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불로소득 척결”을 외쳐온 결과

2021.03.19 03:00 입력 2021.03.19 03:01 수정

‘LH 사태’에 연루된 직원들이 노렸던 것은 일확천금 불로소득이었다. 보통 사람은 접근하기 힘든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라는 점에서 자산가들의 아파트 투기보다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는 더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불로소득 척결을 외쳤지만 공공기관에서조차 제대로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겸 산업부장

오관철 경제에디터 겸 산업부장

불로소득은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좌절케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대표적 병폐로 꼽힌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만큼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얻기 쉬운 나라도 없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권력이나 자본, 정보를 움켜쥔 세력이 부동산 시장을 투기장으로 만들며 축재 수단으로 삼아왔고, 부동산 불패 신화가 굳어졌다. 건물주가 꿈이라는 어린이들의 말에서 보듯 미래세대까지 불로소득의 유혹이 스며들었다. 사실 손쉽게 돈을 벌려고 은밀한 정보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공정과 정의를 내건 촛불정부가 불로소득의 고리를 끊어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내부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력자들, 각종 인허가권을 쥔 공무원들, 비업무용 부동산을 사재기하려는 기업들, 대출 후 갭투자로 불로소득을 노려온 일부 시민들의 행태를 제어해주길 바랐다. 또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 틈만 나면 보유세 세금폭탄을 들먹이는 사람들의 논리가 꺾이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불로소득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차단막을 치지 못했음이 확인됐다. 구멍 뚫린 농지법과 이해충돌방지책의 부재 등 숱한 문제가 LH 사태를 계기로 드러나고 있다.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독하고 근본적인 정책을 제때 펴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일관해온 탓이다.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와 정당한 투자의 구분이 가능하냐고 누구는 묻는다. 이익을 챙길 기회가 있으면 잡으려 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심리 아니냐는 말도 맞다. 아파트 투기로 돈을 번 사람 중 “경제의 흐름을 읽고, 정부정책과 세제를 분석한 뒤 수억원을 잃을 모험을 감수했다”고 강변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의 불로소득에 대한 욕망과 일탈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쉽게 번 돈은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내부정보를 활용한 투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잘못된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LH 사태는 불로소득 환수장치 마련에 태만했던 정부·여당, 나아가 정치권에도 책임이 있다. 불로소득을 얻는 구조와 시스템을 놔두고, 말로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겠다며 핏대를 올려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신뢰의 위기에 처한 정부를 겨냥해 부동산 정책의 기조 전환을 요구하며 재건축 규제 완화 등 민간에 기댄 공급확대론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그간 수도권에서 공급확대 물량이 자본을 가진 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동산 폭등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과거의 공급확대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정부가 공공주도의 공급확대 방안을 들고나온 것도 이런 폐단을 인식했기 때문이긴 한데 LH 사태로 이마저도 위태롭게 됐다.

최근 아파트 공시가격이 나온 것을 계기로 세금폭탄론이 나오는 것도 우려스럽다. 보유세 강화는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든 밀고 나가야 하고 부동산 시장안정은 불로소득 환수가 기본이다. 정부가 보유세 강화를 강하게,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했고 이것이 부동산 정책 실패의 1차적 요인이다. 시장의 눈치를 보는 핀셋 대책으로는 결코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역시 보유세 부담 강화에 부정적인 관료들의 저항을 극복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부동산의 경기조절 기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관료들의 습성은 정말로 뿌리가 깊다. 4월 서울시장 선거와 내년 대선 등 굵직한 정치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투기세력에 돈 벌 기회를 주려는 무분별한 공급확대론과 부동산세제 완화론은 틈만 나면 제기될 것이다.

정부는 전쟁이란 용어까지 사용해가며 불로소득 척결을 외쳤지만 이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달 중 투기근절 대책을 내놓는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다시 믿어봐야 하나. 보수세력도 LH 사태를 정권 흔들기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정말 우리 사회에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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