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혼 합법화’ 법안 하원 통과…이번엔 상원 문턱 넘을까

2024.05.26 21:15 입력 2024.05.26 21:16 수정

바티칸 제외 유일한 금지 국가

“여성들 학대서 벗어날 기회”

종교단체 등 반발에 불투명

이혼을 금지하는 필리핀에서 이혼 합법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여성·인권단체는 상원 문턱까지 넘어서길 촉구하고 있으나 보수적 종교계가 반대하고 나서, 상원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26일 필리핀 매체 래플러에 따르면, 하원은 지난 22일 부부가 완전한 이혼을 통해 결혼을 종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찬성 126표, 반대 109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상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필리핀에서 이혼 합법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 하원에서 이혼 합법화 법안이 찬성 134표, 반대 57표로 통과한 적 있으나 상원에서 좌절됐다. 이번에는 당시보다 근소한 표차로 안건이 통과됐다.

바티칸을 제외하면 필리핀은 법적 이혼을 합법화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국교는 없으나 가톨릭 신자가 약 80%를 차지한다. 가족·성 문화에 보수적인 가톨릭 영향으로 임신중지와 피임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혼을 금지한다. 필리핀에서 합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사람은 무슬림뿐이다.

그 외에 부부가 법적으로 갈라설 방법은 혼인무효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결혼이 처음부터 유효하지 않음을 법원에서 인정받아야 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일반적으로 혼인무효 절차에 드는 비용은 15만페소(약 353만원)에서 30만페소(약 706만원)로, 월평균 임금보다 16배 이상 많다. 또 혼인무효 요건도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한 경우, 성적 지향을 속인 경우, 결혼동의서의 허위 진술이나 허위 제공 등 극히 제한적이다.

그동안 필리핀 여성·인권단체는 배우자의 학대를 겪어도 이혼이 어렵고, 사실상 혼인이 종료된 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도 간음죄로 고소당하는 사례가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번 법안을 공동 발의한 ‘가브리엘라 여성당’ 소속 알린 브로사스 의원은 “여성이 학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하원을 통과한 법안도 여전히 보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초안을 작성한 에드셀 라그만 의원은 “이혼 사유는 제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당사자의 남용과 공모를 방지하기 위해 (이혼 청원은) 사법조사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무과실 이혼, 긴급 이혼 등 간소한 절차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보수 성향 의원과 종교단체 반발을 고려할 때 상원 통과를 낙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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