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있는 국가에 돌을 던진 '배드 파더스'

2020.01.19 09:08 입력 2020.01.19 09:09 수정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지연된 정의를 앞당기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는 없다.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이다. 현실적으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하더라도 법을 따라야지 주먹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법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월 14일 경기 수원지방법원 204호 형사대법정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법정의 문이 열리기 한 시간 전부터 법원 안팎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들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Bad Fathers)’ 사이트 대표 구본창씨(57)의 재판을 방청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홀로 아이를 기르면서 이혼한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이기도 했다.

‘배드파더스’의 탄생은 법의 무능을 상징한다. 자녀의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에게 법은 잔인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법원은 이혼 과정에서 자녀를 데려가지 않는 부모 한쪽에 양육비 지급 명령을 함께 내린다. 그러나 판결문은 ‘버티는 자’에게는 한없이 무기력하다.

2019년 2월 14일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양육비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을 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019년 2월 14일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양육비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을 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버티는 자’에게는 무기력한 법

“양육비 지급 판결문 또는 조정조서, 양육비지급조서(협의 이혼 시)가 있어도 전 배우자가 돈을 안 주고 버티면 정말 종잇조각이에요. 이혼한 이후 단 한 번도 양육비를 주지 않고 연락도 끊어버린 남편을 상대로 법원에 이행명령신청을 해도 또 의미 없는 종이 한 장만 더 나오는 거예요. 안 주고 버티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판결문을 받아본들 ‘재산이 전혀 없다, 실직상태라 돈이 없다’고 하면 한 푼도 받아낼 수가 없어요. 분명히 이혼 전에는 있던 재산들이 양육비 청구소송을 하면 다 사라져버려요. 그런데 그것도 법원이 알아서 전 남편이 재산을 숨겼는지, 어디로 빼돌렸는지를 알아봐 줄 수 없대요. 그러면 또 그 재산을 어디에다 숨겼는지 찾기 위해 소송을 해야 해요. 3~4년은 금방 가요. 소송하느라 10년도 금방 지나가요. 양육비를 안 주면 30일까지 감치(가둬둠)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감치명령을 받아내도 소용없어요. 경찰은 전 남편의 주민등록상 기재된 주소지로만 찾아가요. 경찰이 가는 것도 의무가 아니에요. 내가 경찰에 ‘지금 전 남편이 집에 있다. 와 달라’고 전화하잖아요? 그렇게 경찰이 출동해도 그쪽에서 전 남편을 방 안에 숨기고 문을 안 열어주면 그만이에요. 경찰이 강제로 들어갈 방법이 없어요. 감치명령이 떨어져도 이리저리 피해다니면 그만이에요. 그게 지금 우리 법이에요.”(ㄱ씨·51·이혼 21년차)

“교회 장로를 하면서 기부금 내는 거 뻔히 알고 있고, 새 차도 뽑은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양육비를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해요. 심지어 연락까지 끊어요. 우리 아이가 주민등록초본을 떼보면 자기 아빠 집주소를 알 수 있대요. 아이를 시켜서 초본을 떼게 해 집을 찾아내니까 전 남편이 애한테 전화해서 ‘왜 주소를 알려줬느냐. 나는 너를 내 자식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해요. 애들 데리고 전 남편 집 앞에서 시위하고, ‘나오라’고 집 문을 두드리면 경찰에 가택침입으로 신고해버려요. 출동한 경찰이 저 잡아가려고 해서 ‘여기 그 사람 애들도 데려왔어요. 자기 아빠 보러온 거잖아요’라고 해서 경찰서에 안 간 적도 있어요. 왜 내가 판결로 주라고 한 양육비를 이렇게 미친X처럼 쫓아다니며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거냐고요. 왜 정당하게 제가 아이들을 기르며 받아야 할 양육비를 이렇게 추잡스럽게 달라고 해야 하냐고요. 누가 이렇게 살고 싶겠냐고요.”(ㄴ씨·47·이혼 20년차)

법정 밖에는 저마다 절박한 사정을 갖고 있는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로 가득했다. 수원지법 신청사의 형사대법정 방청석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서서 재판을 보거나 법정 밖에서 판결을 기다렸다.

이날 피고인석에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대표 구본창씨와 이 사이트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전 부인의 신상정보를 제공하고, 사이트에 올라온 신상정보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비난 글과 함께 게시한 ㄷ씨(34) 등 2명이 앉았다. 그 양옆과 뒤로 10명의 변호사가 둘러앉았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상 명예훼손’. 즉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적용된 혐의였다.

법정 밖 절박한 사연의 피해자들

우리 법은 인터넷에 올린 정보가 설령 사실이더라도 개인의 명예훼손으로 입은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하면 유포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투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고소당하는 경우의 상당수가 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비록 비양육자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사적인 영역’에 해당하고,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사적 이익’을 위한 행위이므로 공공성이 없고, 비난의 목적 역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즉 양육비 문제는 자녀를 둔 결혼가정의 파탄으로 인해 파생된 ‘개인 간의 문제’일 뿐 공적인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 변호인단은 양육비 지급은 아이의 생존권 문제이자 국가적 문제라고 반박했다. “법대로 하라”는 말 뒤에 숨어 방치한 사이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예가 아동의 생존권보다 중요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저는 남편의 가정폭력 피해자였습니다. 18개월 된 딸아이와 살아남기 위해 이혼을 택했고, 3년의 소송 끝에 위자료 3000만원, 양육비 매달 6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2012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전 남편은 단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아이를 떼어놓고 다닐 수 없어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을 출근했습니다. 어린이집 행사가 있는 날이면 아이와 원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하원 시간을 맞출 수 없어 결국 비정규직이 됐고, 수입도 반 토막이 났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됐을 때 처음으로 아이 아빠에게 어렵게 연락해 양육비를 달라고 했습니다. 전 남편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아이를 데리고 와서 무릎 꿇고 구걸하면 생각해볼게’라고 했습니다. ‘이깟 종이(판결문)는 필요없다’고도 했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서도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지만 양육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미지급 양육비 4500만원을 10개월로 분할해 매달 450만원씩 주라는 이행명령을 받았지만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8차례 시도했지만 이행관리원조차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 했다’며 종료 통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배드파더스에 신상을 올리고, 전 남편이 일하는 가게 앞에서 다 함께 시위를 벌이니 2019년 6월부터 매달 10만원씩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하지 않으면 지급할 생각을 안 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2020년 1월 14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청사로 들어가는 구본창씨. / 권도현 기자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2020년 1월 14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청사로 들어가는 구본창씨. / 권도현 기자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ㄹ씨는 “그들이 죄의식 없이 살 동안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이자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로, 피해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도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개인 간의 ‘채권-채무 관계’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2014년에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15년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처음으로 개원했다. 그러나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한 양육비 지급비율마저도 3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10명 중 7명은 여전히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여성가족부가 2019년 조사한 한 부모 양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를 혼자 키우는 한 부모 10명 중 8명이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실제 ‘다른 사람들도 주지 않는데, 나만 주면 손해’라는 생각도 한다.

미지급 피해자 증언에 방청석은 울음

양소영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해자들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피고인을 처벌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일까요. 만약 오늘 피고인을 처벌한다면 그동안 숨죽이며 살아온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피고인을 명예훼손으로 추가 고소할 겁니다. 민사상 위자료 청구까지 하고 달려들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들이 피고인을 처벌해서 얻어지는 공익이 과연 공익일까요. (중략) 이 사건은 국가가 부담해야 할 짐을 지지 않아 부득이 피고인이 지게 된 것입니다. 피고인은 고소인(양육비 미지급자)들을 비방하기 위해 사이트 운영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이건 국가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해야 하는 일,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아 부득이하게 나서게 된 것입니다.”

재판은 자정을 넘긴 1월 15일 오전 0시 43분 종료됐다. 예비 배심원 1명을 제외한 7명의 배심원은 전원 만장일치로 무죄 결정을 내렸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창열 부장판사)는 배심원의 평의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배드파더스는 오늘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를 찾아 일을 하고 있다. 재판이 있던 날까지 해결된 양육비 지급 해결건수는 113건. 이틀이 지난 1월 16일 현재 2건이 추가된 115건의 양육비 미지급 건이 해결됐다. 그들은 오늘도 싸우고 있다.

배드 파더스 무죄 이끈 12인의 변호인단


‘배드파더스’ 재판에는 변호인단 구성만 놓고 보자면 대기업 사건 못지않은 초호화 변호인들이 집결했다. 무려 12명의 변호사가 이들을 변호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법무법인 숭인의 양소영 변호사(49·사법연수원 30기)와 이은영 변호사(38·41기)가 이 사건을 맡기로 결정하면서부터였다. 더 많은 변호사가 모여 이 사건을 함께 맡아줬으면 하는 기대로 재단법인 동천에 도움을 요청했다. 3명의 변호사가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법조계에서도 미약하지만 많은 여성 법조인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였다. 여성변호사회에서도 이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비록 여성변호사회를 대표하지는 않았지만 여성변호사회 소속 최희정·홍지혜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모인 변호사가 7명이었다.

평소 ‘사실적시 명예훼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가 합류한 것은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손 변호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9년 2월 ‘배드파더스’ 사이트 접속차단(시정요구)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힘을 발휘했다. 그 결과 방통위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 개인의 명예훼손도 중요하지만, 신상공개로 인한 공익성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리며 사이트를 차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법무법인 지평의 사단법인 두루의 이상현 변호사를 비롯해 3명의 변호사도 평소의 공익소송 경험을 살려 이들을 도왔다. 이렇게 모인 변호사가 12명에 달했다(당초 13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1명은 참여하지 않았다).

배드 파더스 국민참여재판이 마무리된 2020년 1월 15일 구본창 대표와 변호인단,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이 법정 밖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류인하 기자

배드 파더스 국민참여재판이 마무리된 2020년 1월 15일 구본창 대표와 변호인단,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이 법정 밖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류인하 기자

나름 ‘몸값이 비싸고’ 각자의 소속도 다른 변호사들은 하나의 목표로 뭉쳤다. 이들은 재판이 없는 주말이나 평일 새벽, 휴일마다 만나 회의를 거듭했다. 사건의 쟁점 정리부터 어떤 식으로 변론을 할지, 각자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지 등을 정해 반복 연습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건인 ‘공익목적’, ‘정당행위’를 비롯해 공소권 남용까지 각자가 분야를 나눠 자료조사를 벌였다. 또 법정에서 주장할 내용을 의논하고, 3차례에 걸쳐 의견서를 작성했다. 맡은 과제가 마무리되면 다시 모여 회의를 했다. 그렇게 변호사 전원이 함께 모인 횟수만 10번에 달했다. 재판을 앞두고는 한 달간 주말마다 집중적으로 모였다. 국민참여재판이라는 무대 위에서 배심원단을 설득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만들어 각자가 역할 분담을 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이은영 변호사는 “모든 변호사가 재판 기일을 앞두고는 정말 이 재판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는 배심원단 전원일치 무죄였다. 비록 구본창 대표와 함께 기소된 ㄱ씨가 개인 SNS에 비방글을 올린 부분은 벌금 50만원이라는 일부 유죄판결이 내려졌지만 이마저도 변호인단이 ‘예상했던 결과’였다. 일부 변호사들은 구본창 대표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들의 무료변론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늦은 밤까지 남아 있던 많은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은 10인(2명은 법정 출석만 안 함)의 변호인단을 향해 감사의 인사와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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