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선풍기 켜놓고 잠들면 사망”이라는 낭설과 유사한 “백신 맞고 사망”

2021.03.26 06:00
이종필 교수

선풍기, 된장찌개, 그리고 백신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선풍기가 저체온증을 유발한다면 에어컨은 더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
아마도 사망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질환 또는 과음 탓일 가능성 높아
‘선풍기 사망설’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둔갑시키는 대표적 사례

된장찌개를 먹은 후 사망했다고 사망원인을 된장으로 볼 수는 없어
우리는 된장찌개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코로나 백신도 마찬가지…전 세계적으로 이미 수천만명에게 접종됐다

“얘야, 잘 때는 선풍기 끄고 자라.” 어릴 때부터 더운 여름날이면 부모님께 항상 듣던 말이었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사망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속설의 진원지는 언론이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선풍기 켜놓고 자다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되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2007년에도 “선풍기 켜놓고 잠들던 40대 숨져”라는 기사가 나왔다. ‘선풍기 사망설’에는 그럴듯한 설명도 있었다. 크게 저체온증과 호흡곤란이 그 이유로 지목되었다.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사람의 체온이 떨어져 사망할 수 있다, 선풍기 바람이 얼굴 쪽을 향하면 순간적으로 진공상태가 형성되거나 또는 산소가 부족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선풍기가 저체온증을 유발한다면, 선풍기보다 냉방효과가 훨씬 더 뛰어난 에어컨은 아마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에어컨 켜놓고 자다가 몰살당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풍기 바람이 일시적으로 진공상태를 만들어 호흡곤란으로 죽는다는 주장은 물살이 빠른 개천에서는 일시적으로 물이 없어져 물고기가 죽는다는 주장만큼이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산소가 부족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연소반응(호흡을 포함해서)이 일어나 산소를 소모해야 하는데 선풍기의 작동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선풍기가 사망자의 사인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의료계에서도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선풍기보다는 사망자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질환이나 과음 등이 사망에 더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풍기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의 까마귀에 가깝다.

‘선풍기 사망설’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둔갑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관관계란 포괄적으로 말해서 A이면 B인 경향이 있다는 관계이다. A가 B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건 A와 B가 길지 않은 시간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발생했다면 A와 B는 포괄적으로 상관관계(강하든 약하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과관계는 A가 B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때에만 성립하는 관계이다. 따라서 인과관계는 상관관계 중에서 대단히 특별한, 극히 일부의 부분집합이다. 과학이 추구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쥐를 가까이하면 질병에 걸린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어떤 미시적인 병원체가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알아내려고 한다.

만약 언론보도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잤기 때문에 사망”이라고 표현했다면 이는 선풍기와 사망 사이의 강력한 인과관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선풍기 켜놓고 자다가 사망”이라고 썼다면 이는 순차적으로 사건이 발생했다는 상관관계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가 이 문장을 받아들일 때에는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단순히 팩트만 시간 순서로 나열하더라도 우리는 그 팩트들 사이에 모종의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우리가 파편적인 정보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스토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보 보존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풍기와 사망사건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굳이 두 팩트를 나란히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정보를 구성하는 사람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암묵적으로 둘 사이의 간단치 않은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사망자가 자기 전에 된장찌개를 먹은 뒤 선풍기를 켜놓고 잤다고 해서 “된장찌개 먹고 자던 40대 숨져”라고 기사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사망자가 잠들기 전에 했던 모든 행위들 중에서 유독 선풍기를 켜놓은 행위만 ‘선택’해 사망사건과 나란히 배치한 것은 이미 선풍기에 대한 화자의 선입견이 크게 반영된 결과이다. 따라서 문장의 표면적인 형식이 아무리 인과관계가 아닌 팩트의 순차적 나열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불확실한 정보를 유포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처럼 표면적인 상관관계를 기술함으로써 사실상의 인과관계를 유도하는 기법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백신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다. 작년 가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독감 바이러스가 함께 창궐할 것을 우려해 방역당국이 독감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나섰을 때 대부분의 언론이 경쟁적으로 “독감 백신 맞고 사망”한 사람 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적지 않아서 작년 독감 백신 접종률은 전년 대비 약 9%포인트 감소했다. 지금은 독감 백신의 자리를 코로나19 백신이 대신하고 있다.

“백신 맞고 사망”이라는 문장구조와 그 속의 논리구조는 ‘선풍기 사망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코로나19 백신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밝혀진 사례가 하나도 없다. 이는 부검을 포함해 자세한 역학조사를 진행한 결과이다. 사망자 대부분은 원래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다. 백신과는 상관없이 이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직접적인 사인으로 여겨지는 심부전이나 폐렴 등은 백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사망자는 하루 평균 약 800명이고 그중 약 20%인 160명 정도는 고혈압성 질환,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같은 순환기 계통 질환이 원인이었다. 이 숫자는 백신 접종 여부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종의 배경효과로서의 숫자이다. 만약 백신 접종이 순환기 계통의 질환을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면 하루 평균 이 숫자가 크게 치솟아야만 할 것이다. 아직 그런 일은 보고되지 않았다. 백신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이런 숫자를 비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유럽의약품청이 A사 백신과 혈전증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데에도 배경효과로서의 혈전증 자연발생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백신 접종 뒤의 혈전 관련 질환이 A사와 P사 백신 모두 100만명당 2건 안팎으로 보고됐다. 반면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혈전 관련 질환자는 100만명당 수백명 수준이고 미국은 1000명대이다.

세상을 과학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처럼 배경효과 대비 새로운 효과를 비교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를 괴롭히는 미세먼지의 책임을 중국에 물으려면 우선 한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전체 미세먼지에서 얼마나 차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배경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혹세무민에 가까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망자들의 사인이 백신과 관계가 없는 것은 된장찌개가 이들의 사인과 관계가 없는 것과도 같다. 만약 사망자 몇몇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된장찌개라고 해서 어떤 언론이 “된장찌개 먹은 뒤 사망”이라고 보도하면 어떻게 될까? “된장찌개 먹은 뒤 사망”이라는 진술은 순차적으로 일어난 팩트의 나열이지만 우리의 언어습관에서는 그 속에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내재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보도를 어이없다며 웃어넘기거나 상식적이지 못한 보도라며 항의할 것이다.

된장찌개가 안전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된장찌개의 성분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추적조사해 알게 된 사실은 아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이 먹으면서 축적된 경험적 임상 결과, 즉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래 먹어왔는데도 별 탈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특별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된장찌개도 오래된 음식이지만 백신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제너가 종두법을 시행한 것이 1796년이었고 프랑스의 파스퇴르가 닭 콜레라와 탄저병 및 광견병 백신을 개발한 것이 1880년대였다. 20세기 내내 인류는 수많은 백신을 맞았고 덕분에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났다.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특정 백신에 대한 불신이고 둘째는 백신 일반에 대한 불신이다. 백신의 성분이나 작동 원리, 제조 방법 등을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인류가 지금까지 백신을 맞아온 세월과 숫자를 고려한다면 백신 일반을 불신할 만할 근거는 별로 없다.

특정 백신에 대한 불신은 합리적인 의심 수준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신기술이 도입되거나 개발 기간이 짧았다는 것도 의심의 원인이 될 수는 있다. 이런 의심이 타당한지 아니면 백신이 안전한지는 일차적으로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판단할 일이다. 그 결과 최근 논란이 된 A사 백신의 경우 세계보건기구와 유럽 및 한국의 방역당국에서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접종했고 심각한 부작용이 얼마나 나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안전성을 따져보는 한 가지 간접적인 방법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대적으로 방역을 잘해왔던 우리나라가 백신 접종을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A사 백신은 지금까지 유럽에서 2000만명 가까이 접종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심각한 부작용 사례는 거의 없다.

만약 중국이나 일본에서 “된장찌개 먹고 사망”이라는 기사를 냈다면, 전 국민이 들고일어나서 그 언론사에 항의했을 것이다. 단순하고 정확한 팩트의 나열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기사를 낸 저의, 예컨대 한식을 깎아내리거나 혐한 정서를 확산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 맞고 사망”이라는 기사를 경쟁적으로 남발한다면 혹시나 백신에 대한 불신을 높여 사회 혼란과 불안감을 부추기고 작년 독감 백신처럼 접종률을 낮춰 코로나 방역 실패라는 정략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A사 백신 접종 동의율은 65세 이상에서 하락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14)“선풍기 켜놓고 잠들면 사망”이라는 낭설과 유사한 “백신 맞고 사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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