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초기, 교통위반 딱지 4장으로 배운 ‘어린이를 위한 나라’

2020.06.12 16:18 입력 2020.06.12 16:19 수정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토론토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방과 후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 캐나다는 어린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교통법규도 훨씬 더 촘촘하고 엄격하다.

토론토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방과 후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 캐나다는 어린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교통법규도 훨씬 더 촘촘하고 엄격하다.

태어난 나라에서 40년을 살다가 낯선 땅으로 이사를 오니 좌충우돌하는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 비빌 언덕 하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이란 스트레스와 비용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직접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생활문화나 관습은 겉보기와는 많이 달랐다. 앞뒤 없이 자신만만해했다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렀다. 기죽어 살 필요도 없지만 자만해서도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은 크고 작은 괴로운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난 다음이었다. 괴로움을 넘어 때로는 서럽기도 했으나 그런 경험은 이민 걸음마 단계에서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사회를 작동시키는 기본적인 문화를 체득하지 않고는 그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괴로움 속에 가장 먼저 습득한 캐나다 문화는 자동차 운전 및 어린이 보호와 관련된 것이었다. 운전면허교환협정에 따라 한국의 운전면허증은 캐나다 것으로 조건 없이 바로 바꿀 수가 있었다. 공항에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온 한국 사람은 “이곳에서는 운전하기가 편하다.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유턴도 금지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만 불법이었다. 쉽고 단순했다.

물론 낯선 것들이 있기는 했다. 골목마다 멈춤(STOP) 표지판이 있었고 비보호 좌회전 또한 자유로웠다. 인구 1000만의 서울에서 20년 넘게 운전하다 300만명인 토론토로 왔더니 운전이 여러모로 수월했다. 끼어들기나 경적소리는 거의 없었다. 운전자들은 양보도 잘 해주었다. 문제는 역시 ‘운전하기 쉽네’ 하는 자만심에서 터져나왔다.

초창기에는 기회만 생기면 가족을 태우고 바깥으로 나갔다. 하나라도 더 보고 경험하고 배우자는 생각에서였다. 어느 한국 사람이 “공원에서 바비큐를 하기로 했다”며 가족과 함께 오라고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공원이었으나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날씨 좋은 주말 오전이라 공원에는 걷거나 뛰는 사람이 많았다. 천천히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 내리막길의 코너를 돌자마자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 차를 세웠다. 그는 말했다.

학교 앞에는 자동차 속도 제한 표지판이 여럿 세워져 있다.

학교 앞에는 자동차 속도 제한 표지판이 여럿 세워져 있다.

공원 내 제한속도 18㎞ 초과 주행
졸지에 딱지 3장, 벌금도 200달러
보험료 인상 걱정에 전전긍긍
그 다음부턴 눈에 불을 켜고 운전

그러다가 어느날 또 경찰이 세워
“학교 주변 운전 금지 시간 위반”
“몰랐다” 통사정해도 안 통해

겉으론 느긋, 자세히 보면 깐깐…
마음고생에 비싼 수업료까지 낸
좌충우돌 새로운 사회 적응 과정

“속도위반이다. 운전면허증 달라.” “과속 안 했는데?” “이곳은 제한속도가 20㎞인데 당신은 38㎞로 달렸다. 18㎞ 위반했으니 딱지 떼겠다.”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했다. 나로서는 자동차 속도를 줄인다고 줄였지만 표지판을 보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항변할 말이 없었다. 운전면허증을 내밀자 경찰은 또 말했다.

“자동차등록증과 보험가입증을 달라.”

두 가지 서류를 자동차 안에 넣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집에 있다”고 했더니 경찰은 자기 차로 돌아가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적었다. 돌아오는 그의 손에는 위반 딱지가 3장이나 들려 있었다. 벌금은 200달러가 넘었다. 속도위반은 벌점도 3점이라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상황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경찰은 마치 친절을 베푼다는 듯이 말했다. “억울하면 법원에 가라. 소송 방법은 티켓 뒤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고 했다. 교통위반 딱지를 받았는데 왜 법원에 가나 하고 더 놀라워했다. 그렇게 하면 벌금과 벌점을 낮추거나 없앨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재판을 신청하고 기일을 기다리는 동안 속도제한 표지판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그런데 한 달 후에 또 사달이 났다.

금요일 아침 일찍 어디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파트 근처 넓은 도로에서 좁은 도로로 평소처럼 우회전을 했는데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속도에 극도로 민감했던 터라 그것을 위반했을 리는 없고 멈춤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멈추라는 경찰의 손짓에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위반 딱지가 쌓이면 발생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지를 받으면 범칙금 말고도 이듬해 보험료가 인상된다. 위반 딱지를 잇달아 받으면 벌이가 없는 신규 이민자로서는 감당하기 벅찰 만큼 보험료가 치솟고, 무엇보다 그런 불량 운전자를 받아주는 보험사가 많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경찰이 나에게 손짓을 하는 순간 ‘위반 딱지가 벌써 4장이구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런 생각으로 버쩍 얼어붙은 나에게 경찰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법규를 위반했다고 했다.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자동차 출입을 금지하는 길이다.” 초등학교 주변이라 그렇다고 했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법규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구차한 핑계뿐이었다. “이곳에 살러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그런 걸 몰랐다.” 경찰은 말했다. “운전하려면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이다. 오후 4~6시 사이에도 금지돼 있다. 표지판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거라서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한 번만 봐달라”며 통사정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결정타를 날리며 내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는 학교 앞이야.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하는 거 몰라? 당신도 자녀 있을 텐데, 아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학교 다니면 좋겠어?”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지난번에 익힌 대로 운전면허증뿐만 아니라 자동차등록증, 보험가입증까지 한번에 꺼내어 공손하게 내밀었다. 교통법규에 더해, 캐나다가 학교 앞에서 어린이를 어떻게 보호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확실한 수업료를 내고 경찰의 ‘개인교습’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 뒤로는 자동차 운전과 더불어 어린이 보호에 관한 것이라면 부쩍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당신 자녀를 생각해봐”라는 경찰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즈음 오타와 가족여행 중에 했던 경험이 학교 앞 교통위반 딱지와 이어지는 바람에 어린이 보호 학습효과는 더 확실했다.

우리 가족이 오타와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공원의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근처에 있던 백인 할머니 두 분이 자꾸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동양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저러나 싶었다. 열 살, 세 살이었던 우리 아이들이 시끄럽게 한 것도 아니어서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급기야 할머니 한 분이 우리한테 오더니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들을 왜 그냥 보고만 있느냐?”

우리는 할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노는 자리가 물에서 너무 가깝다. 일어나서 뛰어다니다가 강물에 빠질 수도 있으니 자리를 안쪽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입으로는 “신경써줘서 고맙다”고 했으나 속으로는 ‘저 정도를 가지고 뭘 위험하다고 그러시나? 자기 손자도 아닌데 간섭이 좀 심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

할머니들한테서 예상치 못한 걱정을 들은 데 이어 학교 앞에서 느닷없이 교통위반 딱지를 받고 보니 어린이 보호에 대해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그전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이를테면 자기 자식이라도 체벌하는 게 보이면 이웃이 신고를 하고 경찰이 출동한다고 들었고, 12세 이하 자녀를 보호자 없이 바깥에 내보내서도, 집에 두어서도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타와 할머니의 걱정과 학교 앞 교통위반 딱지는 어린이 보호를 부모와 학교를 포함한 캐나다 사회 전체가 나서서 하고, 또 그렇게 보호를 해야 합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좀 더 알아보니 구체적인 법규도 많았다.

교사나 의사는 어린아이한테서 학대 흔적을 발견하면 경찰에 즉시 신고를 해야 한다. 부모가 체벌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학대한 흔적이 보이면 관계당국에서 나와 부모와 자녀를 따로 조사한 후 범행 정도에 따라 부모를 처벌한다. 자녀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도 있고 기간을 정해 부모를 자식한테서 떼어놓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런 자녀를 보호하는 기관은 따로 있다. 동양 특유의 자녀 교육 방식이 있다 해도, 이런 범죄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없다.

어린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교통법규도 훨씬 더 촘촘하고 가혹하다. 학교 앞 서행뿐 아니라 자동차 출입금지 시간을 정한 것도 그렇고, 스쿨버스와 연관되면 가중처벌을 받는 것만 봐도 그렇다. 스쿨버스가 ‘멈춤’ 표지판을 세우고 경광등을 번쩍이며 도로 위에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린이들이 승하차를 한다는 표시이다. 그때 도로 양쪽 모든 자동차들은 얼어붙은 듯이 서 있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벌금 2000달러(약 180만원)에 벌점 6점짜리 딱지를 받게 된다. 이 딱지를 들고 법원에 가봐야 소용이 없다. 이 건에 대해서는 절대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 연속 위반하면 벌금은 2배로 오르고 벌점 6점이 추가되며, 운전자는 6개월 이하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나는 이민 초기에 딱지를 떼는 경찰과 꾸지람하는 할머니들을 ‘운 좋게’ 만나는 바람에 스쿨버스 위반 같은 큰일은 겪지 않았다. 초기의 그런 일들이 예방주사가 되어 학교 근처만 가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다. 만약 학대받는 듯 보이는 어린아이가 눈에 띈다면 즉시 경찰에 신고할 마음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단순하고 느릿느릿 굴러가는 듯해도, 마음고생에 수업료까지 치러가며 캐나다의 속내를 배우다 보니 이렇게 정교한 것들이 많았다. 특히 어린이에 관한 한 캐나다는 할머니가 친손자를 대하듯 하는 사회이다.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길 조짐이라도 보이면 말로만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을 위해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사회이다. 그런 사회적 행동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기구와 시설이 갖춰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 성우제

[다른 삶]이민 초기, 교통위반 딱지 4장으로 배운 ‘어린이를 위한 나라’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5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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