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종로구 창신동, 뉴욕·밀라노처럼 ‘디자인 1번지’ 변신을 꿈꾼다

2017.02.09 20:42 입력 2017.02.10 11:11 수정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의 옷은 거의 종로구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만들어진다.<br />하루 생산하는 옷은 평균 32만5500벌이다.<br />봉제박물관에 마릴린 먼로가 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의 옷은 거의 종로구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만들어진다.
하루 생산하는 옷은 평균 32만5500벌이다.
봉제박물관에 마릴린 먼로가 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온종일 미싱 소리가 끊이지 않는 봉제마을이다.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동대문 의류시장으로 원단과 완제품을 실어 나르고, 가파른 골목을 따라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옷을 만든다. 봉제마을에서 하루 만드는 옷은 평균 32만5500벌. 실로 따지면 2500m짜리 실타래가 8000개가 넘는다. 한 줄로 늘어뜨리면 2만174㎞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19회를 오갈 수 있다.

“하루 24시간 불야성을 이루는 동대문 패션타운의 의류는 무조건 봉제마을을 거친다고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동대문 의류시장은 가봤어도 창신동 봉제마을은 오르지 않았다. 서울 성곽이 복원되면서 낙산공원을 찾기는 해도 둘레길을 걷거나 야경을 감상하고 차로 돌아올 뿐이었다. 서울관광 마케팅 최윤정씨(33)와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5번 출구에서 만나 마을버스 3번을 타고 종점인 낙산공원에 내렸다. 저 멀리 남산타워가 손에 닿을 듯하고 동대문시장의 초고층 건물들이 발아래서 꿈틀거렸다. 탁 트인 하늘을 등지고 천천히 봉제마을로 들어섰다.

[서울, 마을을 읽다] (6) 종로구 창신동, 뉴욕·밀라노처럼 ‘디자인 1번지’ 변신을 꿈꾼다

마을 길은 가팔랐다. 두 발로 제자리에 서 있기가 버거웠다. 길이 얼어붙기라도 하면 미끄러질 것이 분명했다. 발끝에 잔뜩 힘을 주고 ‘미싱’이라고 쓰인 건물 앞 창문 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4평 정도 되는 집 안에는 옛날 어머니가 쓰던 재봉틀이 마주 보고 있었고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실타래들이 차곡히 쌓여 있었다. 바로 옆 슈퍼에는 소주병과 맥주병들이 가득했다. 계산대 위에 놓인 활명수, 쌍화탕, 진통제, 담배도 많이 팔린다고 했다.

대낮인데 길을 오가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비좁은 골목을 묘기 부리듯 굉음을 내며 으르렁거리는 오토바이가 요란했다. 한 집 건너 한 집은 미장원이었다. ‘염색·커트 5000원’이라고 써 있었지만 가게는 텅 비었다. 전봇대에는 ‘방 2칸에 보증금 2000만원, 월 55만원’이라는 전단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성냥갑처럼 생긴 낯선 간판은 도드라졌다. 구찌, 와끼, 마도메, 시야게…. 분명 한글인데 도무지 뜻을 알 수 없었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1~2명이 가내수공업을 하는 봉제공장이었다.

“봉제사의 수입은 바느질 솜씨와 속도에 따라 달라요. 당일 오전 9시 주문을 받고 일감을 나누는데 한 달에 700만원도 벌지만 100만원도 못 가져가기도 해요.” 마을 해설사 문형표씨(75)는 “봉제마을에는 바지, 재킷, 원피스 등 원단을 자르고 바느질하고 마무리하는 공장이 전문적으로 세분화돼 있다”면서 “개미 소리도 안 들리는 것은 모두들 재봉틀 앞에 앉아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신동은 복숭아나무와 앵두나무가 우거진 과수원이었다. 붉은 열매가 많아 ‘홍숫골’이라고도 했는데 1914년 한성부 관청이던 인창방과 숭신방에서 한 글자씩 따서 창신동이라고 불렀다. 창신동이 북적거린 것은 1970년대 동대문 의류시장이 번성하면서다. 청계천 직공들이 가까운 달동네인 창신동 판자촌으로 몰려들었고 쪽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1980년대 들어서는 재단사와 직공들이 집 안에 미싱기계 1~2대를 놓고 밤을 새워가며 재봉틀을 돌릴 만큼 일감이 넘쳤다. 위기가 닥친 것은 1990년대 말 브랜드 의류가 인기를 끌면서다. 대규모 공장에서 옷을 찍어내는 것도 모자라 값싼 중국산 의류가 물 밀듯 들어왔고 동대문시장 의류 도매업자들은 공임이 싼 베트남과 중국 공장에 주문량을 늘렸다. 젊은 기술공들이 썰물처럼 쪽방을 빠져나가자 중국,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터를 잡았다. 최근 10년 사이 1만7000여명이던 봉제사는 1만여명만 남았고 공장도 100여개가 문을 닫았다.

창신동 전봇대를 감싼 재봉틀 그림.

창신동 전봇대를 감싼 재봉틀 그림.

“미국 뉴욕이나 이탈리아 밀라노에 가보세요. 디자이너 거리마다 봉제공장들이 있습니다. 톡톡 튀는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옷으로 짓는다는 것이 쉬운가요? 미리 만들어보고 바늘땀 하나하나를 고쳐가며 실밥을 잘 마무리해야 명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장인의 손길이 중요하지요.” 차경남 서울봉제산업 회장(57)은 “젓가락 문화를 가진 민족은 재주가 많다는데 일본과 중국과 달리 숟가락까지 쓰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손 감각이 뛰어난 봉제마을 장인이야말로 패션강국으로 가는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봉제마을 스스로가 변화를 꾀하면서 창신동에 온기가 감돌고 있다. 어두운 봉제골목을 밝히는 데는 젊은이들도 한몫하고 있다. 의상디자이너들이 일구고 있는 ‘공공공(000)간’은 일자리와 마을 정보 등을 실시간 나누는 지역 사랑방이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든 작은 도서관 ‘뭐든지’는 책도 읽고 소공연도 감상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최근에는 봉제인들이 실시간 디자이너, 바이어의 주문을 인터넷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만들었다. 남는 원단쪼가리를 재활용해 실과 솜을 만들어 파는가 하면 연료로도 개발 중이다.

창신동의 소규모 의류 제작 업소에서 미싱사들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창신동의 소규모 의류 제작 업소에서 미싱사들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봉제인들에게 라디오만큼 친숙한 이웃도 없지요. 종일 바느질을 하시기 때문에 옛날 ‘뽕짝’을 많이 트는 편입니다. 나훈아, 이미자의 시절은 지났고요. 장윤정, 박현민의 노래를 주로 신청해요.”

마을방송국 ‘덤’의 진행자 조은형 라디오국장(44)은 “워낙 봉제사들이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며 “따로 음반을 낸 주민도 여럿”이라고 말했다.

봉제마을은 부산의 감천 문화마을이나 전통 벽화마을과는 다르다. 한 치의 오차가 허용되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터이기에 공장을 직접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소규모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김성일 사장(56)이 “눈이 침침해 미싱바늘에 실을 꿰지 못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며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LED 조명 아래 50대 여성 7명이 옷감을 재단하고 있었다. 재봉틀만 있는 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화된 자동화 공정도 눈에 들어왔다.

창신동은 봉제산업으로 수출길을 열었던 1970년대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현대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동네다.

▶오늘 야식은! 매운족발이다

[서울, 마을을 읽다] (6) 종로구 창신동, 뉴욕·밀라노처럼 ‘디자인 1번지’ 변신을 꿈꾼다


서울 창신동에는 유명한 맛집이 많다. 동대문 의류시장의 불이 하루 종일 꺼지지 않는 만큼 야식조차 감칠맛이 난다. 24시간 영업하는 집들이 많은데 가장 유명한 음식은 매운 족발이다.

‘옥천매운 왕족발’(02-3672-7168)은 석쇠에 족발을 넣고 앞뒤로 구워 내는데 불맛이 고기에 깊숙이 배어 풍미가 좋다. 야들야들한 고기를 입안에 넣는 순간 톡 쏘는 매운 맛이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준다. 매운족발(앞다리) 3만원, 한방족발(뒷다리) 2만7000원, 계란찜 3000원, 주먹밥 2000원이다.


‘씨엘 01’(02-766-6629)은 천연 발효종과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해 24시간 건강한 빵을 만드는 유기농 베이커리다. 바게트 등 다양한 종류의 빵에 야채와 견과류 등 식재료를 듬뿍 넣어 주는데 가격까지 착해 항상 붐빈다. 인기있는 빵은 크랜베리 크림치즈빵과 먹물호두빵. 각 4000원.

‘동대문 설렁탕’(02-741-1510)은 소고기의 10가지 부위를 24시간 가마솥에서 푹 우려낸 뽀얀 국물이 일품이다. 한 그릇을 먹으면 하루 종일 배부를 정도다. 국물에 밥을 말아 김치를 척척 올려 먹는 맛이 그만이다. 돌솥설렁탕 8000원, 돌솥갈비탕 9000원, 도가니탕 1만2000원이다.


‘떴다 삼계탕 무한리필’(02-766-1662)은 단돈 6000원에 삼계탕, 뼈해장국, 선지해장국을 무한 리필로 먹을 수 있는 집이다. 밥과 반찬까지 모두 셀프인데 원하는 만큼 실컷 먹을 수 있다. 삼계탕은 가마솥에 푹 고아 육수가 진하고 국내산 닭고기는 부드럽다. 삼계탕 6000원.

‘낙산 냉면’(02-743-7285)은 달달한 육수에 매콤한 양념이 풀어져 나오는데 아주 매운, 보통 매운, 덜 매운, 순한 맛 등을 고를 수 있다. 얇게 채 썬 오이를 수북이 올려주는데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다. 국물이 맵지만 시원하다. 겨울철에도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낙산냉면 6500원, 특냉면 8500원, 사리추가 2000원이다.

‘동문식당’(02-747-8118)은 담백한 콩나물 국밥집으로 유명하다. 갓 도정한 국내산 햅쌀에 신선한 콩나물을 얹어 내는데 국물이 시원하다. 황태와 밴댕이, 대파 뿌리 등 총 6가지의 재료를 넣고 2시간 넘게 팔팔 끓여 내기 때문에 해장국으로도 많이 찾는다. 가격도 놀라울 정도로 착하다. 콩나물국밥이 3000원, 소고기를 넣은 콩나물비빔밥이 3000원이다.



경향신문·서울관광마케팅(STO)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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