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세에 서울대 석사 학위 받은 이옥인씨 “때 놓친 공부, 늦은 만큼 원없이”

2020.02.02 21:14

어려운 집안 형편 탓 상고에 진학…방송대 다니며 서울대 수업 청강

고교 은사님처럼 80세까지 연구

지역 사회에서 역사강의 하고파

이옥인씨는 결혼, 육아, 간병으로 20~30대를 보냈다. 2004년 방통대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뒤 서울대 학부 강의 청강 등을 병행하며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는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읽고 공부하는 꿈을 이루는 중”이라고 했다. 탁지영 기자

이옥인씨는 결혼, 육아, 간병으로 20~30대를 보냈다. 2004년 방통대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뒤 서울대 학부 강의 청강 등을 병행하며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는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읽고 공부하는 꿈을 이루는 중”이라고 했다. 탁지영 기자

“책으로 둘러싸인 내 방에서 책 읽고 공부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 꿈을 간직하다 40년 넘어서 이루는 중이죠.” 이옥인씨(59)는 이번달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는다. 2014년 석사 과정에 들어간 지 6년 만이다. 3월부턴 같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한다. “이번 학위 수여자 중에 제가 가장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나이가 많다’고 조명받고 싶진 않아요.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게 행복할 뿐이에요.” ‘공부가 취미’라는 이씨를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만났다.

이씨는 중학생 때부터 수업이 끝나면 학교 도서관이 문 닫을 때까지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를 좋아했다. 공부도 곧잘 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부모는 남동생을 대학 보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아버지 뜻에 따라 서울여상에 진학했다. 공부는 잘하지만 경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들어가던 학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선 바로 은행에 취직했다. 이후 결혼과 육아, 부모 간병으로 20~30대를 보냈다. 2004년 한국방송통신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공부는 잊고 살았다.

이씨는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해 매일 오전 6시 일어나 2시간씩 강의를 들었다. 시험 범위와 상관없이 업로드된 강의를 전부 듣고 책도 다 읽었다. 첫 학기 성적표엔 학점 4.3 만점에 4.28이라는 성적이 찍혔다. “공부를 잘하는구나 생각했죠. 이렇게 공부하는 게 하나도 싫지 않은 거예요.” 이씨는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협지 보는 걸 좋아했던 이씨는 자연스레 중국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 “무협지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이 대부분 명나라거든요. 황제나 지역 이름에 익숙했죠.” 지금도 대학원에서 명·청사를 연구한다.

‘대학원에 가려면 종합대학 수업을 청강하라’는 조언을 듣고 이씨는 2006년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대를 찾았다. 동양사학과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검색해 무작정 첫 수업에 들어가 담당 교수에게 청강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절당할까 걱정도 했지만 교수들은 한 번도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씨는 8년 동안 방송대 수업을 들으면서 동양사학과 학부 수업도 전부 청강했다.

“대학원 입학하고 네 학기 등록금 1500만원을 엄마한테 달라고 했어요.” 이씨는 이 경험을 공부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기억으로 꼽았다. 남동생에게 밀려 대학에 가지 못한 이씨는 부모에겐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부모님에게 ‘딸이 대학을 갔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등록금 내주고 ‘시험은 봤니’ ‘성적은 나왔니’라면서 학부모 노릇을 하시더라고요. 그게 하고 싶었던 거죠.”

치매 때문에 기억이 온전치 않은 어머니는 이씨를 보면 “너 교수지?” 하고 묻는다. “딸이 교수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가 치매 상태에선 이뤄진 거예요. 이 말 들으면 ‘그때 1500만원 받길 잘했다’ 생각이 들죠. 우리 어머니한테 한 효도라고 생각해요.”

80세까지 계속 역사를 연구하는 게 이씨의 목표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 올해 팔순 기념으로 문집을 제작하세요. 저도 그분처럼 80이 됐을 때 역사를 공부하고 있을 거예요. 65살이 넘으면 지역 커뮤니티에 ‘쉽게 풀어주는 역사’ 강의를 하나 내고 싶기도 해요. 그러려면 몸을 정말 열심히 갈고닦아야겠네요.” 이씨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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