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과 사생활, 같이 갈 수 있다

2020.05.09 20:22
이하늬 기자

코로나 방역 관련 일러스트 / 김상민

코로나 방역 관련 일러스트 / 김상민

‘투명한 정보공개’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이 빠르게 안정기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정보까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게이’클럽을 방문했다는 것도 불필요한 정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방역이 우선이냐, 사생활 보호가 우선이냐’라는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방역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지금은 확진자의 동선뿐 아니라 성별과 나이까지 공개되고 있는데,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해도 방역에는 무리가 없다.

방역에 필요한 정보는 장소와 시간이다. 따라서 특정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방식이 주의해야 할 장소, 시간만 공개하면 된다. 오늘 다섯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면 이들의 동선을 각각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다녀간 장소와 시간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식이다.

백재중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녹색병원 부원장)는 “사이트를 하나 만들어서 시간과 장소만 공개하면 된다.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정보를 업데이트 하고 일정 기간 후에 폐기하면 된다”며 “사생활 침해가 덜할 뿐 아니라 정보를 얻는 입장에서도 이 방식이 더 유용하다. 지금은 지방자치단체마다 공개 방식과 범위, 다 제 각각이다”라고 말했다.

GPS 아닌 블루투스로 추적 가능
해외에서도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방역을 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과 더불어 초기 방역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를 정부는 코로나19 초기부터 ‘트레이스 투게더’(TraceTogether)라는 추적 앱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다만 앱의 작동 방식이 중국이나 한국과는 다르다. 중국과 한국은 GPS를 사용해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반면 이 앱은 블루투스를 통해 사용자 간 ‘근접성’을 추적한다. 이는 휴대전화가 보유한 코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휴대전화의 코드가 있고 블루투스가 있다. 이때 블루투스는 코드를 연결해주는 실 혹은 신호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블루투스를 켜고 일정 거리 이내로 들어가면 각각의 휴대전화는 블루투스를 통해 서로 코드를 교환한다. 이렇게 교환된 코드는 암호화된 다음 서버에 저장된다.

확진자가 추적 앱에 자신이 감염됐다는 사실을 입력하면, 확진자의 코드가 저장된 다른 휴대전화들에 메시지가 전송된다. 당신이 과거에 접촉했던 사람 중에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다. 이때 사용자의 신상은 물론이고 동선도 공개되지 않는다. 구글과 애플이 손잡고 개발하고 있는 앱도 이와 같은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의 방역이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익숙해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실제 우리는 익숙한 지금의 방식이 어떤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어모씨(32)는 “한국과 같은 방식의 추적 앱을 도입한다고 하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거부감이 클 것 같다”며 “아무리 익명이고 공중보건이 목적이라 해도 정부기관이 개인을 추적한다는 자체가 소름끼친다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독일 튀빙겐에 거주하는 법대생 리한드로스(25·Leandros Lackerschmidis)도 “한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상당히 잘 처리해왔다고 본다”면서도 “독일은 한국과는 달리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관련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익명권을 지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공고하다”라고 말했다. 독일은 한국과 더불어 성공적인 방역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천안문 광장 앞의 cctv / 게티이미지

중국 천안문 광장 앞의 cctv / 게티이미지

10분 만에 동선 모두 파악 “소름끼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대표는 “지금은 국민들이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했기에 CCTV·신용카드·통신내역 등까지 동의했지만, 이는 사실상 어마어마한 감시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 국토교통부는 휴대전화 위치 정보와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 빅데이터를 취합해 확진자의 동선을 10분 내 도출해내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오병일 대표는 이어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정부는 해당 시스템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만든 걸 다시 만드는 건 매우 쉽다”며 “그 점에서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백재중 이사 역시 “지금은 코로나 때문이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다른 이유로 이 시스템이 다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에서는 코로나19를 틈 타 정부의 감시망이 더 촘촘해지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먼저 CCTV의 추가 설치다. 4월 28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중국의 몇 몇 지방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겠다는 이유로 집 밖은 물론 집 내부까지 촬영하는 CCTV를 설치했다.

또 다른 논란은 휴대전화에 깔리는 건강 QR코드다. 이는 코로나19와 관련해 개인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전자서류다. 건강 상태는 초록(양호)·노랑(주의)·빨강(확진)으로 나타난다. 코드는 진료기록·위치정보·통신내역·결제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색깔이 바뀐다. 가령 초록색이었다 해도 머물렀던 공간에 확진자가 있었다면 노란색으로 변한다.

코드는 개인에게 건강상태를 알려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시민은 코드가 없으면 사실상 이동이 불가능하다. 코드가 노란색이거나 빨간색이어도 마찬가지다. 버스·기차· 지하철·택시 등을 이용할 때 코드를 내밀어야 탑승이 가능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드론이 차량 운전자들의 코드를 확인한다. 현재 7억 명가량이 코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스크를 쓴 사람의 얼굴까지 식별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됐다. 지난 3월 한왕테크놀로지라는 회사는 마스크를 쓴 사람의 얼굴 식별뿐 아니라 온도 센서 연결을 통해 체온까지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식 성공률은 마스크 착용 시 95%, 마스크 미착용 시 99.5%에 이른다.

박철현 경희대 중국 인문사회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코드가 만들어졌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의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코드를 만들었다”며 “불편을 없애는 대신 중국 정부는 사람들의 이동을 더 확실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미셸 푸코가 말했던 ‘생체권력’ 정책도 더 강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코는 인간의 신체를 권력이나 자본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길들이고 규칙화하는 것을 ‘생체권력(bio-pouvoir)’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려면 일단 그 신체를 확인(identify)해야 한다.

다만 박 교수는 중국의 이 같은 시스템을 ‘감시’ 키워드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감시만으로 설명하면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중국의 사회관리 체제의 일부가 감시”라며 “중국은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이고 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인구는 좀 많나.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를 파악하고 장악할 것인가? 중국만의 특수성과 복합성도 같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각 나라의 특수성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병일 대표는 “지금은 정보 공개에 대한 원칙도 제각각이고 수집된 정보를 언제, 어떻게 폐기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도 없다”며 “방역과 사생활 침해에 관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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