만들어졌다.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그리고 정방폭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고보니 제주시가 있는 동쪽에서는 폭포나 해안절벽을 보지 못했다.

■ 천지연폭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태풍이 지나간 서귀포는 평온했다. 전날 분주하게 움직였을 한치잡이 배들이 항구에 평화롭게 정박해 있다. 천지연폭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윤 작가에게 주차장에서 보이는 칠십리교가 바로 천지연폭포의 시작이라고 말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천지연폭포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현재 칠십리교 위치의 절벽에서 폭포수가 흘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뒤로 폭포 하단의 서귀포층이 폭포수의 침식에 의해 무너져 내리면서 현재의 위치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지질공원 총서 제주지질공원>에 따르면, 약 40만년 전쯤 인근의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해 서귀포층을 덮었다. 그리고 지층과 암석이 하나의 면을 경계로 서로 어긋나 한쪽은 가라앉고 다른 한쪽은 솟은 대규모 단층운동이 해안선을 따라 일어난다. 이렇게 단층운동으로 계단 지형이 만들어진 뒤 하천이 발달하면서 폭포가 만들어졌다.

천지연폭포를 비롯해 제주의 폭포들이 서귀포 해안을 따라 생겨난 이유이다. 특히 폭포 아래에 놓인 지층(서귀포층)보다 위에 놓인 지층(화산암)이 더 단단한 경우 하단의 지층이 더 빨리 침식되면서 상단의 지층이 무너져 내려 폭포는 점점 상류 쪽으로 이동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천지연폭포는 칠십리교부터 800m를 후퇴한 셈이다. 칠십리교부터 난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국내의 대표적인 상록수림이다. 기온이 따뜻하고 습기가 많아 온난한 기후대에서 자생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천지연 계곡에는 447종의 식물이 분포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중 세계적으로 천지연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 1종(가시딸기)과 국내에서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식물 17종이 자라고 있다. 또한 칠십리교 상류 쪽엔 천연기념물 제163호인 담팔수가 자생한다. 담팔수는 난대림 지대에서 자라는 나무로 국내에서는 제주도 남쪽 해안에서만 자란다. 마침 담팔수 위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담팔수 아래에는 천지연폭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흰뺨검둥오리 무리도 보였다.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그림처럼 천지연폭포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폭포 하단으로 무너져 내린 화산암 조각도 눈에 확 띄었다. 최근 비가 많이 내려 천지연폭포 서쪽 옆으로 작은 폭포 줄기가 생겼다. 자연은 늘 어떤 식으로든 단서를 남긴다. 누군가 천지연폭포를 찾는다면 웅장한 폭포 이면에 숨겨져 있는 단서를 찾는 탐정처럼 주변을 살펴보라고 권한다. 구글어스를 열어 칠십리교부터 천지연폭포까지 연결된 하천의 모습을 보니 사건의 실마리를 찾은 탐정처럼 기분이 뿌듯했다. 우리는 천지연폭포가 칠십리교 위치에 있던 시절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정방폭포로 이동했다. 정방폭포는 동양에서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유일한 폭포로 유명하다. 세계유산본부 전용문 박사는 한 신문 칼럼에서 정방폭포에 대해 “지금 바다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장관을 보여주는 정방폭포의 운명도 천지연폭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수십만년이 지난 후 정방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해안에서 수백m를 걸어 들어가야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을 비롯한 숲이 잘 가꿔진 천지연폭포 주변. 윤종운씨 제공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을 비롯한 숲이 잘 가꿔진 천지연폭포 주변. 윤종운씨 제공

■ 제주 바다의 타임캡슐, 서귀포층

정방폭포를 뒤로하고 다시 천지연폭포로 이동했다. 오늘날 천지연폭포를 있게 한 폭포의 하단부인 서귀포층을 만나기 위함이다. 서귀포항과 새섬을 연결하는 새연교 방파제 옆에 가면 서귀포층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안내판이 이곳이 서귀포층임을 알려주지만 거친 파도와 풍화작용에 의한 낙석 위험 때문에 인적이 드물다. 서귀포층은 제주도가 탄생할 무렵 바닷가에서 일어난 수성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체가 오랜 시간 파도에 깎이고 조개 같은 해양생물의 퇴적물과 함께 쌓인 100m 두께의 퇴적암층이다.

화산퇴적층인 서귀포층은 제주에 물을 제공하는 중요한 지층이다. 서귀포층은 물이 잘 통과하지 못하는 지층으로 많은 지하수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서귀포 해안 일대에 용천수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서귀포층은 퇴적지층의 일부가 솟아올라 서귀포 해안 용암 하부의 절벽을 따라 1.5㎞ 길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귀포층을 구성하는 화산분출물과 해양퇴적물은 제주도 형성 초기의 흔적과 과거 해양환경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다. 또한 이곳은 다양한 종류의 화석이 발견되어 천연기념물 제195호로 지정돼 있다. 과거 따뜻한 바다에 살던 조개류는 물론 산호, 성게, 상어이빨 등의 화석과 차가운 바다에 살던 생물의 화석이 함께 퇴적돼 있어 제주를 비롯한 동아시아 일대의 해수면 변동과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타임캡슐이다. 적어도 50만년 전쯤까지 제주 바다를 누비던 생물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다.

제주도 탄생 무렵의 화산체
파도에 깎이고 퇴적물 쌓여
100m 두께로 남은 퇴적암층

동양 유일 바다 직수 정방폭포
수만년 후 육지 쪽 이동 가능성
천지연폭포가 해안 침식 ‘증거’

서귀포항 앞 새섬에 올라가면
절벽층 상·하부 한눈에 확연히

서귀포층 해안 입구로 들어서면 안내판이 보인다. 몽골에서 함께 공룡 탐사를 했던 서울대 이융남 교수가 연구해 발표한 서귀포층 백상아리 이빨화석이 소개돼 있다. 몽골 탐사 때도 공룡을 비롯한 다양한 고대생물의 이빨화석을 발견한 적이 있어 더 반가웠다. 오래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김완병 박사와 이곳에 왔을 때 서귀포층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 이야기를 들었다. 풍화작용으로 서귀포층 암석이 해안가로 떨어지면서 파인 지형이 새들의 서식처로 유용해 둥지가 많다고 했다. 100만년 전 해양생물의 터전이 육상생물의 터전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우리는 절벽에 쌓인 서귀포층(하단)과 조면안산암(상부)의 모습을 한눈에 보려고 새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주 초가 지붕을 덮는 풀인 띠를 제주에서는 ‘새’라고 부른다. 새섬은 서귀포항 앞에 위치해 항구의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아무리 큰 파도도 새섬의 위용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2009년 서귀포항과 새섬을 잇는 새연교가 세워져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 전망대에 서니 절벽의 상부와 하부가 또렷이 구분됐다. 이 지층이 천지연폭포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서귀포에만 폭포가 생긴 원리가 명확히 이해됐다.

답사를 마치고 해녀의 집에 들러 해녀계 삼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새섬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사람이 우도에서 온 해녀였다는 사실, 그들의 눈으로 본 아름다운 바닷속 세상 이야기, 보면 장수한다는 노인성 이야기까지 나누느라 한나절이 금세 지났다. 풍성한 이야기만큼 해녀들은 오랜 기간 바다를 터전으로 삼았고, 그 살아온 삶은 고됐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대학교 송성대 명예교수가 쓴 <제주인의 해민정신, 그 시대적 위상>을 보면 해녀들은 “농경사회처럼 촌수, 항렬이나 나이 또는 신분 등의 귀속적 지위가 아니라 해산물 채취 능력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누어져 의사결정 과정에, 혹은 ‘불턱’(잠시 몸을 덥히는 모닥불 자리)의 윗자리 배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나온다. 그녀들에게 바다는 일터이자 삶이었다. 제주의 자연은 늘 그들의 고된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서귀포층은 지구의 기억뿐만 아니라 오래된 제주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천지연폭포가 원래 있던 자리인 칠십리교와 천지연 하류 전경. 윤종운씨 제공

천지연폭포가 원래 있던 자리인 칠십리교와 천지연 하류 전경. 윤종운씨 제공

■ 서귀포에서만 보이는 노인성(星)

해녀 삼촌이 들려준 장수별로 불리는 노인성(星)은 새롭게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적 키워드로 불린다. 예로부터 제주의 뛰어난 경관을 일컫는 12경에도 서진노성(서귀포에서 바라보는 노인성)이란 이름으로 포함됐다.

노인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태조 17년이다. 노인성이 나타나면 나라가 평안하고 왕이 장수한다는 징조로 여겼다.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은 노인성을 보기 위해 제주도를 세 번이나 찾았다는 기록이 <연려실기술>에 기록돼 있다. 또한 1425년 세종대왕은 윤사웅에게 한라산에 가서 노인성을 관측하라고 명을 내렸다. 겨울철 별자리인 노인성은 한 번이라도 보면 무병장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겨울철 밤하늘에서 제일 밝은 별 시리우스를 따라 남쪽 바다로 내려가면 수평선 위로 희미한 별 하나가 보인다.

밤하늘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이지만 고도가 너무 낮은 탓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이 별을 목숨별이라고도 불렀다. 노인성은 겨울철 별자리에 속해 11월에는 새벽녘에 보이다가 2월로 가면서 보이는 시간이 저녁시간대로 바뀐다. 3월 초는 오후 7시30분부터 한 시간가량만 서귀포 천문과학문화관에서 노인성을 관측할 수 있다. 하지만 남반구에 가면 노인성(카노푸스)이 높게 뜨고 밝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관측할 수 있다. 호주를 탐험할 땐 거의 매일 카노푸스를 봤다. 때론 너무 밝게 빛나서 목성이나 시리우스로 착각할 정도다.

▶필자 문경수

[전문가의 세계 - 문경수의 탐라도 탐험] (13)제주 바다의 50만년 타임캡슐 ‘서귀포층’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한 과학탐험가다. 지난 10여년간 과학을 주제로 서호주·몽골·알래스카 등 지질학적 명소들을 탐험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생물학그룹과 과학탐사(2010년)를 했고, <효리네민박>(JTBC), <어쩌다 어른>(tvN), <세계테마기행>(EBS)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문경수의 제주과학탐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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