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중구 을지로동, 기계소리 야위었지만 “아직은 쟁쟁하다”는 가장들의 골목

2017.03.16 21:01 입력 2017.03.17 09:45 수정

중구 을지로동에서 만난 철물 제품을 만드는 공업사의 내부. 기성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주문에 따라 물건을 만들어준다. 특별한 인테리어 제품을 원하는 카페 주인,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 미술학도들이 많이 찾아와 ‘작품’을 만들어간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중구 을지로동에서 만난 철물 제품을 만드는 공업사의 내부. 기성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주문에 따라 물건을 만들어준다. 특별한 인테리어 제품을 원하는 카페 주인,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 미술학도들이 많이 찾아와 ‘작품’을 만들어간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중구 을지로동은 개발바람이 불던 1960~1970년대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공구, 조명, 목재, 타일도기, 페인트, 철물, 벽지 등 온갖 기계공구와 인테리어 자재들이 모여 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4가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왔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자 건축가 고 김수근의 작품인 세운상가 건너편에 있는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낯선 간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로구로’(도자, 목재, 금속 등의 표면을 가공하는 물레), ‘빠킹’(이음매 또는 틈새를 고무와 금속으로 새지 않게 하는 것), ‘빠우’(금속 소재 표면을 매끄럽게 광택내는 것) 등 한글도 아니고 외래어도 아닌 희한한 말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어와 영어를 변형시킨 이 동네의 기술용어였다.

[서울, 마을을 읽다] (11) 중구 을지로동, 기계소리 야위었지만 “아직은 쟁쟁하다”는 가장들의 골목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는 마을이 바로 을지로입니다.”

중구 통장협의회 홍성준 회장(58)을 따라 1960~1970년대 지어진 4~5평 되는 철공소와 목공소를 둘러봤다. 어른 키만 한 낮은 담벼락을 따라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생소한 풍경이 잇따르는데 흥미로웠다.

지도를 펴니 국가 비상사태 을지연습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을지 1호’부터 ‘을지 5호’까지 표시돼 있다. 최근 생긴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이 중 가장 유명하다는 ‘을지 3호’부터 찾았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전등을 만든 소동호 작가(33)를 운 좋게 만났다.

“을지로에는 기술 장인들이 많고 재료가 풍부합니다. 시끄럽게 작품 활동을 해도 상관없고요. 장인의 기술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디자인하고 있는데 옛것과 새것의 공존이라고 할까요. 골목에서 창작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한지, 나전칠기 등 전통 공예를 주로 다루는 그가 미완성 작품이라고 소개한 칸막이는 놀라웠다. 오동나무를 태우는 기법으로 나무 단면에 옻칠을 했는데 질감이 고풍스럽고 우아했다. 스테인리스와 동으로 만든 단아한 조명 갓은 명품 같았다. 모두가 옆집, 그 옆집 장인들과 기술 협업한 것이라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수십년 세월을 견뎌낸 ‘한약국’이라는 광고지가 벽에 붙어 있다. ‘징, 징, 징’ 불꽃과 함께 날카롭게 깎이는 쇳소리를 따라 걸었다. 막다른 골목인가 싶으면 옆 골목이었고 지름길인가 싶으면 가로막혔다.

‘을지 4호’는 재활용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예술공간이었다. “아이들의 과학 실험키트라고 보면 됩니다. 꼬마 로봇을 조립하면서 직렬과 병렬 회로를 배우다보니 과학이 알기 쉽고 재미있다고들 해요.” 금속공예를 전공한 최현택 작가(28)가 액세서리 모양의 키트를 내보였는데 신기했다. 최씨는 “작품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에 더없이 멋진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간판을 따로 달지 않고 벽에 페인트로 상가 이름만 써놓은 골목길.

간판을 따로 달지 않고 벽에 페인트로 상가 이름만 써놓은 골목길.

‘을지 2-1’은 조소, 일러스트, 동양화 등 미술전공 교육자 8명이 창작과 전시도 하고 지역 주민과 공동체 생활을 꾸리는 사랑방이었다. 음악 공연은 물론이고 소외된 지역 아동들과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저기 보이는 적선가옥은 1930년대 지도에도 그대로 나와요. 여기 주춧돌도 엄청 오래된 것이고요.” 조소를 전공한 고대웅 작가(29)는 “재개발도 좋지만 과거와 소통하는 을지로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을지로라는 지명은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도성과 가까워 시전(市廛)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1960년대 들어 기계공구류를 비롯한 건축자재점이 생겼다. 1970년대에는 서울 종로구와 중구를 가로지르는 청계고가도로(5.6㎞)를 따라 공구, 조명, 목재, 타일도기, 페인트, 철물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서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경기 붐과 함께 도심 산업단지 교두보로 불야성을 이루던 을지로는 2000년대 재개발 논의와 함께 쇠퇴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소규모 상점들이 을지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길 건너 을지로3가 쪽으로 가자 도기와 타일류를 파는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을지로동 김주례 동장(58)은 “봄과 가을 이사철이면 엄청나게 붐비는데 모든 제품을 시중보다 40% 이상 싸게 살 수 있다”며 “수도꼭지를 바꾸러 왔다가 타일과 욕조에 조명과 가구까지 몽땅 사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동네”라고 말했다.

새하얗고 멋진 도기류가 눈에 띄었다. 세면대와 변기, 거울과 샤워기까지 진열대에는 사고 싶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아파트 30평대 목욕탕을 개조하는 데 얼마냐”고 물을 때마다 주인들은 “200만~25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10년 전 인근 아파트 상가에서 받은 견적이 500만~600만원이었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제품의 가격은 대형 할인점 절반 수준이었다.

다양한 전등을 전시해 놓은 조명기구 상가.

다양한 전등을 전시해 놓은 조명기구 상가.

조명거리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디자인과 품질은 고급 유럽산과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예술작품 같은 조명들이 점포마다 가득했다. 책상 위에 놓으면 딱 좋을 만한 4만2000원짜리 스탠드는 7000원이었다.

공구거리에는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수두룩했다. 집집마다 취급하는 품목이 1000개가 넘는데 잔디깎기와 청소기를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스타삘딩’이라는 간판 글씨가 유독 눈에 띄는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는 ‘없는 게 없는’ 마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1960~19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자석집, 아크릴, 명패, 배지 가게까지 가는 발걸음이 자꾸 멈춰 섰다. 상점들이 기와와 서까래를 이고 있는 것을 보면 예전엔 가정집이었을 것이다. 여인숙과 여관이 있는 골목에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단골로 나오는 집들도 여럿이다. 무심히 길바닥에 놓인 직사각형 바위는 돌을 쪼거나 구멍을 파고 다듬을 때 쓰던 정으로 친 흔적이 분명했다.

해가 뉘엿해질 무렵 노가리골목으로 향했다. 을지로는 골뱅이와 노가리집의 원조격이다. 매일 오후 6~7시 직장인들이 퇴근할 무렵이면 만선호프, 뮌헨호프, OB베어 등 맥줏집들이 골목에 10여개의 테이블을 내놓고 불을 밝힌다. 주문도 받지 않고 노가리와 생맥주를 사람 수대로 척척 내놓는다. 먹태처럼 생긴 크고 맛있는 노가리 한 마리가 1000원. 주머니가 넉넉지 않은 직장인들이 한잔하면서 하루의 노독(勞毒)을 푸는 곳이다.

유럽에 가면 장인 정신이 살아 있는 오래된 골목을 걷는 것만큼 재밌는 여행도 없다. 을지로가 유럽처럼 주목받는 명소가 될 수는 없을까. 을지로는 과거를 가슴에 안고 가는, 그런 동네다.

▶‘한잔’ 생각 직장인 붙잡는 맛집들

[서울, 마을을 읽다] (11) 중구 을지로동, 기계소리 야위었지만 “아직은 쟁쟁하다”는 가장들의 골목


서울 을지로동에는 평양냉면에 원조 중국음식까지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는 집들이 수두룩하다. 주민들이 꼽는 진짜 맛집은 어디일까.

‘전주집’(02-2279-1086)은 밑반찬으로 나오는 알싸한 김치만 봐도 단박에 맛집임을 알아챌 수 있다. 주메뉴는 두툼한 돼지고기를 콩나물, 파무침과 함께 불판에 구워 먹는 것. 얇게 썬 냉동목살구이조차 쫄깃쫄깃 맛있다. 1인분 기준으로 목삼겹 1만1000원, 생삼겹 1만2000원, 김치찌개 7000원.

‘만선호프’(02-2274-1040)는 다른 집과 달리 직접 손으로 노가리를 두들겨 패기로 유명하다. 맛은? 먹태처럼 부드럽고 고소하다. 3일간 숙성한 마늘을 듬뿍 얹은 마늘치킨은 달콤하면서도 상큼해 느끼함을 덜어준다. 생맥주는 잔을 비울 때까지 쏘는 맛이 살아 있다. 노가리 한 마리 1000원, 생맥주 500㏄ 3000원.

‘종로 빈대떡’(02-2279-7782)은 을지로의 보석 같은 집. 명절 때 어머니가 내주는 바로 그 전 맛이다. 감자와 메밀, 녹두를 기름지지 않게 얇게 부쳐내는데 특유의 맛과 향이 오래 남는다. 속알배기로 만든 배추전은 아는 사람만 주문하는 안주다. 해물전은 탱글한 오징어와 새우살이 쫄깃하고 고추전은 알싸하다. 각종 전류가 9000~1만1000원.

‘우일집’(02-2267-9948)은 소곱창과 칼국수로 유명하다. 테이블이 2~3개에 불과한 작은 식당이라 줄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도톰한 대창에 매콤한 배춧속, 야채초무침 등을 함께 먹으면 느끼함이 금방 사라진다. 곱창과 대창이 1인분에 1만8000원.

‘손맛집’(02-793-3995)은 5000원짜리 백반 집이다. 생선구이, 오징어볶음 등 반찬이 매일 다른데 집밥이 그리울 때 찾으면 좋다. 각종 반찬을 손님이 가져다 먹는 뷔페식이다. 생선구이 8000원, 오징어볶음, 청국장, 김치순두부는 각 6000원이다.

‘우화식당’(02-2277-4997)은 매운 코다리찜과 쇠고기전으로 명성을 얻은 집이다. 아삭아삭한 콩나물을 가득 얹은 매운 코다리찜이 일품. 코다리찜 1만1000원, 쇠고기전은 1만원이다.

‘안성집’(02-2278-4522)은 1957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60년 된 맛집. 소갈비와 돼지갈비가 인기 메뉴인데 육개장과 육개장칼국수, 갈비탕도 잘나간다. 1인분에 소갈비는 1만7000원, 돼지갈비는 7000원이다. 육개장과 갈비탕은 1만원.

‘장원 복활어회’(02-2273-0331)는 두툼한 활어는 물론이고 얼큰한 양념장이 일품인 회덮밥으로 유명하다. 쫄깃한 복껍질무침은 식전 입맛을 돋우기에 좋다. 생태탕은 양도 푸짐하다. 복매운탕 2만원, 복곤이 400g 1만5000원.

‘양미옥’(02-2275-8838)은 유명한 양대창, 곱창집이다. 을지로3가역 6번 출구로 나오면 간판이 바로 보이는데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먼저 알고 찾아온다. 1인분 기준으로 특양은 2만9000원, 대창 2만7000원, 곱창은 2만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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