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사 배이상헌 "나의 수업은 스쿨미투일 수 없다"

2019.11.23 17:37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는 남녀의 성 역할과 사회상황이 뒤바뀐 ‘가상의 현실’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미러링’, 즉 뒤집어 보여주기를 11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표현한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은 직장에 다니는 아내 대신 육아와 가사를 전담한다. 여성들은 유모차를 끌고 가는 그에게 ‘예쁜 아빠’라고 칭찬한다. 이 말조차 칭찬을 가장한 ‘캣콜링(언어적 성폭력, 성희롱)’이다.

거리의 부랑여성은 “나 너무 외롭다”며 희롱한다. 반발하는 그를 향해 부랑인은 “내 눈앞에서 파란 반바지를 입고 살랑거리는 주제에”라며 욕을 퍼붓는다. 여성들은 골목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소변을 본다. 반바지를 입은 남자 주인공을 향해 “엉덩이가 섹시한데…”라고 말한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러 가는 순간부터 영화가 마무리될 때까지 여성들은 그에게 반복적으로 ‘캣콜링’을 한다. 그는 여성들에 대항하다 성폭행을 당한다. 경찰은 그러나 대수롭지 않아 한다. 되레 “대낮에 목격자도 없었지 않느냐”고 면박을 준다. 아내조차 “네 옷 입은 꼴을 봐라. 반팔 티셔츠에 슬리퍼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반바지까지 입지 않았느냐”고 그를 비난한다.

배이상헌 교사가 11월 19일 광주의 한 찻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류인하 기자

배이상헌 교사가 11월 19일 광주의 한 찻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류인하 기자

배이상헌 교사(56)는 이 영화를 도덕 수업 양성평등 교과 시간에 틀어 학생들에게 보여줬다는 이유 등으로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수업배제 및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그는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직위해제 처분 취소청구를 했으나 교육부는 지난 11월 14일 청구를 기각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왜 직위해제 처분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누군가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했다.

그는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교사다. 또 광주지역에서 양성평등 교육을 주도적으로 끌어온 인물이다. 배이상헌의 ‘배’는 어머니의 성(姓)이다. 1999년 10월부터 부모성 같이 쓰기를 하며 남성으로서는 광주지역에서 처음으로 ‘양성평등 지지 커밍아웃(그의 표현을 빌리자면)’을 했다. 결혼식 청첩장에도 그는 이상헌이 아닌 ‘배이상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장휘국 광주교육감의 3선 반대운동을 주도적으로 벌였다. 누군가는 그래서 광주교육청에 밉보인 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거기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정황상 ‘잘 짜인 각본’이 있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지난 11월 19일 광주 시내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비위 관련 민원이 제기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고 들었다.

“올해 1월 23일이었다. 아는 선생님을 통해 한 학부모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1번부터 5번까지 잘 정리된 나에 대한 비위 내용이었다. 내가 수업시간에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줘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발언이다. 내가 수업시간에 ‘위안부는 몸 파는 여자’라고 했다는 내용 하나와 ‘남자가 여자를 꼬실 때 안 되면 강간하면 된다’, 아이들에게 ‘나랑 섹스할래?’라고 발언했다는 것 등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30년의 교직생활 동안 나를 알아온 사람들은 내가 어떠한 생각과 신념을 갖고 살아왔는지 안다. 그래서 제보를 전달해준 선생님께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말을 했던 당시가 떠올랐다.”

-실제로 그런 발언을 했다는 말인가.

“2018년 2학기 자유학기제 주제활동반에서 ‘여성인권’ 수업을 할 무렵 한 대학교수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위안부와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나는 그 교수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이 아닌, 그 교수의 발언을 마치 내가 한 말처럼 짜깁기돼 있었다. 나머지 것들 역시 해명이 어렵지 않았다. 경찰 조사과정에서도 전부 소명했다.”

-광주교육청으로 익명의 신고가 들어간 것은 6월 말인데 1월부터 이런 제보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러니 잘 준비된 신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6월 25일에 교육청으로 나에 대한 민원이 들어갔고, 내용은 내가 이미 1월에 본 제보내용과 거의 동일했다. 바로 다음 날인 6월 26일 광주시교육청 성인식 개선팀 장학사와 상담사들이 찾아와 1학년 5개 반을 대상으로 설문 전수조사를 했다. 그런데 당시 의미 있는 설문을 건지지 못한 것 같다. 7월 8일 2학년 4개 반과 3학년 3개 반을 대상으로 또다시 설문 전수조사를 벌였다. 3학년에서는 아무런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고, 2학년 4개 반 총 120명 학생 중 11명으로부터 민원내용과 유사한 설문 답변이 나왔다. 그 내용이 내가 이미 1월 말에 봤던 그 제보내용과 거의 동일했다. 여기에 내가 화면으로 키스하는 장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는 것이 추가됐다.”

-키스하는 장면을 보여줬다는 게 무슨 말인가.

“성윤리 단원의 첫 소단원인 ‘내가 생각하는 성과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수업하기 위해 만들어간 PPT 화면 속 그림자료다. 클림트의 ‘키스’와 뭉크의 ‘키스’를 말한다. 신고학생은 이 두 그림을 보고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설문에 답했다. 나는 이 사실을 경찰조사를 받으며 처음 알았다. 수사관조차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이거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이잖아요’라고 했다. 신고된 발언과 관련된 소명은 이미 학교의 성고충위원회 등에서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경찰관은 내가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보여준 영화 <억압받는 다수>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수사관 여러 명이 함께 봤는데 호불호가 갈리더라며 ‘법정에서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영화 <억압받는 다수(2010)>의 한 장면. 자신을 희롱하는 여성들을 향해 반발하는 남자주인공을 여성들이 골목으로 끌고 가 협박하고, 성폭행을 한다. / 영화 장면 캡처

영화 <억압받는 다수(2010)>의 한 장면. 자신을 희롱하는 여성들을 향해 반발하는 남자주인공을 여성들이 골목으로 끌고 가 협박하고, 성폭행을 한다. / 영화 장면 캡처

-결국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이 송치됐다. 언제 송치됐나.

“9월 24일에 송치됐다. 벌써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아직까지 검찰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다.”

배이상헌 교사는 자신에 대한 제보를 사전에 알았던 날로부터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기까지 모든 날짜를 세세히 기억했다.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반추한 결과로 보였다. 그는 광주교육청이 너무 급하게 일처리를 한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실제로 2학년 학생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뤄지고, 그에게 직위해제 처분이 내려지기까지 만 2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는 선생님에 대해 ‘문제없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광주교육청이 경찰에 고발하고, 경찰이 고발사건 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교육청이 직위해제한 것인가.

“설문조사를 한 날짜가 7월 8일이다. 2·3학년 설문 전수조사가 끝난 시점이 5교시 끝무렵이니 교육청 담당자가 설문지를 들고 복귀하면 오후 3~4시쯤 됐을 것이다. 학교장을 통해 나에 대한 분리조치(수업배제) 통보가 내려진 것은 바로 다음 날인 7월 9일 오후 2~3시쯤이었다. 120명의 학생 중 11명이 그 같은 답변을 써냈다면, 나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교육청 도덕교과 담당이나 도덕교과 전문가에게 해당수업에 대해 자문을 하는 등의 절차가 있었어야 한다. 또 나머지 109명 중 일부에게라도 물어봤어야 한다. 전부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니까. 그런데 모든 절차가 생략됐다. 설문조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수업배제 처분을 내렸다. 담당 장학관이 광주지역 기자들에게 ‘여성단체 등으로부터 의견을 들어 처리했다’고 말했는데 전부 거짓말이다.”

-당시 수업 내용이 궁금하다.

“(교과서를 펼쳐보이며) <억압받는 다수> 영화를 소개한 것은 3단원 3파트 ‘양성평등’에서다.”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 상황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고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대중매체에서 나타나는 성차별 요소를 찾아서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는 ‘양성평등’을 설명하는 영상자료로 활용된 셈이다.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상자료를 활용한 것인가.

“우리 도덕교사들의 고민은 아이들 역시 성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쯤은 다 아는데 어떤 것이 성차별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남학생이 느끼는 것과 여학생이 느끼는 점이 다르다. 무엇이 성차별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학습의 깊이를 좌우한다. 일반 교사들조차 양성평등과 성평등의 의미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 영상을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했다. 막연히 우리가 인식하는 사회적 젠더 체계에 의문을 품도록 의도하는 것이다.”

-수업의 일환이라 해도 불편한 학생도 분명 있을 것이다.

“도덕수업은 불편함으로 가는 것까지 목표로 삼아야 한다. 반복적으로 각종 불편함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책임지는 학습을 하도록 하는 것이 도덕이 가르칠 수 있는 내면적 훈련이다. 영화를 보고 ‘선생님 저는 이 영화가 불편해요’라고 질문하면 교사는 ‘왜 불편하지? 어떤 지점이 불편한지 토론해보자’로 나아가야 한다. 서로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업은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선생님은 검찰의 기소여부를 기다리게 됐다.

“처음 수업배제 및 직위해제 처분이 내려졌을 때조차 나는 어떠한 행정징계도 상상하지 못했다(직위해제는 행정징계가 아님). 주위·경고·견책 정도의 경징계로 마무리하자고 한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나. 경고받을 각오를 하고 수업을 하는 교사가 어디에 있나. 통상의 수업을 하는데 주의·견책·감봉 등을 각오하고 수업하는 교사가 어디에 있나.”

-교육청은 이 영화를 어떻게 판단한 것일까.

“퇴직 교사들로 구성된 ‘은빛참교사회’가 이 일로 장휘국 교육감을 방문했다. 그때 장 교육감이 선배 교사들에게 내가 ‘더러운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고 한다. 방문을 마치고 당시 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나에게 선배 교사가 오셔서 ‘자네가 더러운 걸 보여줬다 하대’라고 하셨다. 심지어 광주지역 교사들이 몰려가 교육청 정책국장 및 민주시민교육과장과 대화를 할 때 정책국장이 참석자들에게 내가 아이들에게 ‘야동’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녹음이 돼 있다. 그런데 이후 말을 두 차례 바꾼다. 한 번은 ‘19금 영상’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발달단계에 부적합한 것’이라고 표현을 바꾼다.”

-발달단계에 부적합한 것을 보여준 정도라면 기소사유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시 그 말을 들은 항의방문단이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정책국장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대답이 막히면 그들에게 ‘더 있어요’라고 말한다. 뭐가 더 있나.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확인한 것 이외에 뭐가 더 있다는 말인가. ‘더 있다’는 비겁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그래 뭔가가 더 있으니까 직위해제를 했겠지’라고 의심을 품는다. 그런데 그 말은 곧 나의 지난 30년 교직생활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스쿨미투’가 아니다. 시교육청의 행정폭력이 핵심이다.”

한편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11월 21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교육부 매뉴얼에 따라 성 비위 사안 신고가 접수되면 교사에 대한 분리조치 후 소명절차를 밟는데 배이상헌 선생님은 분리조치를 거부하고 수업을 강행했고, 2차 분리조치 통보도 거부했다”면서 “그 사이 경찰의 수사개시 통보가 와 절차에 따라 직위해제가 이뤄져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신고한 학생이 11명이라는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11명이 아닌 30명 이상 다수의 학생이 선생님의 수업영상 및 수업과정에서의 발언에 대해 혐오감과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말하는 등 정서적 학대가 있다고 보고 종합적 판단을 거쳐 고발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