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폭발’ 군인들 ‘국가배상’ 소송 못해···유신의 잔재

2015.08.12 16:23 입력 2015.08.12 20:58 수정

지난 4일 군사분계선(DMZ)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함지뢰가 폭발해 부사관 2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당시 수색 작전을 하던 김모 하사(23)는 오른쪽 발목을, 하모 하사(21)는 양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것은 무장한 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얘기입니다.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군사정전위를 열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군은 김 하사와 하 하사 보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현역 복무를 원하면 ‘상해후유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현재 부상 정도로 보면 김 하사는 약 6000만원, 하 하사는 1억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역을 원하면 김 하사는 보상금을 포함해 일시금으로 7000여만원, 하 하사는 1억1000여만원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투나 작전 등을 수행하다 다쳐 전역한 사람에게는 별도의 연금을 지급합니다.

‘지뢰폭발’ 군인들 ‘국가배상’ 소송 못해···유신의 잔재

받을 돈이 많다, 적다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들 부사관들이 평생을 지고 가야할 고통을 돈으로 치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의 지뢰 매설을 사전에 포착하지 못하는 등 군의 방어 태세가 도마에 오른 상황인데요. 만약 군 당국의 불법이나 과실이 드러나도, 김 하사와 하 하사는 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소송을 낼 수 없습니다. 다른 공무원은 가능하지만 군인과 경찰은 국가에 잘못을 물을 수 없습니다.

헌법 29조 2항을 보면,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은 전투·훈련 등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입어도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는 국가나 공공단체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이에 근거한 국가배상법 2조 1항도 ‘이중배상금지’를 규정합니다.

이런 제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생겼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중배상금지’를 할 독소 조항으로 꼽으며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군인과 경찰의 기본권·평등권을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군인과 경찰관은 업무 특성상 다른 공무원보다 상대적으로 재해 위험에 더 노출된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국가배상 소송을 금지한 법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 ‘유신’의 잔재

국가배상법 2조 1항은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이 전투·훈련 등 직무 집행 과정에서 전사·순직하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다른 법령에 따라 재해보상금·유족연금·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는 다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합니다. 군인이 훈련을 하다 숨지거나 다쳐도 보상만 받을 수 있을 뿐,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5년 베트남 파병을 결정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월남전에 참전해 전사하거나 다쳤는데요. 이들이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따르는 등 다른 군인의 직무상 불법행위나 과실로 숨지거나 다쳐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면 막대한 재원이 들어갈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1967년 3월3일 문제의 국가배상법 제2조를 공표해 4월3일부터 시행합니다.

‘베트남 파병’ 어머니와 면회 중인 파월 병사, 여의도 비행장, 1965 | 구와바라 시세이 <격동한국 50년>, 눈빛 제공

‘베트남 파병’ 어머니와 면회 중인 파월 병사, 여의도 비행장, 1965 | 구와바라 시세이 <격동한국 50년>, 눈빛 제공

이후 1971년 대법원은 국가배상법 2조의 위헌 여부를 판단합니다. 당시에는 헌법재판소가 없었기 때문에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것은 대법원 몫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군·경과 민간인 혹은 군경과 다른 공무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조항”이라며 위헌이라고 결정합니다. 대법관 16명 중 9명이 위헌, 7명이 합헌 의견을 냈습니다. 해당 법은 효력이 중지됐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격노했다고 합니다. 국가배상법 위헌 의견을 밝힌 대법관들은 연임에 실패합니다. 헌법학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62년 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를 담당한 뒤 처음으로 위헌 판결을 내린 사례”라며 “당시 대법관은 연임이 관례였는데 위헌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연임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배상법 2조가 위헌 결정이 나자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제정하며 ‘이중배상금지’ 조항을 아예 헌법으로 규정합니다. 헌법 29조입니다. 그리고 국가배상법을 개정해 ‘이중배상금지’ 조항을 되살립니다. 독소 조항으로 꼽히는 헌법 29조는 ‘유신 체제’가 남긴 것입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박근혜양이 유신헌법 제정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박근혜양이 유신헌법 제정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방법은 ‘개헌’

1988년 헌법재판소가 구성되고 헌법 29조와 국가배상법 2조 1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한 사례가 있습니다. 1995년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개별조항인 헌법조항을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헌법 개별규정의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의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01년 2월, 2005년 5월에도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헌법 29조의 효력이 유지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한 국가배상법 제2조 1항도 위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현재 헌법 29조와 국가배상법 2조 1항의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사건이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입니다. 군에 입대한 뒤 왼쪽 어깨가 탈골돼 전역한 남성이 국가와 자신을 치료한 군의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다른 법률에 근거한 보상금을 받았다는 이유(헌법 29조 및 국가배상법 2조에 근거)로 기각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성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기존 판례에 비춰 기각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방법은 사실상 개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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