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련복 입고 나란히 숨진 두 소년, 5·18당시 도청 유혈진압 희생자 사진 첫 공개

2021.05.06 16:42 입력 2021.05.06 18:54 수정

고등학교 교련복을 입은 소년 두 명이 복도에 맥없이 쓰러져있다. 무장한 군인 10여명이 피가 흥건한 소년 주위에 모였다. 이들은 곧 사무실 칠판 위에 소년들의 시신을 올린 뒤 건물 밖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복도에 걸린 시계는 오전 7시50분을 가리키고 있다.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경찰국에서 계엄군들이 진압작전 도중 사살한 시민 2명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교련복을 입은 이들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이었던 안종필 열사와 문재학 열사로 확인됐다.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경찰국에서 계엄군들이 진압작전 도중 사살한 시민 2명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교련복을 입은 이들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이었던 안종필 열사와 문재학 열사로 확인됐다.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1980년 5월27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경찰국 2층 복도의 모습이다. 이날 새벽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은 공수부대원으로 특공조를 조직해 시민군이 머물던 전남도청을 공격했다. 도청에서만 시민 17명이 숨졌다. 사진 속 두 소년은 같은 고등학교 친구인 문재학과 안종필 열사로 확인됐다.

시신을 옮기는 모습은 외신기자의 카메라에 19장의 사진으로 담겼다. 이 사진을 비롯해 5·18민주화운동이 계엄군의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린 직후, 옛 전남도청 내부 상황을 찍은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6일 “5·18 41주년을 맞아 7일부터 오는 7월31일까지 도청 별관 2층에서 ‘노먼 소프 기증자료 특별전’을 연다”고 밝혔다. 전시되는 사진은 당시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서울 지국 기자였던 노먼 소프가 5월23일부터 5월27일까지 광주의 참상을 직접 취재한 것이다.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들이 숨진 시민들과 부상자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들이 숨진 시민들과 부상자들을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당시 전남도청을 점령한 계엄군은 오전 7시30분쯤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취재를 허용했고, 국내 언론에는 오전 9시쯤 현장을 공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내부 곳곳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고꾸라진 시민들의 사진은 충격적이다.

도청 회의실에서 쓰러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처참한 주검을 비롯해 당시 끝까지 남아 계엄군에 저항한 시민 9명의 사망 직후 모습이 한꺼번에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도청복원추진단은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특별영상실’에서 15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도록 희생자의 발견 위치와 성명, 시신 이동 장면 등을 영상으로 제작해 공개한다.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앞 모습.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앞 모습.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이밖에도 특별전에서는 5월26일 ‘죽음의 행진’과 5월24일 전남 목포역 앞 군중, 카메라 등 200여 점이 전시된다. 노먼 소프는 5·18 40주년이었던 지난해 필름을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 그는 필름을 기증하면서 “5·18은 대한민국 민주화를 향한 길고 긴 투쟁의 일부분이다”면서 “앞 세대가 민주주의를 꽃피우려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지금 젊은 세대가 배우고 진심으로 감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1980년 5월27일 오전 7시30분 계엄군 진압직후 옛 전남도청에 들어가 취재 했던 사진을 지난해 한국 정부에 기증한 노먼 소프 기자가 필름을 기증하면서 당부한 내용.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1980년 5월27일 오전 7시30분 계엄군 진압직후 옛 전남도청에 들어가 취재 했던 사진을 지난해 한국 정부에 기증한 노먼 소프 기자가 필름을 기증하면서 당부한 내용. 동영상 촬영. 강현석 기자.

도청복원추진단은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을 통해 도청 진압직후의 상황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계엄군이 진압을 완료한 시간이 오전 5시30분쯤 이고 노먼 소프 기자가 도청에 들어간 시간이 2시간여 뒤여서 시신이 일부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도청 내부를 찍은 사진중 이보다 앞선 시각에 찍힌 사진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김도형 도청복원추진단장은 “도청에서 끝까지 항전했던 열사들의 최후의 모습이 밝혀졌다. 도청을 복원하면서 이들 희생자의 위치 등을 표시해 추모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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