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얼굴 만들기’의 진화···화장의 역사

2016.03.16 15:27 입력 2016.03.16 15:33 수정
장은교 기자

오늘은 어떤 화장을 해 볼까요. 소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분홍빛 볼 터치를 강조한 여리여리한 화장, 깨끗한 피부를 강조하면서 포인트를 주고 싶다면 입술만 붉게 물들이는 화장, “나 건드리지 마. 근데 좀 멋있지?”하는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다면 스모키 눈 화장 등. 화장기술과 화장품의 발달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매일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화장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처: (cc) Michel Ozimo at Wikimedia.org>

화장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처: (cc) Michel Ozimo at Wikimedia.org>

화장에 서툴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스마트폰만 열 수 있다면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전 세계의 많은 뷰티블로거들에게서 차근차근 화장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즘은 화장품 회사에서도 파워 뷰티블로거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쓴다죠. 남성들도 BB크림 정도는 피부를 위한 기초화장으로 애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인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화장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네안데르탈인도 화장을 했다?


인간은 언제부터 화장을 했을까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지금까지 나온 가장 오래된 ‘증거’는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Murcia) 지방에서 발견된 조개껍데기입니다. 조앙 질량(Joao Zilhao) 교수가 이끈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은 2010년 무르시아 유적지에서 발굴한 조개껍데기에서 화장품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찾아냈습니다. 조개껍데기에선 파운데이션처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노란 빛깔의 색소와 검은색 광물이 섞인 붉은색 파우더가 발굴되었답니다.

네안데르탈인도 화장을 했을까? 스페인 무르시아 지방의 조개껍데기에서 파운데이션처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파우더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도 화장을 했을까? 스페인 무르시아 지방의 조개껍데기에서 파운데이션처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파우더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화장을 했다는 최초의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조개껍데기에 화장용 색소를 담아두기도 하고 화장도구로도 이용했다고 합니다.

조개껍데기와 화장품의 발견은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의문점을 던졌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 멸종됐고, 때문에 현대의 인간보다는 덜 진화된 존재로 여겨져 왔죠. 자신을 꾸미기 위해 색소를 만들고 화장까지 했다면 과연 지능이 덜 발달한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요?

네안데르탈인이 화장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불을 사용했고 석기를 만들었으며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는 문화를 가졌다는 것과 함께 상당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됐습니다. 조앙 질량 교수와 연구팀도 “네안데르탈인이 화장을 했다는 것은 그들의 높은 사고능력 수준을 보여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쩌면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오랜 화장의 역사가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인간은 아주 오래오래전부터 자신을 치장하는 문화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최고의 미녀는 ‘화장발’이었을까


화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7500년 전 이집트에서 시작됩니다. 이집트 고대 무덤에서 발굴된 벽화에는 눈 화장을 짙게 한 남녀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눈 주위를 검은색이나 짙은 녹색으로 칠해 눈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콜(kohl)과 헤나, 적갈색 황토인 레드 오커(red ochre) 등을 화장 재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는 이집트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인 아케나톤의 부인이자 당대 최고의 미녀로 꼽혔다는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이 전시돼 있는데요. 진한 아이라인을 그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를린 박물관에 전시된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 <출처: (cc) http://flickr.com/photos/bittidjz/ at Wikimedia.org>

베를린 박물관에 전시된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 <출처: (cc) http://flickr.com/photos/bittidjz/ at Wikimedia.org>

이집트인들이 눈 화장을 한 것은 치장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 때문에 눈이 금세 건조해졌는데, 눈 화장이 적당히 눈을 자극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2010년 ‘분석 화학(Analytical Chemistry)’이라는 과학 저널에는 “이집트인들의 눈 화장은 질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는 논문이 실렸습니다.2)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팀은 아이라이너로 사용된 화장품에는 소금납(lead salts) 성분이 포함됐는데 소금납이 산화질소를 만들어내 면역력을 높여줬기 때문에 눈이 병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납성분은 인체에 유해할 수도 있지만 아주 소량을 사용해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를 봤다”고 밝혔습니다.

이집트 제18왕조의 6대 파라오인 투트모세 3세 때에도 주름을 치료하기 위해 유향과 모링가잎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눈 화장을 하면 신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믿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화장이 주술과 치료의 의미를 떠나 본격적인 미의 도구로 쓰인 것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BC 69~ BC 30) 때부터였습니다. 로마의 두 영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은 것으로 유명하죠. 1963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전설의 미녀로 꼽히는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아 눈부신 미모를 뽐냈습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년)>의 한 장면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년)>의 한 장면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면 영화 속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처럼 뱅헤어(앞머리를 일자로 짧게 자른 스타일)와 화려하고 진한 화장이 생각날 만큼, 클레오파트라는 지금까지도 매력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다음의 동전 속 여인을 보실까요.

클레오파트라의 동전

클레오파트라의 동전

매부리코를 가진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클레오파트라입니다. 당시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그려 만든 동전인데요. 우리가 상상했던 미인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클레오파트라는 민낯이 아름다운 여성은 아니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클레오파트라를 최고의 미녀로 만든 것은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화장술’이었다는 것이죠.

클레오파트라는 눈썹을 짙게 그리고 아이섀도우를 이용해 스모키 화장을 했으며 턱 선을 따라 얼굴 바깥쪽에는 짙은 음영을 주어 얼굴을 갸름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우유 목욕을 하고 알로에를 이용해 피부에 수분도 듬뿍 보충해 줬다고 합니다. 또 자신만의 향수도 사용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뛰어난 지략을 가진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남성들은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그녀의 스타일에 먼저 매료된 뒤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더 깊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클레오파트라는 지성과 미모를 모두 갖춘 지혜로운 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화장은 부의 상징


고대 그리스에선 피부를 하얗게 하는 화장을 즐겨 했습니다. 하얀 피부는 밖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계급이 낮을수록 땡볕에서 일하느라 피부가 검고, 상류층일수록 하얀 피부를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하얀 얼굴을 갖기 위해 백연광(white Lead)이라는 납성분을 얼굴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하얀 얼굴을 욕심내다 납중독에 걸려 단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화장품은 너무 비싸서 소수의 상류층들만 쓸 수 있었습니다. 조각상처럼 오똑한 콧날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강조하는 등 윤곽을 강조하는 화장을 즐겨 했습니다. 그리스 시대에 인기 있던 화장품 재료는 모두 천연물질이었습니다.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올리브 오일과 벌꿀을 발랐고, 목탄으로 눈썹 화장을 했습니다. 입술과 뺨을 붉게 하기 위해 레드 오커를 이용해 만든 립스틱을 발랐습니다.

로마 귀족 여성의 화장

로마 귀족 여성의 화장

로마인들도 화장을 즐겨 했습니다. 특히 귀족들 사이에선 누가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는지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로마의 귀족 여성들은 노예의 도움을 받아 몇 시간씩 화장을 하고 몸을 치장했다고 합니다. 얼굴 화장뿐 아니라 손톱에 매니큐어까지 발랐고 머리 장식도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귀족 남성들은 중국 등에서 들여온 값비싼 화장품을 여성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로마 여성들도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선호했는데 식물에서 추출한 붉은 색소를 이용해 입술과 뺨 화장을 했습니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였던 플라우투스(Plautus, BC 254~ BC 184)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은 소금을 치지 않은 음식과도 같다.”

화려하게 번성했던 화장 문화는 중세에 접어들면서 주춤해집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정숙하지 못한 행동이고 신이 주신 것을 꾸미고 감추는 것은 교의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왕의 창백한 얼굴에 감춰진 비밀


모든 것이 억압적이었던 중세시대가 지나고 유럽에선 르네상스 운동(14~16세기)이 일어났습니다. 화장 문화도 다시 화려하게 번성했습니다. 이 시절 가장 유명한 패션의 아이콘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였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여왕은 44년 동안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를 통치했습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붉은 머리색과 창백할 만큼 흰 피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당대 여성들에게 스타일의 롤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죠.

엘리자베스 여왕의 흰 피부에는 아픈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여왕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은 뒤 얼굴에 남은 흉터를 가리기 위해 납성분이 든 백연 가루를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왕의 얼굴은 점점 더 하얘졌고 납성분에 중독돼 파랗게 변해갔습니다. 말년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얼굴이 보기 싫어 궁전 안의 거울을 모두 없애라고 지시했다죠.

안타깝게도 당시 많은 여성들이 여왕처럼 흰 피부를 만들기 위해 백연 가루를 사용했고, 위험한 화장에 빠진 여성들이 단명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양귀비의 피부 관리, 게이샤의 붉은 화장


중국에선 기원전 3000년경부터 화장을 했습니다. 특히 손톱 화장을 보면 계급을 알 수 있었다고 하네요. 중국 귀족들은 금색과 은색으로 손톱을 칠했고 나중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을 즐겨 칠했습니다.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전쟁터에 나갈 때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손톱을 물들였답니다. 고무와 젤라틴, 계란 흰자, 밀랍 등이 손톱 꾸미기의 주재료로 쓰였습니다. 한국에서 꽤 인기가 있었던 봉선화도 손톱을 물들이는 좋은 재료였지요.

고대 농경사회의 중국인들은 자연재료를 이용해 화장을 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재료는 쌀가루였습니다. 쌀가루에 꿀을 넣어 팩으로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난초나 라일락 등의 천연 향을 가미해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화장법과 크게 다르지 않죠?

눈썹과 입술, 볼 화장도 즐겨 했습니다. 대석이라는 광물질을 벼루에 간 다음 물을 섞어 눈썹을 그렸습니다. 입술은 붉은색 안료에 기름을 섞어 만든 립스틱으로 붉게 물들였고, 볼 화장은 홍남화와 석류화 등의 꽃잎을 이용했습니다.

경국지색으로 불린 양귀비는 진한 화장보다는 깨끗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경국지색으로 불린 양귀비는 진한 화장보다는 깨끗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남조 송무제의 딸 수양공주(壽陽公主)는 매화 화장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음력 1월 7일 궁전의 정원에 누워 있던 공주의 얼굴 위로 붉은 매화 꽃잎들이 흩날려 떨어졌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죠. 수양공주는 그때부터 매화를 이용한 꾸미기를 시작했고 큰 유행이 됐다고 합니다.

당나라 시대 최고의 미녀로 ‘경국지색(나라를 기울게 할 만한 미모)’이라 불린 양귀비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통통한 몸매였다고 합니다. 양귀비는 진한 화장보다는 맑고 깨끗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양귀비는 살구씨 가루와 사향, 계란 흰자 등을 섞어 만든 ‘옥홍고(玉紅膏)’를 만들어 피부에 발랐고, 사과꽃과 배꽃, 복숭아꽃, 모과꽃, 배견화, 홍련화, 살구꽃 등으로 술을 담근 뒤 화장수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매일 전용 온천에서 목욕도 즐겼다고 하네요.

양귀비는 피부를 위해 특히 ‘리치’라는 과일을 즐겨 먹었는데, 당 현종은 양귀비가 살던 시안에서 2000리(약 785km) 이상 떨어진 광둥에서부터 리치를 실어 나르도록 시켰다고 합니다. 양귀비의 피부 미용법은 현대 화장품에도 많이 응용되고 있습니다.

일본도 고대부터 화장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적갈색 황토를 바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는 화장이 오래 지속됐습니다. 남성들도 화장을 했는데 전투에 나가기 전 머리를 정갈하게 빗고 눈썹을 짙게 그리며 투지를 다졌습니다.

아랫입술 가운데 부분만 물들인 견습 게이샤 <출처: (cc) Flickr user Joi at Wikimedia.org>

아랫입술 가운데 부분만 물들인 견습 게이샤 <출처: (cc) Flickr user Joi at Wikimedia.org>

일본 화장의 독특함을 볼 수 있는 것은 ‘게이샤 화장법’입니다. 게이샤들은 흰 분으로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눈 주위를 붉게 하며 입술에 빨간 꽃물을 들입니다. 목과 등에도 하얀 가루를 바르고 머리는 왁스를 이용해 둥글게 말아 올립니다.

게이샤는 입문 경력에 따라 할 수 있는 화장이 제한돼 있는데, 경력이 짧은 게이샤는 입술 화장을 할 때 아랫입술 가운데 부분만을 물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고참이 될수록 보다 자유롭게 화장을 할 수 있습니다. 얼굴을 더욱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치아를 검게 물들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일본 교토에는 지금도 게이샤들을 양성하는 곳이 있고 전통적인 게이샤 화장법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박가분부터 민낯 화장까지, 세계로 가는 K-Beauty


자, 이제 한국 화장의 역사 속으로 떠나 볼까요.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흰색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희고 윤택한 피부는 고귀한 신분을 상징했기 때문에 남성도 여성도 모두 백옥 같은 피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을 먹게 한 것은 ‘사람 같은 피부’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선 양 볼에 동그랗게 연지를 바른 여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백제는 피부 표현을 하얗고 연하게 하는 화장이 발달했고, 신라에서는 보다 ‘색깔 있는’ 화려한 화장이 인기였다고 합니다. 특히 신라에선 남성들도 화장을 했는데, 화랑(花郞)의 화장이 대표적입니다. 화랑들은 지식과 무예를 두루 갖춘 미소년들을 위주로 선발했는데 얼굴에 분을 바르고 구슬로 장식한 모자를 썼습니다.

화려한 문화예술이 만개했던 고려시대에는 처음으로 신분에 따라 화장법이 나뉘었습니다. 짙은 화장은 기생이 즐겨 했고, 신분이 높은 부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고 연한 화장을 즐겨 했습니다. 신분에 따른 화장법은 조선시대에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조선의 기생들은 화려한 색조화장을 즐겼지만 사대부 여인들은 최대한 본인의 얼굴 생김새를 바꾸지 않는 화장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이 “어찌 분칠한 것을 참 자색이라 할 수 있겠느냐? 옛사람의 시에 ‘분연지로 낯빛을 더럽힐까 봐 화장을 지우고서 임금을 뵙네’라 하였으니 앞으로 간택할 때는 분칠을 못하게 명하여 그 진위를 가리게 하라”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

신윤복의 <미인도>

조선의 대표 미인을 알 수 있는 단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볼까요. 18세기에 그려진 미인도는 신윤복 최고의 작품으로 꼽힙니다. 정갈하게 땋아 올린 머리에 작고 갸름한 얼굴, 희고 고운 피부에 꽃잎을 머금은 듯 살짝 붉은 입술, 귀밑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잔머리가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화장 문화의 발전은 화장품의 발전과 닿아 있습니다. 조선 말기 명성황후는 러시아제 화장품을 즐겨 썼다고 합니다. 1915년에는 ‘박가분(朴家粉)’이라는 화장품이 처음으로 만들어집니다. 1918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으로 등록됐습니다.

한국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가분을 처음 만든 사람은 두산그룹 창업자인 박승직 회장의 부인 정정숙 여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가분은 모방상품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납성분이 들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1937년 폐업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등 유럽 여성들이 백연 가루를 얼굴에 바르다 납중독에 걸린 것과 비교가 되죠?

한국전쟁 이후 한국 여성들의 화장은 서양 미인들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평평한 얼굴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이고 싶어 했죠. 홑꺼풀의 눈은 쌍꺼풀이 있는 것처럼 크게, 콧날도 더욱 오똑하고 입술은 도톰하게 보이는 화장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른 얼굴’을 만들기 위해선 화장품의 도움이 필요했겠죠?

한국전쟁 이후 여성들은 서구적인 얼굴로 보이기 위해 입체적인 화장을 선호했다.

한국전쟁 이후 여성들은 서구적인 얼굴로 보이기 위해 입체적인 화장을 선호했다.

1960년대 말부턴 북을 치고 돌아다니며 크림을 파는 ‘동동 구리무’ 장수들이 나타났습니다. 1970년대에는 좀 더 발전한 방문화장품 판매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근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쌍문동 태티서’ 3명이 방문판매원에게서 화장품을 사고 피부 마사지를 받는 장면이 나왔죠.

진한 색조화장 열풍은 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습니다. 특히 배우와 가수 등 여성 연예인들이 최신 화장 문화를 주도하기 시작했죠.

90년대 후반부터는 청순한 화장, 자연스러운 화장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민낯’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화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티 안 나는 화장이 최근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2016년 현재 화장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들 화장품 화보를 보면 자연스러운 화장이 대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K-Beauty’라 불리는 한국 여성들의 화장법과 화장품은 새로운 한류상품으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청순미를 강조하는 자연스러운 화장이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다.

청순미를 강조하는 자연스러운 화장이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다.

꾸미고 가리는 화장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똑똑한 화장으로, 화장의 역사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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